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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으로 입원한 오빠, 우리만의 '희한한' 위로

병과 늙음, 그리고 노년에 대한 응원이 필요한 순간

등록 2020.10.11 19:36수정 2020.10.1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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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아프다고 했다. ⓒ pixabay

 
오빠가 아프다고 했다. 뇌종양이라고, 심각하다고,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주말이라 수술을 하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하나 어떻게야 하나 우왕좌왕, 전화로 들려오는 말에 바로 영상 지원이 되며 당황스러운 상황이 그려졌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병명이 와 닿지 않았다. 듣는 순간 이건 나와 상관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아닐 거야. 괜찮을 거야. 잘 넘어갈 거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여러 말이 맴돌았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전화 너머에서는 벌써 훌쩍였다. 훌쩍이는 사람은 집안의 기둥이었던 오빠의 누이, 나의 큰언니. 나보다 먼저 가면 안 되는데... 그런 말을 계속 반복했다.

아침에 그 전화를 받고 셋째 언니에게 소식을 알렸다. 언니는 알아보겠다고 했고, 두 시간쯤 지나 급하게 수술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장 가자고 했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면 중환자실로, 회복되면 일반병실로 옮긴다고 했고,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었다. 가족들도 보호자 한 명 외에는 출입이 제한된다고 했고, 중환자실에는 머물 곳도 없다고 했다.

급하게 진행된 수술이었지만 잘 되었다고 했다. 뇌의 한 부분을 무언가가 버섯처럼 하얗게 감싸고 있었고, 그것을 제거했다고 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을 눌러 몸의 반쪽이 움직이지 못했고, 본인이 금방 한 행동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고. 그걸 가족들은 가까운 병원에서 들은 치매 초기로 확신했고, 말은 초기라고 했지만 상당히 진전된 병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다시 두어 번의 수술이 더 진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몇 번의 통화를 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서는 출입을 제한하고 있고, 아직 중환자실이라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수술 환자가 아니면 일반 환자들도 퇴원을 권유하는 실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보호자 외에는 병원 내부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 올 필요 없다고 했다. 답답하고 궁금했지만 말을 잘 들었다.

전화로 경과를 묻고 들으며 일주일이 지났고 드디어 보고 싶으면 와도 된다는 말을 듣고는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다. 오빠는 병원 입구에 나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에도, 돌아가신 지금도 집안의 기둥인 오빠였다.

늙어 간다는 것

'다 잘 될 거예요.'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었지만, 이 말은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고 하지 못했다. 잠시 오빠가 볕을 쬐는 사이 올케는 오빠의 상태를 의사에게 들은 대로 전했다. 버섯 같은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모두 걷어 내야 더는 행동이나 기억에 장애가 없을 거라고 했다.

전문용어 가득인 말들을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었겠지만, 어렵게 들은 말을 조심스럽게 이어갔다. 환자가 모든 상황을 알고 통제하는 방식은 아직 우리에게는 너무 세련되고 이상적인 것 같았다. 환자는 몰라야 할 것이 많았고 가족들은 환자 모르게 지켜야 할 것이 많았다.

병원 정문 앞에서 만난 그대로 우리는 헤어졌다. 환자를 밖에 오래 머물게 할 수 없어 병실로 들어가게 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끼리 늦은 점심이라도 하려고 식당을 찾았다. 세 자매는 오빠의 얼굴을 보고 안도했고, 걷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더 편해졌다. 다시 수술이 이어지겠지만, 일단은 퇴원한다고 했으니 당분간 급박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큰 근심을 내려놓았다.

이어 각자의 모습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모두 이미 나이가 들었고 새삼스럽게 대비해야 할 것들을 생각했다. 늙어가는 자신의 몸의 변화를 마음으로 이해하기도 버거운데, 남은 노년의 삶과 죽음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우리는 늙음, 병, 죽음의 과정을 동시 다발적으로 맞이하고 있지만 그러한 사실을 잊고 산다. '생'의 과정이 길고 그것이 끝나는 즈음 어딘가부터 잠깐의 늙음, 순간의 병, 더 찰나의 죽음을 막연히 기대하는 것 같다.

오빠의 갑작스러운 와병을 보며 우리 모두는 이미 늙어 가는, 병이 있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한 것 같았다. 사는 동안 건강하게, 행복하게, 열심히 움직이고 남은 삶을 즐겁게 이어가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배 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스티브 잡스가 병상에서 했다는 말처럼 우리도 오빠의 병상을 보며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둘째 언니는 결혼한 아들과 딸, 손녀들의 이야기를 했다. 웃음을 주는 일상,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몸, 아직도 하고 있는 일을 이야기했다. 셋째 언니도 자신의 일을 든든하게 잘하는 아들, 엄마에게 다정한 친구처럼 대하는 딸을 이야기했다. 아직도 일할 수 있는 당당함을 말했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야기했다.

이전부터도 열심히 살아왔던 삶이었다. 그것을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며 행복과, 추억과, 사랑과 연결 지었다. 고된 하루하루의 삶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먼지처럼 흩어지지만, 그날의 의미 부여는 행복이, 추억이, 사랑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 같았다.

마치 세상을 움직이는 기계의 톱니바퀴였다가 갑자기 작은 톱니바퀴가 '내가 아니면 세상이 움직이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없이 소홀한 삶이었다가 소중한 삶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기운 빠지고 힘겨웠던 일상이었는데, 조금 살 만한 의미를 회복했고 살아갈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한껏 응원했다.

우리만의 희한한 위로
 
이 세상에는 뒤에서 묵묵히 커다란 기계의 톱니바퀴 한 축처럼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아니 실은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을 텐데,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결코 소홀하게 흘려보내며 살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강세형, <희한한 위로> 중)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뒤로 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이 자꾸만 나를 밀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작은 희망조차도 품는 게 두려워지고, 내게 더 이상 버틸 힘조차 나아 있지 않을까 봐 한없이 무력해지기만 할 때. 그래서 밥을 먹었는데 또 얼마 후 배가 고프다는 게, 자고 일어났는데 또 막막한 하루가 시작된다는 게, 사소한 하나하나의 일상이 모두 숙제처럼만 느껴져 산다는 것이 그저 귀찮고 버겁게만 느껴질 때. 어쩌면 지금의 나 또한, 그 버거움의 굴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아슬아슬 이제 곧 꺼져버릴 것만 같았던 배터리가 띵, 하고 한 칸이 채워진 기분이 든다. 아직 빨간 불이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까먹기만 하고 있던 배터리가 이젠 조금씩 충전도 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세형, <희한한 위로> 중)

누구도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사는 서로의 삶을 응원했다. 응원의 말 그 자체로 우리는 각자의 삶을 긍정했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힘겹게 나름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힘들다고 느껴지던 삶이 감사로 바뀌었고 더 힘을 낼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았다.

간당간당하던 배터리가 한 칸씩 채워지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삶의 피로가 걷히는 기분도 들었다. "지금 잘하고 있어!" 서로를 향한 이 말은 생기를 부여했다. 서로의 격려 덕분에 작지만, 행복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만 비껴가는 병과 늙음이, 죽음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 자매가 주고 받았던 말처럼, 나의 존재와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며 삶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록 병을 안고 살아도, 늙어도, 그것을 격렬하게 부정하지 않고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빠를 만나서 잠시 웃을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동안 몸의 구석구석은 건강검진을 통해 잘 살폈는데, 미처 머리는 살피지 못했을 뿐이었다고. 이번 기회로 완벽하게 스캔을 끝냈으니 이제 잘 살피며 살 일만 남았다고. 아픔을 어떻게 쓰다듬고 위로할까만 생각했는데, 앞날을 향한 응원이 어설픈 위로보다 훨씬 더 오빠의 병든 몸과 우리의 늙음과 노년에 희한하게 힘을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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