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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유배지에서 의서 '촌병혹치' 지어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29회] 그는 건강이 회복되자 환자들을 치료하는 약의 개발에 나섰다

등록 2020.09.28 17:30수정 2020.09.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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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초상화. ⓒ 이재형

 
낯선 지역에 팽개쳐진 그는 아무리 강한 신념의 소유자라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

우선 남녘의 음식이 맞지 않았고 바닷가라 습한 기후 때문인지 감기에 자주 걸렸다. 비좁고 천장이 낮은 방은 생활하기에 크게 불편하였다. 「고시 21」이란 시에 정황이 나타난다.

 작고 작은 나의 일곱 자 몸
 사방 한 길의 방에도 누울 수 없네
 아침에 일어나다 머리를 찧지만
 밤에 쓰러지면 무릎은 펼 수 있다네.

장기현의 유배 초기에 그는 각종 병으로 시달렸다. 공포증과 몸을 꼿꼿이 세우기 어려운 병이었다. 사람에  따라 고난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는 절망적인 처지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책을 읽고 연구하고 글 쓰는 일은 그의 장기에 속한다. 6월에야 겨우 몸을 추스렸다. 이때 지은「밤(夜)」이란 시다.

 병석에서 일어나서 복이 다 지나
 수심 많은 여름밤은 길기도 하구나
 잠시 베게 베고 대자리에 누우니
 문득 집 생각 고향 생각 그립구나.

그는 건강이 회복되자 환자들을 치료하는 약의 개발에 나섰다. '목민정신'이란 관직에 있을 때나 떠났을 때나 변함이 없는 그의 몫이었다. 그래서 의학관련 책을 지었다. 『촌병혹치(村病或治)』라는 책의 서문이다.

내가 장기에 온 지 몇 달 지나자 집 아이가 의서 수십 권과 약초 한 상자를 보내 왔다. 귀양지에는 서책이 전혀 없었으므로 나는 보내준 책만을 볼 수밖에 없었고, 병이 들었을 때도 보내준 약만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객관을 지키고 손님을 접대하는 사람의 아들이 부탁했다.

"장기의 풍속은 병이 들면 무당을 시켜서 푸닥거리를 하고, 그래도 효험이 없으면 뱀을 먹고, 뱀을 먹고도 효험이 없으면 그냥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하여 선생이 보신 의서로 이 궁벽한 고장에 은혜를 베풀지 않습니까?"

"좋소. 그대의 말대로 의서 하나를 만들겠소."

정약용은 의학서의 이름을 『촌병혹치』라고 지으면서, 그 이유를 서문에서 밝혔다. 곡산부사 재임기에 홍역에 관해 지은 『마라회통』에 이은 두 번째 의서에 속한다. 서문은 이어진다.

이름을 『촌병혹치』라고 했다. '촌(村)'이란 비속하게 여겨서 하는 말이고, '혹(或)'이란 의심을 풀지 못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 그렇지만 잘만 사용하면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약제의 성질과 기운을 구별하지 않고 차고 더운약을 뒤섞어서 나열하느라 이쪽과 저쪽이 서로 모순되어 효험을 보지 못하는 세상의 보통 의서와 비교하면 도리어 더 우수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 약을 이미 간략하게 했으니 반드시 그 주된 처방에서는 효과가 나타남이 뚜렷하지 않겠는가.

한스럽기는 간략하게 하려면 반드시 널리 고찰해야 하는데 참고한 책이 수십 권에 그쳤다는 점이다. 그러나 뒷날 내가 다행히 귀양해서 풀려 돌아가게 되면 이 범례에 따라 널리 고찰할 것이니, 그때는 '혹'이라는 이름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상편은 색병(色病:남녀 관계로 생기는 병)으로 마감했으니 이 또한 세상을 깨우치고 건강을 보호하려는 나의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애민사상과 실학정신이 묻어난다. 정권에 쫓겨 외딴 바닷가에 유배된 신세이지만 병들고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고자 하는 마음은 한시도 변하지 않았다.

장기땅에는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 상복문제로 '예송논쟁'이 일어났을 적에 패배하여 한때 이곳에 유배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송시열을 제향하는 죽림서원이 세워졌다. 정약용은 어느 날  비록 당색은 다르지만 조정의 옛 원로인 송시열의 서원을 찾았다가 출입을 거부 당했다.

노론 영수의 서원에 남인 유배객을 들이지 않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쓴 것이 「장기의 귀양살이에서 본 풍속」이다.

 죽림서원이 마산리 남쪽에 있는데
 쭉 뻗은 대나무와 느릅나무 새잎이 밤비에 젖었네
 촛불 들고 멀리서 찾아가도 받지를 않는데
 촌사람들은 오히려 송우암(송시열)이야기만 하는구나.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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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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