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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의 둘째형을 기리면서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40회] 형이 유배 중인 흑산도(黑山島)라는 이름이 하도 역겨워 현산(玆山)으로 바꿔 불렀다

등록 2020.10.09 17:23수정 2020.10.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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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의 어류학자 정약전 선생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선생은 홍어의 습성과 요리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듯 소세하게 기록했다. 흑산도에는 자산어보 문화관이 있어 선생의 삶의 궤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김대호

 
그가 어렸을 적부터 무척 따르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둘째 형 약전은 호가 손암(巽庵)이다.  

1790년(정조 14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 등을 역임했다. 네 살 터울이지만 일찍부터 어른스러워서 정약용이 기대며 자랐다.

정약용은 맑은 날씨이면 마을 뒷산에 올라 바다 멀리에 보이지도 않는 섬 흑산도의 형님을 떠올리며 그리워하였다. 나주의 주막 '밤남정'에서 기약없이 헤어진 이후 형제는 가끔 배편을 통해 안부와 학문에 관해 묻고 답하는 편지글을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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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사라마을 정약전 유배지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가장 잘 사는 사리 마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자산어보를 기록하다. ⓒ 이재언

 
「보은산 절정에 올라 우이도를 바라보다」란 시에서 형님에 대한 애절함이 묻어난다. 우이도는 흑산도 내의 작은 섬으로 정약전이 귀양살이한  곳이다.

 한껏 멀리 바라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
 괴로운 마음 쓰라린 속을 남들은 모르리라
 꿈속에서 서로 보고 안개 속을 바라보는데
 뚫어지게 바라보다 눈물 마르니 천지도 깜깜해라.   

그는 형이 유배 중인 흑산도(黑山島)라는 이름이 하도 역겨워 현산(玆山)으로 바꿔 불렀다.

흑산이라는 이름이 듣기만 해도 끔찍하여 내가 차마 그렇게 부르지 못하고 편지를 쓸 때마다  '현산'으로 고쳐 썼는데 현(玆)이라는 글자는 검다는 뜻이다.라고 다산은 설명해 놓았다.

'검을 흑'과 '검을 현'은 뜻이야 같지만 어감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무섭고 두려운 흑자를 대신하여 유순하고 평이한 '검을 현'이라는 글자를 사용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서로를 호칭하기를 정약전은 정약용을 '다산(茶山)'이라 부르고 정약용은 형님을 '현산'이라고 하면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때문에 오늘날 『자산어보(玆山魚譜)』라고 불리는 정약전의 저서 이름도 마땅히 『현산어보(玆山魚譜)』로 읽어야 한다. (주석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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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서당 유배당시 정약전이 마을아이들을 가르쳤던 서당. 현판은 사촌서당 대신 복성재나 사촌서실 현판을 달아야 맞다. 글씨는 정약용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 김정봉

 
정약용이 둘째 형에게 보낸 여러 통의 편지 가운데 그가 신지도(현 완도군)에 유배 중일 때 쓴 「약전 형님을 생각하며」1, 4연을 소개한다. 형제끼리도 만날 수 없는 신세를 무심한 물오리와 기러기에 비유한다.


             1

 외딴 섬 작기가 공 같은데
 무심결에 대인이 살고 계시네
 아무튼 사는 게 죽기보다 낫겠지만
 어찌 꿈이라고 꼭 현실이 아니리까
 푸른 해조류로 늘 배를 채우고
 붉은 깃털의 새 가까운 이웃 만들었다오
 초가을에야 보내신 편지 받았는데
 이 서신 띄운 때는 2월이라오.

             4

 어느 사이에 백발이 이르다니
 푸른 하늘이여, 이를 어찌할거나!
 이주(二洲)에는 좋은 풍속 많다는데
 외딴섬에서 홀로 슬픈 노래라니요
 건너가려도 배와 노가 없으니
 이 귀양살이 그물을 어느 때나 벗어날까요
 편하고 즐거운 저 물오리와 기러기는
 푸른 물결 타고 잘도 노닐고 있네. (주석 9)


주석
8> 박석무, 『다산 정약용평전』, 444~445쪽.
9> 『다산시정선(상)』, 346~34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다산 #정약용평전 #정약용 # 다산정약용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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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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