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6 11:49최종 업데이트 20.09.2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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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한 지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수액을 주렁주렁 매달고 복도를 오갈 정도로 살 만해졌습니다. ⓒ 송성영

 
날이 밝자마자 미워하고 증오하고 질투하고 징징거리며 버럭버럭 화를 내는 아수라 같은 TV상자 속의 사람살이가 보입니다. 병상에 꼼작 없이 누워 있는 환자들의 하루는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아침 드라마로 시작 됩니다.

대부분 병원 의사들이 그렇듯 담당 의사는 다소 권위적이지만, 항시 주사 바늘을 챙기는 간호사들은 무척 친절합니다. 친절한 간호사들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사 맞는 것도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인가 봅니다.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쯤 지나고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고 주사바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주사 바늘을 무심결 직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주사 맞을 때 첫 번째로 용감하게 나섰지만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리곤 했습니다. 용감하게 주사바늘을 받아들인 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 주사 맞는 것을 보기 힘들어 단지 그 공포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지요.

긴장을 하게 되면 주사바늘이 잘 들어가질 않아 고통만 가중될 뿐입니다. 주사 바늘이 그렇듯 병상은 아수라 세계가 펼쳐지는 TV 드라마든 그 어떤 경우든 모든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사람 관계 또한 누구든 가장 낮은 자세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때 그가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나 또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지요.

병원에 입원한 지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수액을 주렁주렁 매달고 복도를 오갈 정도로 살 만해졌습니다. 알 수 없는 별의별 수액과 수혈의 도움으로 현기증도 어지간히 사라졌습니다. 다 죽어가는 인간이 사흘만에 이리 멀쩡해지다니. 그동안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병원 문턱을 넘지 않았는데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로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해가며 녀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의 짐을 짊어지게 할 바에 차라리 히말라야 깊숙한 곳에서 끝장을 내고 싶었지만 녀석들의 절실한 희망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 송성영

 
나를 살려낸 것은...

다 죽어가는 나를 멀쩡하게 살려놓은 것은 의사의 처방이 큰 몫을 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수많은 동물들과 사람들, 그 누군가의 희생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살려놓은 별의별 수액들. 그 수액들이 거부감 없이 몸으로 흘러 들어와 나를 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의 생체 실험이 뒤따랐을까요.

동물들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사라질 때까지 알게 모르게 생체 실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내 몸속으로 들어와 생기를 불어넣은 혈액. 나와 같은 혈액형을 가진 그 누군가의 자비심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축농증 수술을 받거나 시원찮은 치아 때문에 종종 치과에 다니곤 했지만 입원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다섯 봉지의 피 주사를 맞아가며 병상에 누워 있다는 것 자체가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입원 닷새째부터 여유가 생겼습니다. 빠른 속도의 인터넷 덕분에 삼부자가 노트북 앞에서 킥킥 거리며 영화도 실컷 보았지요, 우리가 사는 산막에는 TV는 물론이고 인터넷 선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야, 병원이 이렇게 편한지 몰랐다. 뜨건 물에, 스팀 팡팡 나오지, 인터넷도 빵빵 터지지... 가만히 누워 있어도 밥 갖다 주지... 호텔이 따로 없다야."
"근디 호텔은 가봤어?"
"아니? 아참 가봤다. 신혼여행 때도 안 가봤던 호텔을 북한 금강산 갔을 때 가봤다."
"언제?"
"니들 어렸을 때. 금강산 상품권이 걸린 공모전에 당선돼서 니들 엄마하고 가봤지... 암튼 침대가 텅텅 비어 있으니까 2인실 병실이나 다름없다. 니들 오늘은 둘 다 자구 가라."


두세 살 무렵부터 텔레비전 방송도 보기 힘든 산골과 바닷가 외딴집 생활에 잔뼈가 굳은 두 아들이었지만 인터넷조차 들어오지 않는데다가 지게질로 땔감을 구해 아궁이 불을 지펴야 하는 산막 생활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녀석들은 병상 한 옆댕이에 보호자 의자로 간이침대를 만들어 놓고 교대로 산막과 병원을 오가며 조직검사 결과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수염발 허연 철부지 아버지와 문명의 이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입원 엿새째 날, 기다리던 내시경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 삼부자는 의사의 입을 주시했습니다. 내시경을 마치고 나서 나름 짐작 가는 게 있다던 담당 의사가 조직검사 결과가 적힌 차트를 넘겨보던 시선을 안경너머로 치켜뜨며 말했습니다.

"거의 확실합니다."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며 확신에 가까운 답을 덧붙였습니다.

"조직검사 결과 위암일 가능성이 칠십 퍼센트가 넘습니다."

의사와 달리 애초에 위궤양을 기대했는데 암이라니? 기대치와 너무 벗어났습니다. 멍한 기운과 함께 영화 한 편을 찍고 있다는 묘한 기분이 스며들었습니다. 내가 처한 세상이 허상세계처럼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숨이 막혀 죽음이 목구멍으로 바싹 다가왔던 일주일 전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괜찮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암일 확률이 70%라 하지 않던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지푸라기를 찾고 있었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로 볼 때 중기 위암으로 보면 됩니다. 좀 더 자세한 검사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받아 보시죠."

우리 삼부자는 70%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사실 70%가 절망이고 희망은 30%에 불과한데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편리대로 해석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녀석들의 슬픈 눈빛에 고집불통의 아버지가 평소 입버릇처럼 말했던 죽을병에 걸리면 히말라야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여 있었습니다. ⓒ 송성영

 
"전부 다 잘라내야 겠는데요"

다음날, 서산에 있는 병원에서 퇴원 하자마자 미리 예약 해놓은 서울 큰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혼잡한 도로를 빠져 나와 더욱더 혼잡한 병원 주차장에 겨우 차를 세워 놓고 복잡한 도로만큼이나 많은 사람들 숲을 헤집고 겨우 서울 의사와 마주 앉았습니다. 건조하게 생긴 암 전문의가 서산의 병원에서 찍어온 위 내시경 사진과 조직검사 결과 자료를 컴퓨터에 띄워놓고 무표정하게 말했습니다.

"위암 맞습니다. 잘라내야 겠는데요."
"얼마나요?"
"전부다요."
"위를 전부 다요?"
"예."
"아..."


진행형 악성 위암이 확실하며 거기다가 전부 다 잘라 내야 된다는 말에 순간 주변의 모든 움직임들이 정지된 느낌이었습니다. 70%의 부질없는 희망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정지화면이 다시 돌아가면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두 아들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녹다운 일보직전의 지 애비를 곁눈질로 쳐다보았습니다. 검은 석탄처럼 딱딱하게 굳은 혈변을 보고 호흡곤란으로 쓰러졌을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 죽음을 깊이 있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두 아들의 고통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녀석들의 슬픈 눈빛에 고집불통의 아버지가 평소 입버릇처럼 말했던 죽을병에 걸리면 히말라야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고여 있었습니다.

암이 아니라 위궤양일지 모른다는 약간의 기대감으로 나름 당당하게 암과 맞장을 뜨러갔다가 느닷없는 어퍼컷 한 방에 그로기 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할 때처럼 심장 뛰는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의 침통한 표정을 보다가 정신을 곧추세웠습니다. 의사 말로는 위의 하부에 암세포가 발견되면 일부만 절제 하면 되는데 나처럼 식도와 가까운 상부에 암세포가 발견되면 전부 다 잘라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위를 다 잘라 내면 뭘루 소화 시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의사는 위를 다 잘라내면 식도와 소장을 연결하게 될 것이라며 환자가 불안해하거나 말거나 죽음에 무감각한 인도 화장터의 잡부처럼 무표정하게 말했습니다. 이런 저런 질문을 쏟아낸 것 같은데 뭔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습니다. 다만 3분 진료 시간 초과를 간호사에게 간접적으로 알리는 듯한 의사의 건조한 목소리만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다음 분 들여보내세요."

뭔가를 더 묻고 싶었는데 떠밀리듯 진료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내가 만약 위를 완전히 잘라내야 한다는 말 한마디에 그로기 상태가 되지 않았다면 분명 의사에게 버럭 화를 냈을 것입니다.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를 자동차 정비처럼 취급하는 의사에게 "이런 X같은 경우가..." 어쩌구 해가며 쌍욕을 쏟아냈을지도 모릅니다.

진료실에서 나온 두 아들의 한숨 소리가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녀석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짐짓 별거 아닌 것처럼 말했습니다.

"괜찮다 괜찮어. 죽음 바로 앞에도 가봤는데 그 까짓 거..."
"중기라니께 수술하면 괜찮을 겨..."


녀석들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기가 아닌 것에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로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해가며 녀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의 짐을 짊어지게 할 바에 차라리 히말라야 깊숙한 곳에서 끝장을 내고 싶었지만 녀석들의 절실한 희망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수술을 포기하고 떠난다면 녀석들에게 더 큰 짐, 평생 아픔을 남겨줄 것만 같았습니다.

"위 한티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 까짓 거, 쌈박하게 잘라내자."
 

병원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 송성영

 
병원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막상 위를 다 잘라내야 된다고 생각하니 위에 큰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60년 가까이 함께 해온 위와 작별할 시간들이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위를 함부로 하며 짐승처럼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눈밭에 선명하게 찍혀왔습니다. 그동안 떠넘긴 음식물을 탑처럼 쌓아올리면 수미산보다 높을 것이었습니다. 위는 그 업장만큼이나 많은 음식물들을 소화시켜 내 몸을 운행시켜 주었습니다. 그 노고에 대한 고마움을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랬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사 바늘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듯 암 수술을 받아들이자' 스스로에게 다짐을 놓아가며 수술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눈 내리면
길 잃은 짐승의 발자국
선명하게 다가온다.
마음자리에 찍혀 있는
지난 흔적들처럼...
-2018년 12월 서울 큰 병원에 다녀와서-

 

눈 내리면 / 길 잃은 짐승의 발자국 / 선명하게 다가온다. / 마음자리에 찍혀 있는 / 지난 흔적들처럼... ⓒ 송성영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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