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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렸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서로를 돌보는 방법 ②]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자활, 밥상을 차리며 시작됐습니다

등록 2020.09.23 16:23수정 2020.09.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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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0일, 온라인 생중계로 2020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나를 돌보며 주변을 함께 돌아보는 방법, 코로나 시대의 관계 맺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상생과 돌봄을 말하는 5명의 강의를 연속 기고를 통해 소개합니다. 

이 기사를 작성한 최정은은 1997년, 탈성매매 여성을 포함한 폭력 피해 여성들의 자활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자생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거쳐 지금은 자활지원센터 '넝쿨', 쉐어하우스 '상도동 우리집', 소셜 다이닝 공간 '비덕살롱', 복합문화공간인 카페 '곁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편집자말]

은성문화원의 모습 (현 사회복지법인 윙) ⓒ 최정은

  
사회복지법인 윙(Wing)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윙은1953년부터 우리 사회의 열외에 있는 여성들과 함께 해 온 여성들의 공동체입니다.

한국전쟁 직후 홀로 된 어머니들과 아이들을 위한 모자복지사업을 시작으로 1970년대 전후 산업화시대에는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나이 어린 여성들에게 안전한 주거 제공과 직업 교육에 집중했고요. 2000년대 초반부터는 성매매 피해여성을 위한 쉼터와 자활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여성의 자활을 위한 다양한 모색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요약하자면 시대가 필요로 했던 여성복지 사업을 수행해 온 셈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1997년 3월 1일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가출청소년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예전의 복지시설이 대부분 그랬듯이 건물은 무척 낡았고 공기는 음산했습니다. 저는 그런 환경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실내 공간을 바꾸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지원금을 신청하고 심사받는 절차가 필요했어요. 그것 말고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쉼터의 '식판'이 떠올랐어요. 꼬질꼬질했던 식판. 그 오래된 식판을 버리고 하얀색 멜라민 식판을 구입했습니다.

"그래, 밥이라도 깨끗하고 예쁘게 먹자, 그럼 삶이 조금은 달라질 거야"

시대가 필요로 했던 여성복지를 수행한 공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과연 자격증이나 학력 취득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기나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지내다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내면의 힘'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손가락에 낀 반지는 누구나 훔쳐갈 수 있지만 내면의 힘은 아무도 훔쳐갈 수 없다는 거죠. 그렇게 '내면의 힘'을 키우기 위해 윙의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 공부는 이제껏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삶의 모든 부분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인문학 선생님이 제게 묻더군요.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에서 왜 한 사람의 여성에게 기대어 밥을 먹고 있나요?" 쉼터의 인력 중 취사원으로 배치된 주방 선생님에게 당연하게 의지했던 그동안의 모습들이 떠올라 부끄러웠습니다. 소위 '자활'을 위한 공동체인데 정작 우리의 밥상은 누군가에게 의존했던 것이지요.


'그래, 우리의 힘으로 주방을 꾸려나가 보자!' 마침 주방선생님이 퇴사를 하게 되어 더 이상 취사원을 채용하지 않고 주방 운영을 새롭게 바꿨습니다. 우선 제가 주방매니저를 맡기로 했어요. 주방매니저의 역할은 1주일치 식단표와 식사당번 짜기 그리고 장보기입니다. 식단은 최대한 육식은 피하고 건강한 재료를 선택했죠. 주방 당번은 대체로 밥을 좀 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짝을 지어 했습니다.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최정은 ⓒ 최정은

  
그런데 쉽지 않았어요. 모두가 처음 해보는 주방 일을 부담스러워 했었죠. 습관처럼 남기는 음식물, 몸에 해로운 것만 찾는 식습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를 해야만 했고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로 주방에 있다 보면 서로 간에 마찰이 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의 불화는 모두 주방에서 비롯되었지요.

그래도 저는 꾸준히 밀고 나갔습니다.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라고 한 니체의 말을 굳게 믿고 있었거든요.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맛에 길들여진 입맛, 일회용기에 아무렇게나 먹는 습관을 바꾸기 위해 매일 매일 분투했습니다.

프로그램의 간식을 준비할 때에도 과자나 탄산음료 보다는 차를 끓이고 옥수수와 계란, 감자와 고구마 등을 삶고 싱싱한 과일을 준비했습니다. 혼자 먹더라도 반찬통째 꺼내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며 다양하고 예쁜 그릇들을 찬장에 넣어놨습니다.
 

윙의 평소 밥상 모습 ⓒ 최정은

  
이렇게 정성스런 한 끼, 두 끼, 세 끼가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되었습니다. 흔히들 '자활'을 이야기 할 때 자격증과 학력 취득 그리고 취업을 말씀하시지요? 이러한 것들이 갖추어져야 한다고요. 그런데 아무리 자격증이 10개 있어도, 그럴듯한 회사에 다닌다 해도 세 끼가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1주일이 되고 1주일이 한 달이 되는 '일상'을 가꿀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먹으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상을 방기하는데 어떻게 삶이 바뀔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전 자활한다는 것은 자격증이나 취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얼마나 잘 살아갈 수 있는가 그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이란 광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일상을 잘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혁명이라고 생각해요. 일상보다 위대한 혁명은 없거든요.
 
하루하루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


저는 '자활'이라는 개념도 처음에는 스스로 잘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센터의 여성들이 인턴 과정을 마치고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해도 오래 지속을 못하는 거예요. 왜 그럴까... 무엇이 그토록 힘든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함께' 살아가는 게 서툴러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서로의 형편을 잘 아는 '우리끼리'는 잘 사는데 윙을 떠나서 여러 사람들과 섞이게 될 때면 주저앉게 되는 여성들이 많았거든요.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 수 있을까?' 이것이 늘 저의 화두였어요. 이제 더 이상 게토화되지 말고 섞여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윙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오픈했습니다. 우선 NGO단체들에게 회의 공간을 제공했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저희가 식사하는 것을 보고 다음 모임에는 식사도 함께 준비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또 후원 행사에 음식을 해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케이터링까지 하게 되었어요.
 

윙에서 지원한 케이터링 행사 모습 ⓒ 최정은

 
다양한 사람들이 윙의 공간을 드나들며 외부로 케이터링을 나가서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렇게 우리의 공간과 음식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다보니 이제는 모든 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예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말이지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가 부딪혀야 하는 '어려움'은 아마 계속되겠죠... 그래도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운 것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단하게 스스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나'가 많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밥상도 마찬가지였어요. 나를 위한 밥상을 수도 없이 차린 사람만이 남을 위한 밥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돌보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저마다의 '자기 돌봄'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을 어떻게 가꿔갈 수 있을까 고민할 때 그 시작은 한 끼의 정성스런 밥상에서 시작되었죠. 삶의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도 우리의 주방이었고 사람에 대해 깊이 느끼게 된 것도 저와 함께 주방 당번을 하며 나눴던 사람들과의 대화였습니다. 깊은 외로움과 슬럼프에 빠졌을 때에도 윙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며 그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정성을 다한 한 끼가 모여 세 끼가 되고 그렇게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못다한 이야기]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그만큼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뭘 어떻게 먹고 사는지가 몸의 건강 뿐 아니라 정신의 건강에도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니체 자신도 뒤늦게 알았다고 한탄했어요. 먹는 것이 정신을 규정하는 것, 나쁜 식사는 나쁜 정신을 유발한다고 생각한거죠. 우리가 매일 삼시 세끼를 갖춰서 차려 먹을 순 없지만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나타낸다'는 것만 알고 있어도 습관적으로 인스턴트 음식을 사먹는 횟수를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못다한 이야기] 가족 돌보아야 하는 상황, 어떻게 해야할까?
저도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혼자 돌보았던 경험이 있는데요. 지나고 보니 병든 가족을 가족이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만약에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돌보고 자원봉사한다면 웃는 낯으로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가족을 돌볼 때에는 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가족을 병간호 해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건강이 아닐까 싶어요.

우선 가족이니까 뭐든 가족의 힘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최대한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활용하세요. 그리고 가족들과 서로 역할을 나눠야 해요. 가족 중 한두 사람의 몰빵으로 돌봄을 해결하는 것은 너무 화나요.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고 또 비혼 여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자기돌봄 #여성 #돌봄 #밥상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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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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