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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 두 앙숙 국가의 특별한 화합의 장

[스물셋의 인도] 국경지 와가에서 매일 열리는 국기 하강식

등록 2020.10.02 18:54수정 2020.10.0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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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19년 09월에 다녀온 인도여행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기자말]

국기 하강식을 보기 위해 인도 각지에서 수천 명의 인파가 모였다. ⓒ 이원재

 
현재까지도 앙숙 국가로 손꼽히는 인도와 파키스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지만,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종교적 갈등을 화두로 분리되어 내가 여행했던 2019년에도 크고 작은 교전이 일어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 두 국가의 유일한 국경, 와가(Wagah)에서 국기 하강식이 열린다는 말은 꽤 의외로 다가왔다. 적대 국가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군인이 매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함께하는 국기 하강식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하강식을 보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인파와 국제공항을 능가하는 엄격한 출입심사는 나에게 긴장감을 주었다. 아무래도 적국의 발등 앞에 수천 명의 인파가 운집하는 것일 테니 그럴 만도 하겠다.

폭발의 우려가 있는 라이터나 담배는 물론 심지어 보조배터리까지도 반입금지품목으로 지정될 정도였다. 아무리 인도와 파키스탄 두 국가가 함께하는 화합의 장이라고 해도 이들 사이에 얽힌 적대 관계는 숨길 수 없음이 다분해 보였다.

늦게 들어간 모양이었는지 경기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인도 국기가 그려진 모자와 페이스 페인팅을 한 사람들, 경기장에 들어오기 전 고속도로 요금소서부터 이미 모자나 국기를 파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마주치긴 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한국에 대입하자면 한일전과 가까운 모습, 그것도 매일같이 수천 명이 모이는 한일전이라니. 세계 2위에 빛나는 인도의 인구 규모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경우 경기장의 규모도 작고 비어 있는 좌석도 많아 그에 따른 수적 열세를 면하지는 못해 보였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앞서 여성들이 춤을 추는 모습 ⓒ 이원재

 
군인들의 행진에 앞서 여성과 아이들의 춤사위로 하강식은 막을 열었다. 이슬람국가인 데다 폐쇄적인 파키스탄에 반해 인도의 여성 인권 수준이 향상되어 있으며, 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함은 아닐까.

뒤이어 양국의 응원구호가 외쳐졌는데, 인도에서는 인도 아대륙 전체를 의미하는 '힌두스탄'과 '모국 인도 만세'라는 구호가, 파키스탄에서는 영원하라는 의미인 '파키스탄 진다바드'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경기장의 열기는 양국을 가로막은 문이 열릴 때 비로소 절정으로 치달았다. 드디어 마주한 양측의 군인, 더욱이 과장된 퍼포먼스에서 비롯된 신경전은 열기를 고조시키기 충분했고, 국기 하강시간이 임박하자 내일을 기약하는 악수로 막을 내렸다.  
 

양국의 군인이 한 곳에 모여 국기를 하강하는 모습, 한 눈에 봐도 파키스탄 측의 수적열세가 보인다. ⓒ 이원재

 
국기가 하강할 때는 어떤 음악이 흘러나올까. 한국의 경우 보통 군부대를 예시로 들자면 애국가가 나오는데, 양국의 국기가 일제히 하강하는 만큼 어느 한쪽의 국가가 나올 리 만무할 테니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가 용인할 수 있는 통합된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국기를 회수한 군인들이 제식을 갖춰 인도 측으로 돌아오면서 한 시간여에 걸친 하강식은 마무리되었다.
#인도여행 #와가보더 #국기하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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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마음에 품고 현실을 바라봅니다. 열아홉 살의 인도와 스무 살의 세계일주를 지나 여전히 표류 중에 있습니다.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여행 에세이 <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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