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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제 역할을 못해서라는 점을 잊지 말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올곧은 출발을 기대하며

등록 2020.10.10 11:26수정 2020.10.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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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9일 공포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진화위법)에 의해 12월 10일이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출범합니다. 2010년 1기 위원회의 문을 닫은 지 10년 만입니다.

국가폭력의 진실을 알려내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신산스러운 세월도 마침표를 찍을 기회가 왔습니다. 2021년부터는 진실을 밝히는 조사의 대장정에 들어갑니다. 어렵게 세워진 국가기구인 만큼 이번 위원회에서는 유족과 피해자의 해원이 가능하길 바랍니다.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장부터 전체 200여 명이 넘는 직원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국가폭력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겠지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진화위에 파견 나온 공무원이든, 민간에서 진실규명을 위해 뛰어든 각계의 전문가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갖고 하나의 목표를 향할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애쓴 결과로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진화위는 그만큼 역할도 크고, 기대도 많습니다. 책임 또한 엄중합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지난 1기 진화위에 고 이내창 의문사 사건을 진정하고, 애면글면 사건 조사를 지켜보다 기어코 사건을 취하하기에 이른 사람의 입장에서 2기 진화위 출범을 지켜보는 마음은 복잡합니다.

과거의 경험은 희망보다는 불안이, 믿음보다는 의심이 앞서게 만듭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사건을 진정하고 나면, 또 감감무소식이지 않을까. 두려움을 안고 2기 진화위를 기다리면서 과거의 경험을 통해 국가든, 시민사회단체든 최소한 이런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몇 가지 지점을 짚어봅니다.

출발은 반성이어야
     
진화위법이 통과됐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의아함은 단어 사용의 모호함이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라는 문장은 묘하게 뒤틀려 있습니다. '진실'과 '화해'가 같은 계열의 단어가 아닌데도 왜 굳이 가운뎃점을 사용했을까, 궁금했습니다. 화해에 중심을 두고 싶은 마음이 앞섰거나, 진실의 무게를 줄이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 위원회의 목표가 화해이니, 화해할 수 있는 진실만을 구하라는 강요가 깔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다 '정리'라는 단어까지 용어에 들어갔으니 의심이든, 오해든, 곡해든 안 하기가 어렵습니다. 과거사를 정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아직도 와 닿지 않습니다.

'진실'을 밝혀 피해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가 사과하고 그 피해를 배상할 때 비로소 화해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화해의 결과로 인해 보다 보편적인 민주주의가 정착될 때 정리가 됐다고 할 텐데, 어떻게 진실을 구하고, 화해를 하고, 정리를 해낼지 궁금하기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2기 진화위도 그 근본적인 물음 앞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진실의 무게를 누구보다 크게 느끼는 분이 진화위에서 일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 그 일을 하는 사람들, 조사관이든 행정직이든 위원이든 누구든 진화위에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과거사'가 과거에 벌어진 어떤 사건이 아니라 현재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 사건이 되어야겠죠.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완전한 진상규명,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진화위 내에서는 과거사라는 '이미 지난 일'이라는 과거완료형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는 자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학살', '테러', '살인', '의문사', '고문', '강간' 등의 단어가 사건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그 잔혹한 단어의 생산자가 국가라는 점을 잊고서는 진화위의 존재 이유가 불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진화위의 시작은, 조사의 출발은, 반성이어야 합니다. 국가가 힘없고 가여운 유족과 피해자에게 큰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받기 위해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려 최선을 다하는 게 진화위의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하고, 위원회 구성원의 사명이어야 합니다.

위원회의 목적이 화해라 하더라도, 국민화합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진실이 먼저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헷갈릴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위치를 자주, 스스럼없이 잃어버렸던 1기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유족 또는 피해자의 삶이 남루한 이유가 국가가 제 역할을 못 해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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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사무실에서 한 직원이 출입문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1기와 2기 진화위의 다른 점은 유족과 피해자의 수가 크게 늘고, 사건도 복잡하고 파괴력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집단희생사건과 인권침해사건으로 크게 대별됐던 1기 진화위와 달리 2기 진화위에는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 시설 피해자 사건들이 포함되었습니다.

민간인학살, 형제복지원, 의문사 등 별도의 위원회에서 조사해야 할 규모와 내용의 사건들이 한 위원회에 모두 포함됐습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포괄적 과거청산 의지의 실현입니다만, 2기 진화위에서 이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위원장 포함 9명의 위원과 200여 명의 직원이 항일독립운동에서부터 시설피해자 인권침해사건까지 100년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들을 조사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우려스럽습니다. 직원이 200명이면 조사관 수는 그 절반 정도일 텐데, 이를 유형별로 나누고, 사건을 과별로 배당하다 보면, 10여 명의 과(팀)에서 맡아야 하는 사건이 어마어마해집니다.

수십 년 동안 은폐되었던 사건의 과거 기록을 찾고 분석한 다음 참고인을 찾아 사건의 쟁점을 파헤쳐 나간다 할 때, 진화위 조사관은 최소한 2~3배는 돼야 어느 정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 1기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때에는 83건의 사건을 54명이 조사했지만, 대부분 진실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만큼 진실을 밝히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진화위 조사가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감별사 수준으로 보지 않는 이상 100여 명의 조사관에게 수백, 수천 건의 장기미제 사건을 맡긴다는 것은 상식밖의 일입니다. 그만큼 진화위 조사가 출발부터 난관을 안고 가게 되는 셈입니다. 그런 위원회를 준비해야 하는 공무원의 역할이 국가예산을 줄이고, 인력을 감소시키는 데 머물러서는 진화위 존립 자체를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2기 진화위를 준비하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 등은 사건에 대한 기본 학습과 이해는 어렵더라도 유족과 피해자의 삶과 아픔을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는 소양이 전제되어야 객관성을 갖지 않을까 싶습니다.

숨겨진 사실을 완전히 밝히겠다는 의지가 바로 공정성

진화위의 출발에 대해 얘기했으니, 조직 구성에 대해서도 짚겠습니다. 위원 구성은 국회의 몫입니다. 법 개정을 위해 국회에서 보낸 시간이 10여 년에 이릅니다. 이유가 어쨌든 유족과 피해자에게는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기다림, 투쟁의 시간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위원 추천권을 갖고 있는 국회는 공정함이라는 잣대를 가벼이 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치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소위 경력을 쌓는 자리로 사용하려는 이를 가려내고, 진실을 밝혀내는 일에 적합한 분을 모실 수 있는 지혜가 실현되기를 기대합니다.

공정하다는 것을 아무 기준이 없는 것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유족과 피해자의 단 하나의 요구인 진실규명이 실현되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울 수 있도록 국회는 국회대로, 시민사회단체는 시민사회단체대로 눈 밝게 뜨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공정함의 기준은 개별 사건의 조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공정하다는 것은 유족과 피해자의 바람에 기초할 때 그 힘을 받습니다. 진화위에 진정해 조사가 시작된 사건은 과거 수사기관의 조작, 은폐, 공모, 가해의 의혹이 제기된 사건입니다. 공정하다는 것은 좌도 우도 아닌 중간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거 숨겨진 사실을 완전히 밝히겠다는 조사 의지가 바로 공정성입니다.

의지를 실현하는 노력이 공정성의 발현이지, 판단을 배제하는 것이 공정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이곳 과거 국가범죄의 진실을 밝혀내는 조사기구에서도 관통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진화위의 기조를 바로 세우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번에도 고 이내창 의문사 사건을 진정하고, 4년 동안 편치 않을 시간을 보낼 테지요. 눈 밝고 심지 굳은 조사관을 만나 진실에 한발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유족, 시설 피해자와 연대해, 진화위를 지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또 자임해야 할 듯합니다.

2000년부터 지속되어온 진정인의 위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요. 그 시간을 앞당기는 2기 진화위가 되어주길 바라고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전 대통령소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팀장인 신명철 우리교육 대표입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 <교회와인권> 277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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