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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못 받고 빈손 귀국 이주노동자, 뉴스 나오고 벌어진 기막힌 일

임금체불 피해절차와 이주노동자 차별... 노동부가 해 준 건 체불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 뿐

등록 2020.09.26 17:03수정 2020.09.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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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7개월 동안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며 농장 일을 했음에도 3년치 넘는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분의 사연이 뉴스에 보도되어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MBC 2020. 4. 9. 수천만 원 떼먹고도 당당... 빈손으로 울며 귀국)

[관련 기사] 산재에 임금체불 당했는데 나가라? 이들은 변호 받을 권리도 없나 http://omn.kr/1od48

뉴스 보도 이후 이분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 

뉴스가 나온 당일 오후 10시가 넘어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소속 사무관이 연락해 왔다.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고용센터 차원에서도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고용노동부가 해 준 건 직권조사 이후 임금체불을 확인하여 발급해 준 '체불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라는 두 장짜리 종이뿐이다. 
 

체불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 ⓒ 최정규

 
이 사안은 단순 임금체불이 아니라 취업사기로 처벌해야 할 사안이라고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에 고소장을 제출하였지만, 수사를 맡은 이천경찰서는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검찰은 이 사건을 형사조정으로 넘겼다. 형사조정절차에서 체불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기대를 가졌지만, 지난 8월 11일 참석한 형사조정기일에서 형사조정위원은 코로나19로 인해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농장주의 호소를 받아들여 일단 체불임금의 절반이라도 받고 형사합의할 것을 권유할 뿐이었다.   

임금체불피해자를 위해 마련된 소액체당금제도, 이주노동자를 위해 마련된 임금체불보증보험제도(한도 200만 원) 또한 이 사안에서는 작동되지 않았다. 농장주는 산업재해보상법 적용 대상 사업주가 아니기에 소액체당금제도는 적용되지 않고, 임금체불보증보험은 사업주 미가입의 경우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처벌규정도 두고 있는 등 강제되어 있지만 사업주의 미가입으로 확인되었다.

고용허가제 관련 체류자격이 만료된 피해 이주노동자에게 법무부 출입국당국은 기타(G-1) 비자를 발급해 주었지만, 체류자격 외 활동 허가를 해 줄 수 있냐는 거듭된 질문에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임금체불 절차 진행 중인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정부는 일할 수 있는 비자를 허락해주는 경우는 지금껏 없었다. 

물론 이주노동자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임금체불피해근로자 법률구조제도를 통해 사업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확정판결을 받을 수 있지만, 그 확정판결문을 가지고 집행할 농장주의 재산은 파악되지 않는다. "땅을 팔아서라도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농장주의 약속과는 달리 이미 농장 땅은 경매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상태고, 농장주의 다른 재산으로 체불임금을 보전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판결문을 가지고 집행재산을 찾아야 하는 일은 전적으로 피해 이주노동자의 책임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무료법률구조는 강제집행 단계에도 가능하나 집행할 재산을 찾아주는 서비스까지 진행시켜 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생긴다.

'이주노동자는 내국인 노동자와 정말 아무런 차별이 없는 것일까?'

한국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등이 고용허가제(EPS)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주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은 적용되고 그 어떤 차별도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이어간다. 한국정부의 답변처럼 근로기준법은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된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금체불 진정도 가능하고, 법률구조제도를 통해 민사소송도 가능하다.

그러나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만으로 차별이 존재하지 않다고 할 수 있나?

장애라는 고려 없이 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간접차별'로 해석되는 것처럼 이주노동자가 일시적으로 대한민국에 체류를 허가받은 외국인이라는 고려 없이 동일한 법령이 적용된다고 하는 것도 '간접차별'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주노동자는 외국인으로 임시적 체류자격만 허용되기에 내국인과 동일하게 집행권원을 가지고 강제집행 할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부여받지 못한다. 내국인 노동자의 경우에는 판결문을 가지고 10년, 그리고 10년 경과 전에 소멸시효 연장을 위한 소송을 통해 사용자의 재산에 집행할 가능성을 부여받으나 이주노동자는 이런 기회는 없다. 결국 형사조정위원의 말처럼 절반이라도 받고 합의를 하라는 권유를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체불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 ⓒ 최정규

 
이 체불임금확인서는 피해 이주노동자 전에 같은 농장에서 근무했던 다른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진정사례에서 고용노동부가 발급해 준 확인서다. 이미 이전 피해 이주노동자도 두 장짜리 종이만을 가지고 고국으로 향했고, 이 사건 피해이주노동자도 빈손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대한민국이 1998. 12. 4. 비준한 ILO 협약 제111호[차별(고용과 직업)]는 고용과 직업에 있어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할 목적으로 국가정책을 결정, 추진하도록 비준국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내국인 노동자와 달리 이주노동자에게 원칙적으로 사업장변경을 허용하지 않아 임금체불 피해를 입기 전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하고, 피해발생 후에도 그 구제절차가 일시적 체류라는 이주노동자의 사정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과연 대한민국은 위 협약을 준수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차별을 고스란히 안고 피해를 당하는 이주노동자는 오늘도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회로 향한다.
 

국회로 향하는 이주노동자 ⓒ 최정규


이주노동자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묻는다.   

"대한민국 정부, 이게 최선인가?"
덧붙이는 글 필자는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로 피해이주노동자에 대한 법률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이주노동자 차별 #고용허가제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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