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세트장 옆 고구마 밭, 장관이네

동네 사람이 키운 고구마 밭을 구경 갔습니다

등록 2020.09.22 14:48수정 2020.09.2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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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뷰가 한눈에 보이는 고구마 밭 저수지 물바람과 서동요 세트에서 찍은 사극이 키운 고구마밭 ⓒ 오창경

충남 부여군 우리 동네 서동요 세트장 옆에는 작은 황토밭이 있다. 저수지와 드라마 세트장이 배경인 고구마 밭이다.


동네 사람이 심고 저수지의 물바람과 사극이 키운 고구마다. 요즘 유행하는 리얼리티 예능을 찍기에 좋은 배경의 고구마 밭이다. 꽃무늬 일바지에 밭 의자를 엉덩이에 달고 연예인들이 와서 고구마를 캐는 모습을 찍는다면 대박이 날 배경 속에 고구마 밭이 자리 잡고 있다. 얼마 전 고구마 줄기를 잔뜩 가져다줘서 고구마 줄기 김치를 담가서 나눠먹었던 지인의 밭이 바로 이 밭이었다. 드디어 배경이 너무 멋있어서 고구마 맛도 좋을 것 같은 그의 밭에서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캐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 고구마 줄기를 걷는다. 손으로 일일이 걷어내기에는 노동력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요즘에는 예초기로 줄기를 날려버린다. 고구마 줄기에 예초기 칼날이 스치면 고구마 냄새가 난다. 싱싱한 풋것의 냄새가 코끝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고구마의 맛을 보기도 전에 삶은 고구마를 한입 베어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둘째는 고구마를 심었던 두둑에 친 비닐을 걷어낸다. 고구마 줄기가 무성해지기 전까지는 잡초들의 공격이 심해서 비닐을 씌우지 않으면 고구마가 성장하기 어렵다.

셋째, 드디어 고구마를 캐기 시작한다. 호미로 캘 경우에는 두둑의 아래쪽을 브이(V자)자로 파내고 고구마를 조심스럽게 들어낸다. 고구마의 몸통에 상처가 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손으로 흙을 헤쳐 가며 살살 캐내야 한다. 보통은 삼지창이라는 농기구를 이용하여 밭두둑을 뒤집어서 고구마를 줍는 방식으로 한다.

지인의 가족들이 놀러 와서 아이들이 고구마 캐기 체험을 한다고 해서 이런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남자 아이들만 셋을 키우는 가족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고구마보다 고구마를 캐는 기구에 관심을 보였다. 고구마 두둑을 뒤집는 삼지창이 매력적으로 보였는지 서로 해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고구마에 상처가 나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고구마 밭에서 삼지창을 사용하는 일은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이다. 삼지창으로 흙을 뒤집는 일은 고구마 캐기 작업 중에서 가장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방금 캔 고구마의 껍질을 벗긴 안주에 막걸리 한 잔을 먹어가며 작업해야 속도가 나는 일이다.

땅속에서 캐어낸 고구마는 바로 상자에 담는 것이 아니라 밭고랑에 그냥 내버려 둔다. 햇볕에 충분히 흙이 마른 다음에 잔뿌리를 다듬어서 바구니에 담는다. 고구마를 주워 담는 일을 도와주면서 보니 고구마에 뭔가 갈아 먹은 것 같은 상처가 난 것들이 있었다. 이빨 자국도 선명하게 반쯤 없어진 고구마들도 있었다.

고구마의 천적은 멧돼지뿐만이 아니었다. 들쥐들도 땅속을 헤집고 고구마를 갉아 먹는 존재였다. 농사일만큼은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일기를 예측할 수 없는 기후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고구마를 수확하게 된 것은 다행이었다. 작황은 일조량이 부족해서 당연히 작년보다 형편이 없지만 잦은 비에도 죽은 줄기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고구마 맛탕 밭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에어프라이기에 구워서 조청을 끓인 옷을 입혀서 만든 고구마 맛탕 ⓒ 오창경

고구마는 후숙을 시켜서 먹는 뿌리채소이다. 고구마 줄기에서 나오는 하얀 진액이 고구마 뿌리에 저장되어 단맛이 배가된다. 동네 사람 말에 의하면 고구마는 저장할수록 달고 맛이 있어진다고 한다. 그가 심은 고구마 품종은 베니하루까라는 호박 고구마와 밤고구마의 중간쯤의 맛이 나는 고구마라고 한다.

고구마는 최근 식이 섬유가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아서 다이어트 식품과 빵과 음료, 떡 등 가공식품으로도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농산물 중에 하나이다. 서동요 드라마 세트장 옆 경치 좋은 곳에 고구마 밭이 자리 잡고 있으니 고구마는 캐자마자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바로 팔려버린다고 했다. 작년에 주문했던 고객들의 선주문으로 50박스가 예약이 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1500년 전 백제 무왕이 마를 캐서 팔았던 어린 시절을 그린 서동요 드라마 세트장에서 고구마를 심어서 팔고 있으니 고구마 밭 주인이 바로 서동의 후예였을 수도 있겠다. 이왕이면 서동이 팔았던 마를 재현해서 '서동이 팔던 마'로 이름 붙인 마를 심어보면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토질이 맞을지 알 수가 없어서 생각해볼 과제라고 했다.
덧붙이는 글 충화댁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서동요 세트장 #고구마 캐기 체험 #베니하루까 #백제 무왕 #다이어트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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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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