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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잃으면 다 잃은 것' 이 말은 잘못됐다

[코로나 시대에 서로를 돌보는 방법 ①] 건강할 권리 말고 잘 아플 권리

등록 2020.09.22 10:16수정 2020.09.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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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 온라인 생중계로 2020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나를 돌보며 주변을 함께 돌아보는 방법, 코로나 시대의 관계 맺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상생과 돌봄을 말하는 5명의 강의를 연속 기고를 통해 소개합니다. 

이 기사를 작성한 '조한진희'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로 여성, 평화, 장애 관련 운동을 넘나드는 활동가입니다. 팔레스타인 현장에 연대하던 중 건강이 손상되며 질병을 둘러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RTV 시사다큐: 나는 장애인이다'를 연출했고 <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 <포스트코로나 사회> <비거닝: 채식을 기웃거리는 당신에게>를 함께 썼습니다. 현재는 '다른몸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기자말]
질병의 개인화

10여 년 전부터 몸이 아파서 병원을 순례하며 살았다. 쓰러지고 출혈이 있고 쓰러지는 증세들이 반복되는데, 원인을 찾지 못했다. 아픈 뒤 몇 년 만에 받은 진단은 독성물질 노출에 의한 건강 손상이었다. 2009년 팔레스타인에 3개월 동안 연대 활동 갔었는데, 그때 독성물질에 노출되어서 그런 것 같다는 진단이었다.

그런데 이 진단을 받기 전까지 3년 정도 동안 종합병원 가서 검사해도 진단이 안 나오니까, 여러 지인들 소개로 많은 병원에 갔었는데. 진료실에서 의사들로부터 이런 식의 말을 들었다.

"면생리대 쓰고 채식하고, 그렇게 유난 떨며 사는 사람들이 아파요. 둥글게 사세요."
"비혼주의자라서 아픈 것일지도 몰라요. 원래 사람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거든요."
"운동권이라서 아픈 거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은 매사 부정적이잖아요."

 

2020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에서 강의 중인 기자의 모습. ⓒ 여성환경연대

 
이말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환자가 잘못 살아서 병이 왔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반쯤은 농담처럼 말한 이도 있었고, 진심으로 걱정이 담긴 눈빛으로 말한 의사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 아픈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우리 사회 질병을 둘러싼 문화를 관찰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에 누가 암진단을 받았다고 하면 여러분 뭐라고 하는가?

"걔가 평소에 짜게 먹고 빨리 먹더니 위암이네."
"걔가 평소에 화가 많고 밤마다 캔맥주 하나 마셔야 잠을 잔다더니 간암이네."


다들 너무 쉽게 질병을 개인 책임이라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 현상을 '질병의 개인화'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위암과 간암 생활 습관 뒤에 무엇이 있을까. 비정규직이라 사무실에서 점심 시간에도 쫓기듯 밥을 먹고 일한다. 그래서 빨리 먹는 게 습관이 됐고, 빨리 먹으면 짜게 먹게 된다. 평소에 캔맥주 하나 마셔야 잠을 자게 된 습관과 불면증을 추척해 보니, 직장에서 겪었던 성차별과 성희롱 피해 경험 이후 불면증이 생겼었다.

누구나 노력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
 

JTBC에서 방영한 미라클푸드 프로그램에서 노니를 소개하는 장면 ⓒ JTBC

 
요즘 TV를 켜면 '어떤 음식을 먹으면 어디에 좋다' 이런 게 계속 나온다. 그런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계속 보고 있다 보면 '내가 저거 안 먹어서 아픈가?', 노니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고, 블루베리 먹지 않아서 눈이 침침한가 싶어진다. 그런 방송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방송을 계속 보다 보면 저런 음식을 먹지 않아서, 저런 운동을 하지 않아서 아픈 것 같은 인식을 준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데, 내가 그걸 안 해서 아픈 건가 싶어지기도 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라는 말이 일종의 판타지라고 본다. 왜 그런지 살펴 보자. 우선 환경문제 면에서 보자. GMO 식품이 건강에 위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GMO 수입 1위 국가가 어디인가? 한국이다.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는 미세먼지의 경우 OECD 국가 중 한국 국민이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성폭력은 인권의 문제이지만 보건의료 문제이기도하다. 건강을 극심히 위협하는 요소이다. 성차별이 만연하고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 어떻게 건강할 수 있겠는가.
 

서울시 지자체별 기대수명 ⓒ 서울시

 
게다가 알다시피 한국은 1년에 산재사망이 2000명인 나라다. 죽는 사람이 2000명이라는 건, 죽음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일터에서 사고나 질병을 얻는 사람수가 어마어마 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소득과 수명은 비례한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오래 살고, 소득이 적은 사람일수록 일찍 죽는 사회다. 서초구민 건강수명이 74.3세인데, 금천구는 67.3세다(한국건강형평성학회, 2014).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소득이 정하는 사회가 됐고, 소득은 노력으로 가능한 게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노력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은 노력하면 부자 될 수 있다'는 말과 비슷한 말이다. 노력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판타지다!
 

펜로즈의 계단 ⓒ 조한진희

 
이런 판타지를 나는 펜로즈의 계단에 자주 비유한다. 계속 오르는 것 같지만 사실 어디에도 오를 수 없는 계단인 펜로즈의 계단. 건강은 사회적인 여러 조건들의 결과물이다. 물론 개인이 좀 더 노력하면 좀 더 건강해질 순 있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변호사 되고 의사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경우는 한국사회에서는 점점 더 희귀해지고 있고, 계급이동 사다리가 부서진 지도 오래됐다. 이런 사회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건강해 질 수있다' 거나 '질병의 개인화'는 심각한 폐해를 만든다. 즉 건강을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과 구조를 잘 안 보이게 만드는 효과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새해가 되거나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면 건강에 대한 인사를 많이 나눈다. 특히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인사를 덕담으로 많이 나눈다.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말은 동시에 누군가를 배제시킨다. 누구일까? 바로 아픈 사람들이다. 건강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하는 게 적절할까.

이를테면 안전벨트 안 매면 휠체어 벨트 매게 된다는 말이 있다. 외국의 어느 공익포스터에 실려 있던 문장인데, 차량 이용시 안전벨트 이용을 강조하기 위해서 휠체어 벨트 매게 된다는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할까. 사고와 불행의 상징으로 휠체어 이용자를 사용하는 것은 휠체어 이용자를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것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고 덕담이 되기 위해서는 건강을 잃어도 잃는 게 별로 없는 사회여야 가능하다. 건강 손상이 절망, 빈곤, 좌절을 의미하지 않을 때 저런 말이 차별적이지 않은 말일 수 있다.

건강권 말고 '질병권'

이처럼 우리 사회는 건강을 지키기 어려운 사회인데, 그럼에도 아픈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인식도 없이 차별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건강권 보다는 질병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질병권(疾病權)은 아플 권리를 말한다.

건강권이란 건강할 권리를 말하는 건데, 질병권은 건강권의 내용을 포함하지만, 관점을 건강이 아닌 질병으로 이동시킨 개념이다. 건강이 기본값이 아니라 질병 즉 아픈 몸이 기본값이다. 정상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굳이 설명하자면 건강한 게 정상이 아니라, 아픈 게 정상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굳이 질병권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있을까? 라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 요즘은 장애인이라는 말을 굉장히 일반적으로 쓰지만 불과 10~20년 전만 해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불구자, 병신' 이런 말을 굉장히 많이 썼다. 지금은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굉장히 일반적으로 쓰지만 그 전에는 '일반인, 정상인' 이런 말을 썼다. '나는 정상인이야'라는 표현에서 '나는 비장애인이야'라는 표현으로 변화함으로써 우리 인식에 차이가 생긴다.

삽입섹스라는 표현에 대해서, 예전에 페미니스트들이 이성 간의 섹스에서 남성 기준에서는 삽입이지만 여성의 기준에서는 흡입이라는 문제제기를 한 적 있다. 그래서 '흡입섹스'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성기결합섹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고 해서 이 표현을 더 많이 쓰기도 한다. 또 페미니즘 진영에서 만든 말 중에 가장 많이 쓰는 말이 폐경 대안으로 만든 완경이라는 단어일 것 같다. 이렇게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면서 우리의 인식도 달라진다.

건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말에 누가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그런데 질병권이라고 했을 때는 포커스가 달라진다. 우리가 건강권이라고 하면 건강해지기 위해 어떤 약을 더 먹어야 하고, 어떤 운동을 더해서 건강하게 몸을 만들어야 하고… 이렇게 사고가 흘러가기 쉽다. 그러나 질병권(아플 권리)가 필요하다라고 하면, 아픈 몸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방향으로 사유가 흘러갈 수 있다.

건강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다 같이 '좀 더 건강한 몸'을 외치는 게 좋을까? 혹은 질병권, 잘 아플 권리를 외치는 게 더 좋을까?

돌봄 두레

작은 대안을 하나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아플 수 있는 권리를 누리고,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사회가 되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평등한 의료 접근권을 위해 사실상 무상의료에 가까워져야 하고, 아픈 사람도 원하면 필요한 만큼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필요한 만큼 돌봄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돌봄을 혈연 가족 밖으로 꺼내서 사회적으로 시스템화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 됐었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정부 이후 돌봄의 사회화가 부족하나마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돌봄의 사회화는 분명 필요하고 중요한데, 돈을 매개로만 이뤄지고 있다. 돌봄노동이 임노동으로 자리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현재처럼 저임금이 아닌 정당한 임금을 보장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돌봄의 사회화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실천되지 못한 영역이 있다. 바로 돈을 매개로 하지 않는 관계가 살아 있는 돌봄을 형성하는 것이다. 돌봄을 혈연 가족 안에 묶어 두었던 것을 사회화 시키자는 게 '돌봄의 시장화'만을 의미한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시장에만 넘겨진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시장에서 돈을 매개로 한 돌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돌봄은 가족 안에서도 재구성되어야 하고, 다양한 인간관계와 사회 전반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두레(돌봄두레)를 제안하고 싶다.

건강두레란 돈을 매개로 하지 않는 상호부조 돌봄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수면내시경을 할 때, 가족 혹은 보호자랑 오라고 한다. 건강두레를 통해 수면내시경 할 때 동반해서 돌봄을 제공 받을 수 있다. 물론 자신도 누군가가 돌봄이 필요할 때, 돌봄두레를 통해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

건강두레는 여러 의미를 갖는데, 우선 돈을 매개로 하지 않는 공동체적 가치가 있다. 또하나 현재 돌봄이 논의되는 흐름은 돌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돌봄 노동이 고되고 하기 싫은 노동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를 돌봐주고 돌봄을 받는 건 인간의 훌륭한 덕목이고 가치이자 권리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돈을 매개로 하지 않으며 공동체 정신에 입각한 건강두레는 우리 사회 돌봄의 위치와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사회, 건강을 잃어도 모든 것을 잃지 않는 사회회는, 건강을 재사유 하면서 가능하다. 건강권이 아닌 질병권. 그리고 건강두레와 같은 제도를 통해 돌봄을 우리 일상에서 가치있는 노동이자 의미로 만들고, 돌봄 받고 돌보는 몸이 되는 게 수치나 귀찮은 게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실천이 될 때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은 이 문장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질병을 몸에서 삭제해야 하는 배설물 같은 존재로만 본다면, 만성질환자를 포함해 질병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아픈 몸은 불행한 패배자로 살 수밖에 없다 의학으로 죽음을 삭제할 수 없듯이 질병을 삭제할 수 없다. 누구나 아프게 되고 죽게 된다. 질병이나 죽음 자체가 비극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겪어낼 수 없을 때 비극이 된다." _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6쪽 (조한진희, 2019, 동녘)

[못다한 이야기] 스스로의 몸과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우리 사회에서 기준이 되는 몸은 건강한 몸이다. 비장애인의 건강한 몸을 전제하고 모든 것이 구성된다. 그러나 현실은 3명 중에 1명이 암에 걸리는 사회고, 암과 같은 중증 질환이 아니더라도 당뇨, 고혈압, 디스크 등 만성질환을 모두 개성처럼 한 개씩은 가지고 있는 게 우리 사회다.

강의에서 말했듯 생태계 오염 뿐 아니라 고도의 경쟁, 양극화, 성차별, 고용불안, 성폭력, 위계폭력, 희망없는 미래, 임금 격차 등은 모두 건강을 극심히 위협하는 요소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내느라 우리 대부분 아픈데, 건강한 몸을 표준으로 상정하고 모두 건강한 몸인 척하며 산다. 건강한 척하지 않으면 고용, 승진, 연애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이 스펙이 된 시대라서 더욱 그렇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 '표준의 몸'은 아픈 몸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픈 몸을 전제로 사회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아픈 몸에 대해 자책하고 부끄러워 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 몸은 사회에서 생존하다가 보니 생긴 결과이기도 하다. 건강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아픈 몸이 실패한 몸이라는 인식을 재구성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아픈 것을 치료하지 말라거나 금연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자. 지금 내몸이 나에게는 가장 '정상'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질병권, 건강두레, 질병의 개인화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도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참고 할 수 있다.

※ 아픈 몸을 수용하는 서사에 대해서는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참고 할 수 있다. 아래 링크에서 온라인 관람을 신청할 수 있다.
https://www.socialfunch.org/dontbesorry
#아파도미안하지않습니다 #코로나 #건강 #질병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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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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