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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말했다, 너희 마을은 어떻게 할 건데?

[서평] 책 '마을의 진화'를 읽고

등록 2020.09.23 11:41수정 2020.09.2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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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을의 진화> ⓒ 반비

필드워크(fieldwork)

필드워크(fieldwork)라는 말이 심심찮게 주변에서 들려왔다. 이 용어는 '현장 연구'를 뜻한다. 국민의 세금을 운용하여 집행되는 '도시 재생, 뉴딜'등의 사업이, 일부 몇몇 전문가들의 탁상 논의에서 출발하여 완결 짓는 것에 대한 주민들의 불편함이 드러난 말이기도 했다.

겉보기에는 좋지만, 실제 주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건축물을 볼 때면,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주민들은 '컨설팅 업체에 의존하여, 서류상 필요한 형식적인 워크숍이나 공청회 하지 말자. 끝장 토론을 해보자. 업체나 공무원들이 마을로 들어와서 쓱 훑어보고 지나가지 말고, 주민들과 제발 같이 좀 걸으면서 이야기 나누자' 등을 행정기관에 요구했다.
 
나는 '협동'이라는 말을 행정 기관이 가볍게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보는 행정 기관이 독점하고 주민이 과정에 간섭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해주기만을 바라는 것을 '협동'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런 가식적인 '협동'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282쪽)
 
협동은 거창한 목표를 위해 동원되는 명사가 아니다. '-하다'라는 말이 붙어 동사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이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누구와 관계를 맺을 것인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마을 공동체가 함께 즐겁게 살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등에 관한 물음이자 답이 바로 '협동하다'여야만 한다.

간다 세이지가 지은 <마을의 진화>는 소박하고 평범하게 사는 마을 주민들이 '혁신, 재생'을 말하지 않고, 초고령화,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항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다룬 책이었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민과 관의 거버넌스 구축은,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대안을 위한 고민
 

가미야마 주민들의 고민이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마을에서 더이상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다는 것, 그 결과 학교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는 온도가 모두 같을 수 없었다. 불같은 사람과 얼음같은 사람의 온도를 적정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소통이다.

'소통'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의미다. 오해를 없애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목표를 수립하고, 정책을 만드는 절차상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효율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탁상공론에서 만들어진 건축물이 2~3년 후, 폐가와 다를 바 없이 방치되는 장면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우선 면사무소는 초안과 사무국 안을 준비하지 않았다. 전략은 젊은 주민이 면사무소 직원과 함께 하나하나 처음부터 만들어가게 했다. 업무로 바쁜 사람과 아이를 키우는 세대인 주민의 의견을 듣는 대상으로만 삼지 않고 면사무소와 협동하여 전략을 만드는 주체로 만들었다. (156~157쪽)
 
브리핑을 위한 PPT를 만들지 않은 것, 고민의 출발점을 민과 관이 동등하게 공유하는 것, 허심탄회하게 민과 관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가미야마에 사는 사람들이 택한 방법이었다.

정책의 시혜자나 수혜자가 아닌,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소속감이 이러한 워크숍으로 한층 강화됐다. '나는 관여하지 않지만 누군가 해주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태도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나온 이야기가 무궁무진했다.
 
자녀를 키우는 세대를 중심으로 한 공동주택 개발, 옛집의 리노베이션, 유치원에서 초중고등학교까지 연대한 지역 교육을 실현하는 교육 코디네이터 설치, 면사무소에서 시작한 지역 내 경제순환, 우드칩 바이오매스의 활용을 통한 에너지 자급자족, 지역 영농과 식문화를 진화시키는 농업생산 법인 '푸드허브' 설립, IT 기술을 활용한 조수 피해 대책. (175~176쪽)
 
다양한 계층 사이에서 공론화된 문제 인식 덕분에, 그 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할 때도 여러 색깔의 출구가 만들어졌다. 대안이 여러 가지라면, 그중 해볼 만한 구체적인 안건을 의제로 놓고 좀 더 섬세한 작업을 하면 된다. 그러한 과정을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 아이들이 보고 있었다.

마을교육 공동체의 탄생

단순히 '우리 지역 농산물이니 우리가 소비해야 합니다'가 아니었다. 가미야마의 주 산업은 농업과 임업이다. 로컬푸드 운동은 그저 지역의 농산물의 소비 촉진을 위한 운동에 그치지 않았다. 그보다 왜 우리가 지역 농산물을 구매해야 하는가 내지는 안전한 먹거리 확보와 지속적인 생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결과 이루어진 것이 '먹거리 교육'에 필요한 지역민간의 네트워크의 형성이었다. 자연스레 지역 농산물 소비가 이어졌다. 지역민들은 먹거리 교육을 받고, 그 농산물이 자라는 환경을 눈으로 봤다. 지역농가와 소비자인 지역민 간의 만남은 유통 브로커 없이도 이어졌다. 예정된 고객이 있으니 1차 생산업자인 농부의 고민거리인 판로개척의 문제 역시 해결된 것이다.

또, 농업의 생산의 목적은 '식량 안보'라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학생들은 작물이 생산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게 됐고, 이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됐다.
 
고등학생이 배우는 가미야마 창조학

1년차의 커리큘럼은 '관계 만들기', '지역 알기', '지역에 들어가기', '지역에서 배우기' 등 네 개로 구성되어 있다. 1학기에는 '마을을 돌다'라는 주제로 10명씩 무리를 지어 갈 곳을 정해 사전 학습을 한 뒤, 가미야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2학기에는 '마을 만들기 체험' 주제로 10월 중순에 이틀간 1~2명이 면내의 17개 장소에서 체험한다. (257쪽)
 
자연스레 아이들은 그 지역의 마을 어른들을 만나게 된다. 세대 간 교류를 통해 단순히 세대 간 이해를 도모하는 것을 넘어서서, 서로 돌봄 모델이 된다. 아이들이 어른을 알고, 어른은 아이를 아는 과정에서 시작된 것이 '손자 프로젝트'였다.

산다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 가족의 일, 늙어가는 것,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고령자를 통해 아이들이 보고, 듣는 과정에서 배움은 딱딱한 교실을 떠나 세상 밖 마을에서 이뤄졌다.

<마을의 진화>가 갖는 의미
 

지역에서 누군가를 만나, 작게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에서부터 크게는 마을, 지역의 현안을 다루는 문제를 고민하는 활동가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수평적 관계에서 소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말로는 '소통'하지만 불통이고, '수평'이 아닌 '수직'이다. 연장자인 주최자의 의견에 조금이라도 빗나가는 얘기를 하면 '누구집 아무개 자식이 버릇없네', 또는 '하기 싫으면 관둬!' 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온다. 이름이 드러난 사회에서는, 의사 결정에 있어서도 제약이 많다.

불평과 불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안을 모색하려면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역 활동가들은 입을 다물고, 면사무소 직원들이 나눠준 페이퍼에 열심히 무언가를 끄적였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라는 주체, 마을 사람들이라는 주체, 행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라는 주체, 그들 사이에 대변자라고 앉아 있는 군의원이라는 주체 등을 3인칭으로 바라봤을 때 보이는 풍경이었다. 

가미야마가 특별한 이유는, 개방에 있었다. 외부인에 대한 거부감을 마을 사람 스스로 떨쳐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가미야마에 IT업계 위성사무실이 들어설 수 있었던 배경에 바로 '개방성'이었다. 일자리가 없는 마을이다 보니, 들어올 당신들이 이곳에서 일할 거리를 가지고 오라는 역발상은 당돌하다 못해 기가 찼다.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함께 살아갈 사람을 품에 안겠다는 관점이 있었다. 가미야마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단점을 개방했다. 지역소멸 위기에 봉착한 농산어촌 지역민들에게 시사점을 던지는 듯했다. 책을 덮으니, 다시 책이 물었다. 너희 마을은 어떻게 할 건데?

마을의 진화 - 산골 마을 가미야마에서 만난 미래

간다 세이지 (지은이), 류석진, 윤정구, 조희정 (옮긴이),
반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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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전공 석사수료. 전남지역에서 융합예술교육 강의 및 인문협업 활동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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