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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노파에게 들은 세상의 진리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39회] 밥 짓고 술 파는 시골 아낙으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를 듣고 깨달은 내용

등록 2020.10.08 16:20수정 2020.10.0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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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숲에 들어앉은 다산초당.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이 10년 동안 살았던 산정이다. ⓒ 이돈삼

 
선비는 곧 학인(學人)이다. 배우는 사람에게 배울 학(學) 자를 쓴다. 학자ㆍ학교ㆍ학문ㆍ학생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공자는 "아랫사람에게 물어도 부끄럽지 않다" 즉 '불치하문(不恥下聞)'이라 했는데, 막상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이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정약용은 달랐다. 1801년 겨울 강진 노파의 집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할 때, 흑산도에 있는 둘쨰 형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노파와 나눈 사연을 진솔하게 적어 보내었다. 밥 짓고 술 파는 시골 아낙으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를 듣고 깨달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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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 유배 당한 정약용을 최초로 품어 준 사의재 주모와 처녀 동상입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기도 합니다. (2017.3.11) ⓒ 김현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

어느 하루 저녁에 집주인 노파가 제 곁에서 한담을 나누다가 갑자기 묻기를 "선생은 책을 읽은 사람인데 이런 뜻을 아시는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혜는 똑같고 더구나 어머니가 더욱 많이 애쓰시는데도, 성인들이 교훈을 세우기를, 아버지를 따르게 하였으며, 상복을 입을 경우에도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한 등급 낮게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혈통으로 집안을 이루게 해놓고는 어머니 집안은 제외시켰으니 이미 편파적이 아닌가요?" 라고 했습니다.

내가 답하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나으셨다라고 했기 때문에 옛날책에는 아버지가 자기를 처음 태어나게 하신 분으로 하였죠. 그 어머니의 은혜도 무척 깊기는 하지만 하늘의 으뜸인 태어나게 하는 근본의 은혜가 더욱 중요한 겁니다." 라고 했더니, 노파가 말하기를 "선생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해 보건대, 풀이나 나무를 예로 들여서 말한다면 아버지는 나무나 풀의 씨앗입니다. 어머니는 나무나 풀로 보면 토양입니다. 종자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그 베푸는 것이 지극히 미미한 것이지만, 부드러운 흙의 자양분으로 길러내는 흙의 은공은 대단히 큽니다. 그러나 밤의 종자가 밤나무로 되고 벼의 종자가 벼가 되는데, 그 몸 전체를 이루는 것은 모두가 땅 기운이지만, 결국은 나무나 풀의 종류는 모두 씨를 따르는 것이니, 옛날 성인들이 교훈을 세워 예를 제정한 것이 그러한 이유인 것으로 생각됩니다."라 하였습니다.

나는 이러한 말을 듣고 흠칫 크게 깨달아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천지간에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오묘한 뜻이 이러한 밥파는 노파로부터 나올 줄이야 누가 알기나 했겠습니까? 기특하고 기특한 얘기입니다. (주석 6)

얼마 뒤 형 정약전의 답신이 왔다. "모두 새로운 견문이니, 사람을 깨닫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네. 주막 노파의 논리는 내가 일찍이 생각해도 이르지 못한 것인데 뛰어나고 뛰어나네." (주석 7)


주석
6> 정약용ㆍ정약전 저, 정해렴 편역주, 『다산서간정선』, 77~78쪽, 현대실학사, 2002.
7>앞의 책, 13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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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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