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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점프하는 놈!

[자연에서 배우는 삶] 다람쥐 세계의 조나단을 발견하다

등록 2020.09.25 16:32수정 2020.09.2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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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가끔 찾는 공원 입구에 새들을 위한 모이가 놓여 있는 곳이 있다. 장대처럼 기다란 쇠막대기 위에 새 집처럼 생긴 모이통이 걸려 있고, 그 안에는 새들이 좋아하는 해바라기 씨 같은 씨앗들이 가득 들어있다.


숲 근처에 사는 새들은 이 모이통에 내려앉아 씨앗을 먹고 사람들은 모여든 새들을 지켜 보면서 자연을 가까이서 느낀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다람쥐들이 눈에 띈다.
 

새가 먹다 떨어뜨린 씨앗을 주워 먹는 땅 다람쥐 새 모이가 걸려있는 쇠 막대기를 오를 수 없는 다람쥐들은 새가 먹다 떨어뜨린 씨앗을 주워 먹는다 ⓒ 김상대

 
땅 속에 굴을 파고 지내기 때문에 이름도 땅 다람쥐(ground squirrel) 라고 불리는 애들이다. 얘네들은 하루 종일 새 모이 막대가 있는 땅 주위를 돌아 다닌다. 새모이통에서 새가 먹다 땅에 떨어뜨린 씨앗을 주워 먹기 위해서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뭔가 안 된 느낌이다.

'새가 먹다 남은 찌꺼기를 다람쥐가 주워 먹고 있다니...'

그런 내 느낌과는 상관없이 다람쥐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기어 다니면서 열심히 새들이 흘린 씨앗들을 주워 먹는다. 이곳을 찾을 때마다 변함없이 같은 풍경이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한 장면이 펼쳐졌다. 다람쥐 한 마리가 쇠막대 위 새 모이통에 올라가 해바라기 씨앗을 빼먹고 있지 않은가?

'아니 저 쇠 막대기에 어떻게 올라갔지?'
 

공원 입구에 놓인 새 모이통 막대 다람쥐가 올라가 새 모이를 훔쳐먹지 못하도록 종 모양의 장애물을 붙여 놓았다. ⓒ 김상대

 
사람들은 다람쥐가 새 모이를 노리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궁리를 했다. 어떤 공원에서는 새 모이가 달린 쇠 막대 아래 부분에 기름칠을 해서 다람쥐가 미끄러져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고, 쇠 막대에 다양한 장애물을 부착한 곳도 있다.


이 공원에서는 쇠막대 밑 부분에 마치 종 모양처럼 아래 부분이 파인 장애물을 붙여 다람쥐가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정말 완벽한 장애물이다.

'그런데 쟤는 어떻게 저길 올라갔을까?'
 

체조 선수만큼 유연하게 새 모이를 빼앗아 먹는 다람쥐 쇠막대기로 뛰어 내리는 담력과 체조 선수만큼 유연한 몸, 뒷발만으로도 몸을 지탱하는 근력을 보여 준 특별한 다람쥐 ⓒ 김상대

 
다람쥐는 가느다란 쇠막대를 뒷발로 잡고 온 몸을 뻗어 앞발로 새 모이통을 붙잡더니 여유있게 해바라기 씨를 빼먹기 시작했다. 온 몸을 화살처럼 쭉 뻗어 씨앗을 먹고 있는 모습이 마치 기계체조 선수 같다.  

'유연하고 강인한 근육! 예사 놈이 아니다. 특별한 다람쥐가 나타났다.'

신기해서 가까이 다가서자 다람쥐는 재빠르게 땅 밑으로 내려와 멀찌감치 떨어져 내 눈치를 본다. 한참을 나와 눈싸움을 하다가 내가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 모르는 척을 했더니 그 틈을 타 옆에 있는 큰 나무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나뭇가지들을 잽싸게 건너 뛰어 오르더니, 새 모이가 걸린 쇠 막대 바로 위 나뭇가지에 엎드려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오 마이 갓! 저건 분명히 뛰어 내리려는 자세다. 아니, 설마?'

그렇게 의심하고 있던 순간, 다람쥐는 꽤 거리가 먼 쇠막대를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 내렸다. 그리곤 가느다란 쇠 막대기를 뒷발로 부여잡고 온 몸을 쭉 늘이더니, 앞 발로 새 모이통을 잡고 해바라기 씨를 빼먹기 시작했다.

한두 번 했던 솜씨가 아니다. 찔릴지도 모르는 뾰족한 쇠막대를 향해 뛰어 내릴 수 있는 용기와 뒷발로만 막대를 잡고도 온몸을 지탱할 수 있는 힘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갈매기들 세계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명언을 남긴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있다면, 이 다람쥐는 다람쥐 세계의 조나단이 아닐까!
 

자신만만한 표정 짓는 다람쥐 땅 위에서 기는 건 다람쥐가 할 일이 아니지, 우린 쥐가 아니라 다람쥐야! ⓒ 김상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이 나무 사이를 뛰어 다녔을까? 또 점프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땅바닥에 나뒹구는 시행착오를 거쳤을까? 다른 다람쥐들이 땅바닥에서 떨어진 새모이를 주워 먹고 있을 때 얘는 얼마나 가슴을 치며 통탄했을까?

'얘들아 우리는 쥐가 아니야, 다람쥐야, 어떤 나무라도 오를 수 있고, 어떤 나뭇가지라도 뛰어 건널 수 있는 다람쥐란 말이야!' 

몸을 쭉 뻗어 씨앗을 까먹고 있던 조나단 다람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다람쥐 눈빛이 반짝거린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나를 봐~ 나는 놈 위에 점프하는 놈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다람쥐 #새모이 #담력 #나는 놈 #뛰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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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있는 산부터 이름없는 들판까지 온갖 나무며 풀이며 새들이며 동물들까지...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사진을 찍다가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 슬며시 웃음이 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는 순간 등, 항상 보이는 자연이지만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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