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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출간하면 시인이 될 수 있나요?

[시인에 대해 궁금하세요?] 시집 출간의 ABC

등록 2020.09.22 07:52수정 2020.09.22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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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특별한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일제강점기 시절의 시인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한용운, 김소월, 이상, 윤동주 시인 등이 그들이죠.

한국 현대시가 크게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오늘 그들보다 더 존경받는, 받을 수 있는 시인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의 탄생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지난 글에서 등단 절차를 말씀드렸습니다. 등단은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신인상으로 선정됨으로써 완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절차입니다. 등단을 제외하고 시인이 되는 방법이 전무하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시인의 비율로 본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그만큼 우리 문단에서 등단은 중요합니다. 등단이 아니면, 시인이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시집 출간으로 시인되기

오래전부터 등단 무용론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지만, 등단의 긍정적 요소도 많습니다. 저도 등단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시인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인이 되는 방법이 등단 하나만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다양성이 사라진 플랫폼의 장래가 밝을 수 없기 때문이죠. 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획일화된 등단 체계를 넘어서는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등단 이외에 시인이 되는 방법은 '시집'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예가 있어야 하겠죠. 가장 눈에 띄는 시인은 조해주 시인입니다.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아침달> 출판사를 통해서 시집을 출간해 시인이 되었습니다. 백인경 시인도 눈에 띕니다. 백인경 시인은 <꿈공장>으로 시집을 출간함으로써 시인이 되었습니다(두 시인의 등단 여부는 시인의 시집과 문예지 등에 소개된 약력을 근거로 작성했습니다).


최근 '등단이라는 제도'를 거부하고자 하는 운동이 있습니다. 등단하지 않고 독립출판물 등으로 시집을 출간하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저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현실적으로 쉬운 도전은 아닙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시 쓰기를 지속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시집 출간 방법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먼저 내가 '왜 시를 쓰는가?'를 생각해 보시지요. ⓒ Pixabay

 
성공적인 시집 출간은 등단보다도 어렵습니다. 시집을 낼 수 있는 출판사는 한정되어 있고, 시집을 내려는 분들은 많으니까요. 실제로 몇몇 출판사 대표에게 물어봤을 때, 다 읽어볼 수 없을 정도로 투고가 많다고 귀띔합니다. 일부 대형 출판사는 1차 심사를 외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얼마나 많은 시집 원고가 투고되는지 예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시집 출판을 준비하다가 등단이 더 빠르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등단 모지에서는 시집 출판에 호의적이기 때문이죠. 

저도 시집 출판을 위해 여러 출판사에 투고했습니다. 첫 번째 시집을 제가 등단한 곳으로 내어서, 두 번째 시집만큼은 다른 출판사를 이용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제가 쓰고자 하는 시가 '대중과 소통하는 시'였기 때문에 순수 시집을 출간하는 출판사에서는 출판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는데요, 돌아온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모두 어렵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저는 용인문화재단의 출판 지원과 한 출판사와 의견이 맞아 올 10월 말 출간을 앞두고 있는데요.

시집 출판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인지도가 높은 몇몇 출판사의 경우 원고가 수년씩 밀려 있다고 합니다. 등단했고,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라고 해도 시집 출간이 어렵고, 출간이 가능하다고 해도 몇 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자유롭게 시집을 낼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도 있습니다. 이를 '자비 출판'이라고 부릅니다.

기획 출판과 자비 출판

시집을 출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기획 출판'과 '자비 출판'이죠. 기획 출판은 출판사에서 기획하여 출판하는 방식이며, 자비 출판은 말 그대로 '자비'로 시집을 출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창비, 문동, 문지, 민음 등 유수의 시집은 기획 출판입니다. 저도 첫 시집을 기획 출판으로 출판했습니다. 시집을 전문적으로 내는 출판사는 '시집선'이라는 시선이 있습니다. 그 시선에 포함되어 출간되는 경우죠. 시선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먼저 투고라는 절차가 있어야 하고, 선정된 시집에 한하여 출판됩니다.

자비 출판은 시인이 자비로 시집을 만듭니다. 시인이 출판사를 찾아서 시집 출간을 의뢰하는 것이죠. 시집 출판을 전문적으로 하는 출판사에서도 투 트랙으로 자비 출판 시선집을 출간하는 경우가 여러 곳 있으며, 또는 자비 출판만 하는 시선집도 있습니다.

기획 출판과 자비 출판의 가장 큰 차이는 '누가 투자를 하는가'입니다. 기획 출판은 출판사에서 시집을 만들기 때문에 시집을 제작하는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기획 출판을 할 경우 저자에게 증정되는 시집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받은 선(先)인세와 얼마간의 자비로 시집을 사게 됩니다. 교류하는 시인들에게 시집을 보내드리고, 낭독회 등으로 소화하는 시집을 생각하면, 200~300권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요, 자비 출판보다는 덜 들어가지만, 돈이 꽤 들어갑니다.

자비 출판은 말 그대로 시인이 출판사를 정해 시집을 출간하는 것입니다. 인세 등을 고려해서 시인에게 무엇이 이득인가 생각할 때 자비 출판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요,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비 출판을 하는 출판사 다수가 영세해서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해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모든 출판사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자비 출판은 '출판'을 목적으로 할 뿐,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획 시집을 일부 출판사만 다루고 있다는 것도 시집 출간이 어려운 까닭입니다. 시선집을 내는 출판사보다 일반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고 싶어 의사를 타진했는데요, '시집은 출간하지 않습니다'라는 답장만 받았습니다. 출판사와의 방향성도 다를 뿐더러 들인 공보다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시인이란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등단이나 사회적인 호칭이 시인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시가 좋아서 시를 쓰면, 시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타자에게 시인이라는 '호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단점은 있겠죠. 

저는 '시인'이라는 호칭과 '시 쓰는' 호칭을 동시에 사용합니다. 편의상 시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만, 즐겨 쓰는 호칭은 '시 쓰는'이라는 호칭입니다. 사실 후자는 호칭이 아닙니다. 후자는 호칭이기보다 저의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를 쓸 때만 시인이라고, 시를 읽고 시를 얘기할 때만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인이라는 호칭이 주는 화려함보다 '내가 지금 시를 쓰고 있음'에 더 주목합니다. 처음 시를 썼던 까닭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까닭은 왜 시 쓰기의 의미를 상기해 드리기 위함입니다.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먼저 내가 '왜 시를 쓰는가?'를 생각해 보시지요. 저는 여기에 각자가 원하는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시인이라고 불리고 싶어서 시를 쓰는 것이라면, 등단이라는 절차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럴 경우 출발 지점이 명확합니다. 이렇듯 원하는 방향성에 맞게, 등단 여부와 등단 매체를 결정하시면 됩니다.

- 다음 회에 '요즘 시는 왜 이렇게 어렵나요?'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같은 기사를 시를 읽는 아침 블로그(https://blog.naver.com/yhjoo1) 에도 올립니다.
지면에서 못다한 얘기를 블로그를 통해서 추후 연재하겠습니다.
#시인 #등단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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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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