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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의자만 있고 지붕도 없는데... 이게 교회라니

[호주 시골 생활 이야기] 호주에서 맞이하는 봄

등록 2020.09.24 14:58수정 2020.09.2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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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에 둘러싸인 통나무 의자만 있고 지붕도 없는 교회. ⓒ 이강진

 
한국에는 가을이 찾아 왔겠지만, 호주에는 봄이 찾아왔다. 꽃샘추위도 넘볼 수 없는 따뜻한 봄이다. 올해는 유난히 봄이 기다려졌다. 나이가 들면 봄이 가장 좋은 계절이 된다고 하던데, 나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따뜻한 봄바람이 집을 나서도록 유혹한다. 자동차 시동을 켠다. 계획 없이 직관에 따라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은퇴해서 혼자 지내는 삶의 특권이다. 

어디로 갈까. 일단, 몇 번 가보았던 케이프 호크(Cape Hawke)라는 바닷가 산봉우리를 목적지로 정했다. 바다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운이 좋으면 철새처럼 호주 동해안을 오르내리는 고래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고래를 만나지 못해도 30여 분 정도 산을 올라 태평양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볼 만한 곳이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포스터(Forster) 중심가를 지나 산길로 들어선다. 너른 들판에 드문드문 보이는 저택들이 시선을 끈다. 현대 사회가 각박해지는 이유는 시야가 짧은 도시의 주거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시야가 확 트인 들판을 바라보며 지내는 사람들은 마음도 넓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산길을 따라 운전해 케이프 호크에 도착했다. 이곳은 관광안내 책자에 소개되는 장소다. 그래서일까. 외진 산속이지만 올 때마다 주차장에는 항상 서너 대의 자동차가 주차해 있다.

조금은 익숙한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오른다. 가파른 산책로다. 산을 오르는 나의 모습이 힘겹게 보여서일까. 아이들과 함께 정상에서 내려오는 가족이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격려한다. 호주에서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마주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주고받는다. 간단한 인사말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에 올랐다. 파도가 심한 태평양이 발아래 펼쳐진다. 바람이 심하다. 그러나 온기를 담은 봄바람이다. 고래를 열심히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파도가 심해 고래가 있어도 보이지 않을 날씨다. 

포스터 시내로 시선을 옮긴다. 동네를 둘러싸고 펼쳐진 호수가 한폭의 그림이다. 전망대에서 내려 보이는 숲은 호주의 아카시아 나무라고 불리는 와틀(wattle)이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봄이 온 것이다. 옆에서 사진을 찍는 중년의 남녀와 가벼운 농담을 나누기도 하면서 봄을 만끽한다.
 

케이프 호크(Cape Hawke)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스터 앞바다. ⓒ 이강진

 
가벼운 산책을 끝내고 조금 더 남쪽에 있는 스미스 호수(Smiths Lake)라는 동네로 향한다. 오래전 한 번 운전하며 지나쳤던 동네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동네 입구로 들어선다. 나이 든 사람들이 주로 즐기는 잔디 볼링장이 보인다. 작은 동네이지만 클럽 건물과 볼링장 규모가 크다. 은퇴한 사람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 한복판 전망 좋은 곳에는 집들이 생각보다 많다. 화려하지 않은 그러나 큼지막한 주택들이다. 천천히 자동차로 주위를 둘러본다. 비탈길을 내려가니 도로가 끝나면서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호수 주위를 걷는다. 

자그마하고 정겨운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서너 채의 집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놀러 오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집이라는 팻말이 보이는 집도 있다. 호숫가 백사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가하게 지내는 가족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조금 떨어진 경치 좋은 곳에는 시골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큼지막한 건물이 있다. 식당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생각했던 대로 건물 앞에는 카페라는 간판이 있다. 그러나 영업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주말에만 영업한다는 안내문이 유리창에 붙어 있다. 카페 끝자락에 있는 식탁에 앉아 신선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마시는 커피는 별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시골 작은 동네에 걸맞지 않는 규모 있는 식당. 한 가족이 백사장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강진

 
점심시간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퍼시픽 팜(Pacific Palms)이라는 동네가 있다. 젊은이가 많이 찾는 해변이다. 따라서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숙소도 많은 곳이다. 동네 중심가에 주차하고 식당을 찾아본다. 확실히 젊은이가 많다. 가게들도 젊은이들이 좋아할 물건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 들어선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띄엄띄엄 놓은 식탁 하나가 비어 있다. 메뉴를 보니 인도네시아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인 것 같다. 키가 작고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젊은 동양 여자가 주문을 받는다. 식당 주인의 딸이나 친척일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직원이다. 

메뉴에는 호주 사람이 즐겨 먹는 햄버거 등도 있지만, 낯선 음식 이름도 적혀 있다. 두부와 이름모를 야채가 적혀 있는 음식을 주문했다. 인도네시아 향이 나는 음식이 식탁에 올려진다.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특히 동남아시아 특유의 야채와 소스가 입맛을 돋구었다. 빈 접시를 가져가는 직원에게 음식이 좋았다고 인사를 한다. 직원은 고맙다고 하며, 인도네시아 사람이 즐기는 음식이라고 한다.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있다. 특별한 계획을 갖고 집을 나선 것도 아니다. 평소에 자주 들르는 야외에 있는 교회가 생각난다. 우연히 알게 된 건물이 없는 교회다. 야자수가 울창한 호숫가, 운치있는 장소에 자리잡고 있는 교회다. 따라서 우리 집을 찾은 지인들과 종종 함께 찾는 교회이기도 하다.  

야자수로 뒤덮인 좁은 길에 들어서면 나무로 만든 작은 기둥 하나가 서 있다. 이 땅에 평화가 넘쳐나기를 기원한다는, "May Peace Prevail On Earth", 말씀이 쓰여 있는 기둥이다. 영어를 비롯해 6개 국어로 번역된 육각형으로 만든 작은 기둥이다. 세계가 서로 화해하고, 평화로운 미래가 도래하기를 기원하며 만든 기둥이라는 설명이 쓰여있다. 전 세계 180여 개국에 25만 개 정도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는 설명도 있다. 
 

평화를 기원하며 만들었다는 육각형 기둥, 원주민 언어를 비롯해 6개 국어로 쓰여 있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기둥이 250,000개 세워져 있다고 한다. ⓒ 이강진

 
좁은 길을 따라 더 들어간다. 통나무로 만든 긴 의자들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예배드리는 장소다. 비를 가릴 수 있는 천장도 없다. 바로 앞에는 파도도 일지 않는 너른 호수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자연 속에 있는 꾸밈없는 교회가 마음에 든다. 한 번 날을 잡아 이곳에 와서 석양을 마주하겠다고 다짐한다. 

호수에서 눈을 돌리니 구석에 있는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만든 십자가가 보인다. 크고 웅장한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십자가가 아니다. 초라한 십자가 앞에 다가선다. 예수님이 온몸으로 담당했던 고뇌와 외로움이 보이는 듯하다. 신이라는 이름으로만 포장된 예수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 몸부림치며 삶을 마친 예수의 모습을 본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곱씹어 본다.   

야자수 나무에 둘러싸인 십자가를 뒤로 하고 교회를 떠난다. 들어오면서 보았던 평화를 이야기하는 기둥과 다시 한번 더 마주친다. 나만이 옳다고 하는 편협함을 떨쳐버린 삶을 그려본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이웃도 사랑할 수 있는 삶을 그려본다.
 

나뭇가지로 만든 초라한 십자가, 화려한 십자가보다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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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호주 연방 공무원, 외국인 학교 교사 (베트남, 타일랜드). 지금은 시드니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바닷가 시골에서 퇴직 생활. 호주 여행과 시골의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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