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아이들은 2020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학교 코로나 방역기 13]

등록 2020.09.21 17:39수정 2020.11.02 11:48
1
원고료로 응원
a

27일 만에 등교 수도권 지역 유·초·중·고 학생들의 등교가 재개된 21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이날 등교는 지난 8월 2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이 거세져 수도권 지역 학교들이 전면 원격 수업에 들어간 지 27일 만에 이뤄졌다. ⓒ 연합뉴스

 
드디어 왔다. 8월 14일부터 2주간 방학을 하고 9월 1일부터 등교했어야 할 아이들이 오늘 드디어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교육부 지침에 따라 1/3만 등교 가능해서 1학년만 등교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었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모든 아이들이 등교할 날도 오리라 믿는다.
  
광복절을 기점으로 다시 퍼진 코로나를 전 국민이 똘똘 뭉쳐 막아내 이렇게라도 아이들이 등교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뭉클하기도 했다. 설레는 마음에 다른 때보다 좀 더 일찍 출근했다. 출근해 보니 못 보던 어르신들 두 분이 행정실장에게 열화상 카메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시에서 보내 준다던 방역 지원 인력이었다.

1학기 때는 학교 규모에 따라 교육부와 시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면 학교에서 채용하여 방역 업무를 맡겼었다. 주로 방과 후 강사를 하시던 분들이 지원했었다. 그분들은 이미 기본 소양이 증명된 분들이었고, 또 학교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분들이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2학기부터는 시에서 직접 채용하여 보내 준다고 해서 혹시 학교에 어울리지 않는 분들이 오시면 어떻게 하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던 차에 직접 뵈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오랜만이네. 학교 오니 좋지?" 하고 일찍 등교한 아이에게 말을 거니 한 달 반 만에 봐서 그런지 아이가 쭈뼛쭈뼛하다가 힘차게 대답했다. "예! 집에 있기 지겨웠는데..." 옆에 있던 아이도 뒤질세라 "저도요, 선생님. 친구들 만날 생각 하니 너무 좋아요" 한다. "그래, 마스크 똑바로 쓰고... 혹시 마스크 제대로 안 쓰고 턱스크 한 친구들 보면 잘 쓰자고 서로 이야기하자."

정해진 시간이 되자 교통지도를 나가고, 방역 요원, 보건교사, 학년부장 모두 제자리에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누구도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 없었다.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나갔다. 고맙고 감사했고 이런 분들과 함께 하는 난 참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복도엔 아이들로 넘쳐 났다. 그동안 억눌렸던 에너지에 선생님들 눈치 보지 않고 떠들고 장난을 쳤다. 학교에서 2M 거리 두기는 불가능했다. 그저 마스크 똑바로 쓰라고 소리 지르고 나무랐다. 며칠 지나면 이 장면이 스트레스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그럴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가 학교답다고, 내가 선생답다고 생각됐다.
  
점심시간 아이들을 정해진 자리에 앉히며 표정을 보니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등교할 때 웃음이 많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가장 즐거워야 할 점심시간이 흑백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괴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식당을 나서는데 한 선생님이 급식을 안 먹고 편의점으로 무단 외출을 하려고 한 학생들을 돌려보냈다고, 1학년인데 벌써 교칙을 어긴다고 걱정을 하셨다.
 
"선생님, 솔직히 저라도 저런 분위기에선 먹기 싫겠어요."
"하긴 그래요. 그래도 교칙은 지켜야죠. 그리고 몰래 나가 편의점 가다 사고 나면 누가 책임져요?"
"교칙도 아이들을 위해 있는 건데... 곧바로 교칙을 이야기하기보단 위험성을 강조해서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애들이 오니 우리도 좋잖아요?"


코로나19로 우린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과 평범함의 소중함을 깨닫게도 해주었다. 계속 반복되는 학교생활에 젖어 어느덧 감사의 마음보다는 아이들을 귀찮게 생각하고 그저 방학만 바라보고 사는 삶을 살았던 나에게 매일 반복되는 그 지겨운 일들이, 또 말도 정말 안 듣는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이 깨달음을 얼마간만이라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문득 며칠 전 선생님들과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뭐 하고 있었는지를 이야기한 게 생각났다.

"전 사람들 눈동자를 통해 경기를 봤어요."
"그게 뭔 말이야?"
"제가 그때 군대에 있었는데 인천 월드컵 경기장 경비를 섰거든요. 관중석을 보며 경비를 서서 관중들의 반응을 보고 경기 상황을 짐작했거든요."
"아, 그렇구나. 난 아들을 무동 태우고 동네 놀이터에 설치된 큰 화면으로 단체 응원을 했는데..."



한참이 지나 아이들은 2020년을, 또 서로를 어떻게 기억할까? 2020년을 그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친구들도 못 만난 불운하고 불편한 해가 아닌 서로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 한 해로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직 2020년이 삼 개월이 남았다. 좀 더 아름다운 일상이 아이들 눈동자에 가득하기를 바라본다.
#학교 코로나 방역 #기억 #일상의 소중함 #감사한 마음 #방역 지원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총선 참패에도 용산 옹호하는 국힘... "철부지 정치초년생의 대권놀이"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