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그래도 전문대는 가지 말아야지" 선생님은 말했다

[전문대 출신 기자는 처음이시겠죠 ③] '웨딩플래너' 꿈 좇아 진학한 전문대, 돌아온 차별의 말들

등록 2020.10.02 11:25수정 2020.10.02 11:25
0
원고료로 응원
'명문대'나 'SKY'만 조명하는 우리 사회에서 한 켠에 밀려나 조명받지 못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8월부터 학력으로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청년들을 마주했습니다. '전문대 출신 기자는 처음이시겠죠'는 전문대 간호학과 출신인 제가, <대학알리>에서 활동하며 저와 닮은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가감 없이 전하는 인터뷰 기획입니다. [기자말]

웨딩플래너 출처;pixabay ⓒ 김하은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공부를 더 오래 했다는 이유로 일반대 졸업생을 뽑을 거예요.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거죠." (김지호)
 

전문대인 OO여대 웨딩플래너과를 졸업한 후, 웨딩플래너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호씨는 고교 시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고 쭉 방황하다 부모님의 뜻대로 항공서비스학과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준비했지만, '과연 내가 대학 입시에 성공해도 꿈에 그리던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나?'라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지호씨는 수시 원서 접수 마지막 날에 부모님 몰래 모든 항공과 원서 접수를 취소하고 OO여대 웨딩플래너과 원서만 접수했습니다. 여기가 아니면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요.

지호씨는 "참 무모했지만 돌고 돌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인생에서 가장 큰 결심한 거였다"고 회고합니다. 지호씨에게 전문대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지호씨에게 전문대라는 곳은 왜 무모한 도전이었을까요. 지난 8월 그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꿈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사실, 전문대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이 조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원치 않는 공부를 4년간 하는 것이 더 두려웠을 뿐이에요. 단순히 성적 따라서 대학에 진학하기보다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매사에 계획적이고 꽤나 꼼꼼한 편이었던 저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워낙 드레스,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예비부부의 예산과 스타일에 맞춰 업체 추천 및 스타일링을 해주고, 스케줄링, 예약 등 결혼 준비의 전반적인 것들을 모두 담당해 주는 웨딩플래너라는 직업에 대해 관심이 갔어요.


하지만 제가 배우고 싶었던 '웨딩' 전공의 대학은 전문 대학, 전문 학교에만 있었어요. 아마 4년제 일반 대학에 웨딩플래너과가 있었다면 물론 그곳으로 갔을 거예요. 더 많이 배우고, 조금 더 오래 대학생 신분을 즐기고 싶어서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일반 대학에 웨딩 관련한 학과가 없는 것은 그만큼 웨딩 시장에서는 학력보다 경험과 경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사실 웨딩 말고도 다른 특수한 전문직, 서비스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제 주변 지인들만 보아도 전문대 졸업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두려움이 크더라고요."


고등학생 시절, 저는 '진로와 적성'이라는 교과목을 공부했습니다. 제게 꼭 맞는 진로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열심히 수업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친구들의 꿈은 대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로와 적성 담당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날이면 두려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라는 이 일이 나에게 정말 꼭 맞는 일인지, 글쓰기로 행복할 수 있는 나의 진로는 무엇일지 알고 싶었지만 선생님께서 제게 던지는 질문은 달랐습니다.

"어디 대학 가고 싶니?"
"지금 성적이면 내신으론 '2호선' 타고 대학은 어렵겠네. 정시로는…"
"그래도 전문대는 가지 말아야지."


제 진로와 적성은 결국 대학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진로를 바꾸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행복할 수 있는지 학교에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에게나 지호씨에게 전문대는 '마지노선'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건 학교가 아니었을까요. 

"발버둥 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요"

"안타깝게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아직 전문대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사회적 차별, 무시를 몇 차례 겪어 봤어요. 택시 기사님도, 목욕탕에서 처음 뵙는 할머님들도, 심지어 저의 조부모님께서도 제가 전문대에 진학한 것을 무시하시거든요.

모두 제가 공부를 못해서, 성적이 부족해서 전문대로 진학한 것으로만 생각하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단순히 성적에 맞추어 전문대에 진학한 것이 아닌, 꿈을 찾아 전문대로 진학했을 뿐인데요."


지호씨는 전문대 출신으로 묵묵히 살아가고 있지만 문득 가슴이 답답해지는 날도 있다고 말합니다. 

"일반 대학 졸업생과 전문대학 졸업생을 놓고 비교해보았을 때,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공부를 더 오래 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대학 졸업생을 뽑을 거예요.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도 넘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거죠. 4년제라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니까요."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공정 담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대학을 놓고 '노력'의 크기를 재기도 합니다.

전문대에 진학한 제가 명문대에 진학한 당신보다 수능 성적이 한참 뒤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왜 중요할까요.

당신의 세계에서는 공부를 못 한다고, 수능을 못 봤다고 차별받아야 할 당위성이 부여되나 봅니다.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본디 차별은 존재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이 사실을, 당신께서는 잊고 있던 게 아닐까요.   

['전문대 출신 기자는 처음이시겠죠' 이전 기사]
프롤로그 저는 전문대 출신입니다, 그리고 기자를 꿈꿉니다 
① "학원 보조교사 알바를 구할 때도 '4년제'를 원해요"
② "'학력 차별' 비판하는 언론, 정작 고졸 출신은 안 뽑죠"
#전문대 #고졸 #청년 #대학생 #명문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