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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위로가 되는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

등록 2020.09.19 17:41수정 2020.09.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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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문예지의 기획회의를 하면서 특집으로 '코로나 시대의 시(詩)'라는 기획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는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우리 집 세 명의 아이들이 제대로 학교를 가지 못한지도 벌써 반년이 흘렀습니다. 집 밖을 나설 때 마스크 쓰기는 일상이 되어버렸죠. 우리의 모든 일상이 멈춤과 천천히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코로나 시대 시(詩)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시인이 꼭 사회적인 책무를 담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스스로가 10여 년간 '기능적'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시인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면서도 실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나 무력감도 한몫을 했었죠.

무력감이란 외부에서 나를 향해 가해지는 폭력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폭력에 맞서지 못할 때 발생하는 내부의 절망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는 시인으로서 저 절망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코로나 시대 우리가 빠져있는 무력감도 유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코로나 시대 시(詩)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와 시 ⓒ Pixabay

 
이럴 때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위로'입니다. 시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선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밝은 미래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 시는 희망을 얘기할 정도로 비중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것은 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입니다. 시가 희망이 되는 시기는 오래전에 지나갔죠(따로 얘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시는 왜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하지만, 위로를 얘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제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바다는 눈물보다 짜고 / 위로하기보다 / 크게 울기 때문입니다(「강릉 바다에 갔습니다」 중에서)'. 우리가 바다를 찾는 까닭은 바다가 위로의 말을 건네줘서가 아닙니다. 아무런 말도 없기 때문입니다.

눈물보다 더 짠 바다가 말없이 나보다 더 크게 울어주기 때문입니다. '위로 해요'라고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것이죠. 시가 그러합니다. 위로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백지 위에 쓰인 몇 마디 텍스트를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 시 한 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빨래하기 좋은 날 / 주영헌

날이 좋아서

아픔과 슬픔, 아쉬움까지 툭툭 털어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채 털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눈물처럼 바닥에 떨어져 어두운 얼룩을 남기지만

괜찮습니다,
금세 마를 테니까요

날이 좋아서
이번에는

한나절도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시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시를 쓸 때는 몰랐습니다. 가을과 어울리는 짧고 따뜻한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쓴 시입니다. 그런데 위로라는 말, 위로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 없지만, 많은 분들이 이 시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러니하게 위로를 받았다는 말에 더 큰 위로를 받습니다.

시(詩)는 마음의 위로, 마음의 처방전      

이 시를 다시 읽으면서 코로나 시대에 시의 방향성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고 불리는 우울감을 시로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시가 육체적의 처방전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영업 하시는 분들의 매출을 늘리는 일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겠죠. 그래도 시가 코로나로 팍팍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위로로 힘을 주는 것. 그런 마음을 앞으로 제 시에 꼭꼭 눌러 담고 싶습니다.

시가 코로나의 백신이나 치료제가 될 수는 없지만, 코로나로 침체 된 우리 마음의 처방전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도 시를 쓰려고 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소박한 믿음, 코로나 시대 시인으로 살아가는 마음의 연대이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같은 기사를 시를 읽는 아침 블로그(https://blog.naver.com/yhjoo1) 에도 올립니다
#코로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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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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