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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중 24일 빈 손이지만..." 새벽5시 사람들은 그곳으로 모여든다

[코로나시대의 실업②] 장마에 코로나19 겹쳐 일감 줄어든 서울 남구로역 인력시장

등록 2020.09.27 12:13수정 2020.09.2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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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4시부터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든다. ⓒ 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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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로역 오전 4시 20분 남구로역 인력시장을 찾은 노동자들. ⓒ 신나리


"오늘은 일이 있으려나?"
"두고 봐야지, 어제도 못 했는데..."


검은색 모자에 마스크, 단단히 끈을 조인 등산화를 신고 연신 담배를 태우며 50대로 보이는 남성 둘이 대화를 나눴다. 23일 오전 4시,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새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하루다.

서울 구로구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4차선 도로 양쪽 두 개 차선을 마주하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거나 건물 1층에 앉아 줄담배를 피는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남구로역 인력시장은 경기 서남부·강북을 제외한 수도권 최대 규모의 건설부문 인력시장으로 꼽힌다. 그 덕분인지 여름과 겨울, 건설업 경기를 보거나 인력난을 확인하러 기자들이 종종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8월에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백 명이 줄 서 있는 남구로 인력시장 사진이 올라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일용직에 나선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남구로역 앞은 본래 최소 수백 명에서 최대 1천여 명까지 모여 하루의 노동을 사고파는 곳이었다. 남구로역 2번 출구 앞에서 리어카에 목수장갑, 망치, 줄자 등 건설현장에 필요한 물건을 4년째 팔아온 김춘화(가명·53)씨는 "보통 4차선 도로의 반을 차지할 만큼 사람이 모이기도 했다"면서도 "요즘 건설업도 힘든지 지난해보다 사람이 통 줄었다"라고 말했다.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확산과 8월 코로나19 재확산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3일 오전 4시부터 6시 30분까지 남구로역에서 일용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코로나에 장마까지,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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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로역 인력시장에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간은 오전 5시 20분 경이다. ⓒ 신나리

 
보통 건설 현장의 일감이 몰리는 시기는 4~9월이다. 추석 이후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일감이 줄어든다. 바람이 세지고 땅에 찬 기운이 스며들면 건설 현장은 안전과 부실시공에 주의해야 한다. 얼어붙은 땅에 콘크리트 작업을 하기도 마땅치 않고, 동절기에는 콘크리트 강도가 크게 약해지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동절기가 되면 안전사고와 부실시공 예방을 강조하며 전국 건설현장 안전점검을 한다.


이날 남구로역에서 만난 이들은 "올해는 내내 비수기와 다름없었다"라고 했다. 코로나19에 역대 최장기간으로 기록된 장마까지 겹쳐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것이다. 

"내가 일요일 빼고 인력시장 서는 날마다 여기 나왔어요. 그런데 9월 들어 딱 6일 일했습니다. 8월에도 마찬가지였고. 작년에는 안 그랬거든. 그때는 쉬는 날이 별로 없었지. 이번 주에도 월·화·수 오전 4시 30분이면 딱 나와 있었는데 어제 하루 일했어요. 오늘은 어떨지 봐야지."

매일 오전 4시에 구로구청 인근의 집에서 출발해 걸어온다는 이창수(가명·64)씨는 "8월에 다 합쳐봐야 일주일 일했다. 9월도 별반 다를 게 없다"라고 긴 숨을 내쉬었다. 34년 차 철근기술공인 그도 처음 마주한 현실이었다. 기술공은 보통 18~20만 원을 받지만, 일이 없으면 건설현장 잡부라도 해야 하는데 요즘에는 그 일마저 구하기 쉽지 않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담배도 끊었다는 그는 작고 단단한 손을 내밀며 "앞으로 이 손을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오전 5시, 남구로역 인력시장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시간이다. 이곳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남구로역 2번 출구 맞은 편에는 조선족·한족이 일감을 찾고, 신호등을 사이로 5번 출구에서 6번 출구 사이는 보통 한국 노동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족·한족 노동자의 수는 한국 노동자의 곱절 이상이다. 23일에 조선족·한족 노동자는 어림잡아 600여 명, 한국 노동자는 200여 명 수준이었다.

"추석 지나면 일감 더 없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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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로역 인력시장은 오전 6시경 사실상 마무리된다. 수백명이 모이는 장소라 구로구청 관계자는 매일 오전 6시경 길을 소독한다. ⓒ 신나리

   
조선족·한족 노동자를 상대로 공구잡화를 파는 최창수(가명·47)씨는 "여기는 주로 조선족이 많은데, 요즘은 일감이 많이 없어 보인다"면서 "사람이 많아야 장사가 되는데, 영 마땅치 않아 오전 6시도 안 돼서 가게 문을 닫는다"라고 말했다. 그의 가게에서 면장갑 다섯 켤레를 산 이필규(가명·52)씨도 "8월보다 9월이 더 한 거 같다, 추석 지나면 현장이 줄어들 텐데 이 장갑을 몇 개나 쓸지 모르겠다"라고 말을 보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아래 건산연)이 9월 한국은행(아래 한은)의 경제전망을 반영해 발표한 '경제성장률 전망 변화에 따른 건설투자 변화 시나리오 전망'은 이후 건설업의 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한은의 '2020년 2분기 기업경영분석'이 국내 건설업 2분기 매출액 증가율은 -3.1%로 지난 1분기 1.1% 대비 4.2%p나 떨어졌다. 이를 기반으로 건산연은 코로나19 재확산이 올 연말까지 지속하면, 올해(2020년)와 내년(2021년) 건설투자가 각각 1조 9천억 원, 3조 2천억 원 추가 감소한다고 봤다.

오전 5시 30분, 일자리를 구한 이들이 하나둘 공사현장으로 향하는 승합차에 올라탔다. 적게는 4명, 많게는 8명까지 차에 탑승했다. 일감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조선족·한족 노동자들 때문에 일당이 낮아졌다며, 불만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20년째 남구로역에서 일자리를 구해왔다는 김필규(가명·58)씨는 "한국인이 1명이면 저쪽은 3~4명이 달라붙어서 일을 구한다. 게다가 그 사람들이 가격도 떨어뜨린다"라면서 "중국인 불법체류자들 몰아내야 한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기술자를 제외하고 잡부들은 보통 하루 일당 13만 원~14만 원을 받는데, 이를 12만 원으로 낮춰놓은 게 조선족·한족 노동자들이라는 불만이다. 그는 인력시장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오전 6시가 되기 전까지 마땅한 일감을 찾지 못해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다.

수백 명 사람이 모이는 곳인 만큼 구청에서는 코로나19 방역을 한층 강화했다. 구로구청은 지난 3월부터 손 소독제를 올려두고 남구로역 근처 두 곳에 '코로나19 홍보·예방 안내소'를 운영하고 있다. 오전 6시부터는 구청 관계자들이 나와 길에 소독제를 분사한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에 "처음에 마스크를 잘 안 쓰고 나와서 오전 4시부터 여기에서 마스크를 나눠주기도 했다"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보다 사람이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수백 명이 모여 있어 방역을 철저히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인들은 코로나19를 중국인들이 퍼뜨렸다고 소리 지르고, 조선족은 관리 못 한 한국사람 잘못 아니냐고 삿대질하며 시끄러운 모습도 가끔 보인다"면서 "서로 하루 벌어 사는 사람들이니까 일감이 줄어들면 예민하다, 불상사가 생길 수 있어 구청에서도 신경 쓰고 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남구로역에서 10년째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운수(가명·49)팀장은 "지난해보다 경기가 안 좋은 건 사실이다, 거기에 코로나·장마가 겹쳐 현장 진행이 늦어졌다"라면서 "추석 이후에는 더 좋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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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명 오던 손님이 1명으로... "잘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http://omn.kr/1oyrc
#남구로역 #인력시장 #코로나 #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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