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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코로나 감염과 2020년 미국 대선의 행방

가부장제도의 아이콘인 트럼프의 미래는?

등록 2020.10.03 17:01수정 2020.10.04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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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소식에 뉴욕 다우존스 퓨처 지수가 폭락하였다. CNN을 비롯하여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매체가 긴급뉴스로 다루었다. 미국 대선이 한 달 남은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700여만 명이 감염되고 20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트럼프의 보좌관인 호프 힉스(Hope Hicks)가 화요일에 확진 판정을 받은 지 3일 만인 금요일에 트럼프도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트럼프는 74세이고 바이든은 78세이니 전문가가 말하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니 감염 자체가 중요한 뉴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55세인 영국 수상도 감염되어 중환자실에까지 들어가는 심각한 상황까지 갔다가 회복된 사례가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트럼프의 감염은 영국 수상과는 차원이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행히 트럼프의 주치의의 말대로 트럼프가 정상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니 당장 권력의 임시 이양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바이든은 음성 판정이 나온 상태이니 그나마 미국 대선의 혼란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트럼프를 비난하던 사람들은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를 느끼는 분위기다. 그동안 트럼프는 마스크를 열심히 착용한 바이든을 겁쟁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해왔다. 그러나 일단 현재로는 트럼프가 틀리고 바이든이 옳은 것으로 중간 결론이 났다. 그렇다고 이 상황이 민주당과 바이든에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병든 트럼프에게 동정표가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트럼프의 감염 확진으로 그의 당선 가능성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이는 선정주의적 보도일 뿐이다. 만약 민주당 측에서 트럼프를 비난하는 열기에 휩싸여 과도한 발언이 나오게 된다면 오히려 트럼프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역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일부 언론보도에서는 백악관 측에서 호프 힉스가 감염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은폐하고 선거 자금 마련을 위한 행사를 위하여 함께 이동했다는 소식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지면 가짜뉴스가 넘치는 법이니 신중하게 판단할 일이다. 어찌 되었든 코로나 감염 소식은 논쟁의 초점을 정책에서 트럼프 개인의 건강으로 변경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일단 2주간의 자가 격리 기간 동안 트럼프가 물리적 유세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백악관은 비상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2차 대선 토론이 10월 15일로 그리고 3차는 10월 22일로 계획되어 있다. 자가 격리가 14일이니 2차 토론 날짜와 중첩되지만 2-3일 정도 늦추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제도적으로는 격리 기간 동안 트럼프의 병세가 악화되어 직무 수행에 심각한 어려움이 있을 경우 부통령 펜스에게 임시로 권력 이양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마저 확진 판정을 받게 된다면 민주당 소속으로 하원의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낸시 펠로시가 권한을 위임받게 된다. 미국의 정치는 200년 이상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해 왔기 때문에 여러 위기 상황에 대한 제도적 대책이 완비되어 있기에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사실상 매우 낮다. 

트럼프가 코로나를 잘 견뎌낸다면 오히려 이번 감염은 그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두 후보가 다 고령인 가운데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질병을 그가 가볍게 이겨낸다면 오히려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트럼프가 병원으로 이송되기는 했지만 여러 소식을 볼 때 그의 국정 운영에 심각한 장애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의 주치의도 이미 업무 수행을 지속해도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으니 더욱 그런 판단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공은 바이든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는 일단 음성 판정을 받았으니 정상적인 선거 캠페인을 지속할 것이다. 선거 캠페인을 못하는 현직 대통령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야당 후보의 상황에서 정작 신중해야 할 사람은 후자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앞으로의 행보는 미국 2020년 대통령 선거 후보자 1차 토론에 비추어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토론의 첫인상은 점잖은 형이 천방지축인 동생을 달래며 말싸움하는 인상이었다. 실제로도 바이든이 1942년에 태어났으니 1946년에 태어난 트럼프보다 4살 연장자이다. 그런데 동생뻘인 트럼프가 190cm로 바이든보다 크고 체격도 더 당당하다. 그런 동생의 막무가내 주장에 대하여, 조용하고 약간은 수척해 보이는 형이 한숨을 쉬고 자주 기가 막혀하며 답을 하려고 애썼다. 그

런 바이든이 처음에는 카메라만 바라보며 국민을 향해 자신의 의견을 침착하게 전개하더니 논쟁이 과열되자 결국 참지 못하고 트럼프에게 "닥쳐! 이 사람아!"(shut up, man.)라는 말도 하며 흥분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진정되자 미리 정해진 전략대로 다시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의견을 침착하게 전개해 나간다. 그에 비하여 트럼프는 평소의 언행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자기 의견을 쉴 새 없이 전개하고 상대방의 말을 끊고 심지어 사회자와도 논쟁을 벌었다. 역시 트럼프답다. 

이번 토론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의 말을 자주 끊은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을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렀다. 나이로 보나, 정치 경력으로 보나, 야당 대선 후보라는 지위로 보나 상당히 예절에 어긋나는 것이다. 당연히 바이든의 신경을 자극하여 실수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이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점잖게 반응하였다. 물론 그도 사람이니 트럼프의 발언을 몇 차례 중간에 끊었다. 그러나 트럼프에 비하면 말 그대로 양반이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발언하는 도중에는 대부분 원고를 들여다보거나 카메라를 정시하였다. 약간은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사실 이런 TV 토론은 토론의 내용보다는 이른바 '비주얼', 곧 후보들의 외모와 기세가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사실 이러한 토론을 보고 마음을 바꾸는 유권자는 사실 거의 없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얼마나 '쇼'를 잘하는지에 더 관심이 크다. 실제로 1차 토론이 끝나고 CNN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토론 후에 지지후보를 바꾸었다고 대답한 사람은 2%에 불과하였다. 오차범위를 고려한다면 전혀 무의미한 답변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2016년 트럼프와 힐러리의 토론에서 트럼프는 졌다. 그래도 선거에서는 승리하였다. 사실 이 토론이 시작되기도 전에 민주당 측에서 너무 점잖은 바이든이 천방지축인 트럼프에게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국민에게 직접 말하며 트럼프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는 전략을 사용하여 그러한 우려를 상당히 불식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토론을 마치면서 선거 최종 결과에 승복할 것이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우편투표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고 바이든은 순순히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두 사람의 전략과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트럼프는 끝까지 승부에 집착하겠다는 말이고 바이든은 법과 원칙을 존중하겠다는 말이다. 토론이 끝나자 두 후보의 배우자가 등장하였는데 멜라니 트럼프는 마이크 없이 트럼프에 다가가 포옹을 한데 비하여 바이든의 아내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남편에게 다가가 포옹을 하였다. 매우 상징적인 모습이었고 모두 선거 참모들이 짜 놓은 전략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토론이 끝나자마자 당장 CNN의 앵커들은 가장 형편없는 토론이었다고 일갈했다. 특히 트럼프가 바이든의 죽은 아들의 마약 복용 문제를 걸고넘어진 것에 대하여 강한 비판을 가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바이든의 인지능력을 문제 삼은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트럼프가 상대방의 말을 무례하게 끊은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삼았다. 브레이킹 뉴스의 헤드라인도 카오스(chaos), 말 끊기(interrupt), 인신공격(insult) 등의 단어를 사용하였다. CNN이 노골적으로 트럼프를 반대하는 회사이니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이에 비하여 BBC 방송의 앵커들은 비교적 중립적으로 보면서 두 후보가 모두 질문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며 나머지 두 토론에서도 큰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리고 바이든이 트럼프를 거짓말쟁이, 꼭두각시, 소련의 애완견으로 비난한 점도 지적하였다.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거기서 거리였다는 것이다. 보스톤글로브지(Bostonglobe)의 인터넷 판에서는 주요 인사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반응을 모아보았다. 예의 대부분이 트럼프에 대한 비난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첫 토론은 대선의 판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유권자들의 투표 의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주제에 대하여 둘은 서로 충돌했는데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연방대법관 임명, 코로나 사태, 경제, 인종차별, 우편투표 등 주요 이슈에 대하여 각자는 자신의 종래 주장만을 되풀이하였다. 처음부터 서로는 설득할 생각이 없고 설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 토론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적대감 말고 각자가 그리고 관전자가 얻어갈 것은 무엇이었나? 없다. 

그래서 일단은 현재의 추세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 선거에서 토론 하나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토론으로 전세가 확정된 경우는 있다. 대표적인 것이 케네디와 닉슨의 토론이었다. 젊고 활기 넘쳐 보이는 달변의 케네디에 비하여 더듬거리는 닉슨은 겨우 4살 연상이었음에도 늙고 패기가 없어 보였다. 선거 결과 케네디의 득표율은 49.72% 닉슨은 49.55%였다. 말 그대로 간반의 차였다. 이른바 경합주(swing states)의 중도표가 토론으로 케네디에 쏠린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2016년의 미국 대선에서 경합주는 콜로라도, 플로리다. 아이오와, 미시간, 미네소타, 네바다, 뉴햄프셔, 노스 캐럴라니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위스콘신이었다. 그런데 2020년의 미국 대선에서는 애리조나, 위스콘신, 오하이오, 노스 캐롤라이나, 조지아, 플로리다 정도로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텍사스마저 위태했지만 트럼프로 기울어지는 모양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선거인단 숫자에서 9월 16일 현재 바이든이 268명으로 169명의 트럼프를 크게 앞서가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에 경합주의 101명의 선거인단이 결정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이번 토론이 대선에 커다란 영향이 없을 것으로 추론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평소의 인상을 바꾸거나 중도층이 마음을 바꿀만한 이른바 '한 방'이 양측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는 바이든을 쫓아가는 입장이니 뭔가 강력한 한 방을 터뜨려야 했다. 그러나 바이든의 발언을 무례하게 끊는 것 말고는 보여준 것이 없다. 오히려 평소의 날카롭고 폭풍처럼 상대방을 몰아치는 기세가 덜 보였다.

백악관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트럼프에게 30일부터 감염 증상이 보였다고 한다. 평소에 비하여 훨씬 더 피곤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 토론 때에 트럼프가 감염되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육체적 피로로 기세가 줄어든 것일 수도 있다. 두 차례 더 남은 토론에서 이른바 '한 방'이 나올 수도 있지만 1차 토론을 봐서는 큰 기대는 안 해도 될 것 같다. 공화당조차 가장 큰 문제로 제기한 것은 무엇보다도 백인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트럼프의 애매한 태도였다. 트럼프의 지지기반이 백인 노동자 계급인 것은 분명하지만 백인우월주의자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득보다는 손실이 더 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코로나에 감염된 소식은 그의 이미지 전략에 사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동안 그는 고전적인 가부장제도의 아버지와 같은 풍모를 보여주었다. 개인생활도 그랬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고 그런 모습에서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해 식솔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든든하게 먹여 살리는 가부장을 기대한 계층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가부장은 고집 세고 독재적이지만 무엇보다도 강하고 식솔들을 챙기는 지도자의 풍모를 지니고 실제로 그런 능력도 발휘해야 한다. 트럼프가 마스크 사용을 극도로 꺼렸던 것도 그런 강한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보이려는 이미지 메이킹(image-making)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가부장제도에서 가장이 무너지면 그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다행히 트럼프 유고시에 작동되는 정치적 시스템이 미국에는 완비되어 있다. 그러니 미국이 흔들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20년 미국 대선만을 보자면, 만약 트럼프의 병세가 현재보다 더 악화된다면 2, 3차 토론은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승부는 기울 것이다.

그런데 그가 병을 가볍게 이겨낸다면 마지막 기사회생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아버지는 살아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세계는 트럼프가 사실 21세기에 소멸되고 있는 가부장제도의 취약점을 몸소 보여줄지 아니면 강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며 기사회생할지 아직도 숨죽이며 지켜보아야 한다. 미국 대선이 정확히 한 달 남은 이 시점에서 말이다. 미국은 여전히 그만큼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대선 #코로나 감염 #바이든 #미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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