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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형은 처형되고 둘째형과 유배형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28회] 삼형제 중 하나는 참수되고 둘은 천리 길에 유배되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겠는가

등록 2020.09.27 16:24수정 2020.09.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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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동상 책을 읽고 있는 다산의 모습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평생에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집필했다. ⓒ 박태상

 
2월 10일 시작된 국문이 2월 25일에야 끝났다.

형 정약종과 이가환ㆍ이승훈은 살아남기 어려웠으나 정약용은 석방 쪽으로 재판관인 대신들의 의견이 모아지는 듯 하였다. 그런데 우의정 서용보가 강경하게 나왔다. 정약용이 암행어사 시절에 경기도 관찰사로 있던 서용보의 비리를 적발하여 그가 불이익을 당했는데 그때의 앙심으로 보복에 나선 것이다. 그는 순조 정권의 실세였다. 그래서 가혹한 옥사가 진행되었다.

국문의 결과를 재판장 이병모가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순조실록』 신유년 2월 25일조에 실렸다. 그나마 사형은 면하고 유배형의 공소장이다.

정약전ㆍ정약용에게 애초에 물들고 잘못 빠져 들어간 것을 범죄로 논한다면 역시 애석하게 여길 것이 없지만, 중간에 사(邪)를 버리고 정(正)으로 돌아왔던 문제를 그들 자신의 입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약종에게서 압수한 문서 가운데 "자네 아우(정약용)가 알지 못하도록 하게나." 라는 말이 나오며, 정약종 자신이 썼던 글에도 "형(정약전)과 아우(정약용)와 더불어 함께 천주님을 믿을 수 없음은 나의 죄악이 아닐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점으로 보면, 다른 죄수들과는 구별되는 면이 있습니다. 사형 다음의 형벌(유배형)을 시행하여 관대한 은전에 해롭지 않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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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정약용 사적비 장기초등학교에 2001년 세워진 우암 송시열-다산 정약용 사적비 ⓒ 추연만

 
보고를 받은 임금은 다음날 판결을 내렸다. 역시 『순조실록』 신유년 2월 26일조이다.

죄인 정약전ㆍ정약용은 바로 정약종의 형과 아우 사이다. 애초에 우리나라에 사서(邪書)가 들어오자 읽어 보고 좋은 것으로 여기지 않음은 아니었으나, 중년에 스스로 깨닫고 다시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려는 뜻이 예전에 올린 상소문과 이번에 국문을 받을 때 상세히 드러났다.

차마 형에 대한 증언을 할 수 없다고는 했지만, 정약종의 문서 가운데 그들 서로 간에 주고받았던 편지에서 정약용이 알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으니, 평소 집안에서도 금지하고 경계했음을 증험할 수 있다. 다만 최초에 물들었던 것으로 세상에서 지목을 받게 되었으니 약전, 약용은 사형 다음의 형벌을 적용하여 죽음은 면해 주어 약전은 강진현 신지도로, 약용은 장기현으로 정배(定配)한다.

이승훈과 정약종ㆍ이가환ㆍ권철신 등은 참수당하였다. 이벽은 1876년에 이미 병사하여 이때 희생되지는 않았다. 정약전은 신지도(현 완도군 신지면)로, 정약용은 장기(현 포항시 장기면)로 유배형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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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재성지 마재성지는 다산 정약용의 셋째형 정약종의 생가다. 대개 천주교 성지는 순교와 관련된 곳이 많다. 절두산, 새남터, 황새울 등등... 하지만 이 곳은 독특하게도 한 인물의 생가가 성역화 됐다. 그만큼 우리 천주교에서 정약종의 업적과 희생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 곽동운

 
죄인의 신분이 된 정약용은 2월 27일 밤에 감옥에서 나와 이튿날 유배길에 올랐다. 서울서 장기까지는 천리 먼 길이다. 내려가는 길에 하담의 선영에 들러 부모님의 묘소를 찾았다. 처자와 이별할 때는 꿋꿋한 모습을 보였는데, 부모님 무덤 앞에서는 서러움이 북바쳤다.


어머니 해남 윤씨부인에게서 출생한 삼형제 중 하나는 참수되고 둘은 천리 길에 유배되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겠는가. 그 마음이 「하담별(荷潭別)」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버님이여, 아시는지요
 어머님이여, 아시는지요
 가문이 갑자기 무너지고
 죽은 자식 산 자식 이꼴이 되었어요
 남은 목숨 보존한다 해도
 크게 이루기는 이미 틀렸어요
 자식 낳고 부모님 기뻐하셔서
 부지런히 어루만져 길러주셨지요
 하늘 같은 은혜를 갚아야 마땅하나
 풀 베듯 제거당할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는
 자식 낳았다고 축하를 못하게 했군요.

유배형을 받으면 도사 또는 나졸이 지정된 유배지까지 압송하여 고을 수령에게 인계하고, 수령은 죄인을 보수주인(保授主人)에게 위탁한다. 보수주인은 그 지방의 유력자로서 한 채의 집을 배소로 지정하고 유죄인 감호의 책임을 졌으며, 그곳을 배소 또는 적소(謫所)라고 하였다. 배소에서 유죄인의 생활비는 그 고을 부담의 특명이 없는 한 스스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정약용의 경우, 고을 부담인지 자부담인지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3월 9일 경상도 장기에 도착하여 성문 동쪽 시냇가 자갈밭에 있는 늙은 장교 성선봉의 집에 거처를 정하고 머물렀다. 고을에서 지정해 준 배소였다. 유배형에는 따로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다. 임금이 특사로 해배해주면 다음날이라도 풀리고 아니면 종신형이다.

정약용은 기약없는 장기현의 유배생활을 시작한다. 사형당한 셋째 형과 신지도로 유배된 둘째 형 그리고 지난날 뜻을 함께했던, 그러나 지금은 세상에 없는 동지들을 기리면서 유배지의 생활을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다산 #정약용평전 #정약용 #다산정약용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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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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