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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 민란을 예견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42회] 김이재에게 보낸 '대단히 불온'한 편지

등록 2020.10.11 19:12수정 2020.10.1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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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 강진군청 홈페이지 캡처

 
다산초당에 안전한 거처가 마련되고 외가의 도움으로 생활 형편이 조금은 나아졌으나, 그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뜨거운 불덩이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동안 지켜 보아온 호남지방 백성들의 처참한 실정때문이다. 계속되는 자연 재해와 지주ㆍ관리들의 수탈로 거리에는 유랑민이 줄을 서는 등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는 것을 목견한다.

서울에서 살던 시절에 막역했던 친구 김이재(金履載)가 있었다. 그가 강진에서 가까운 완도의 고금도에 귀양 왔다가 1805년 해배되어 서울로 떠나는 길에 정약용을 노파의 집 골방으로 찾아왔는데, 그때 이별의 시로 부채에 직접 적어준 「벗을 떠나보내며」라는 시가 전한다.

 역사(驛舍)에 가을비 내리는데 이별하기 더디구나
 이 머나먼 외딴 곳에서 아껴 줄 이 다시 또 누구랴
 반자(班子)의 귀양 풀림 부럽지 않으랴만
 이릉(李陵)의 귀향이야 기약이 없네
 대유사(大酉舍)에서 글 짓던 일 잊을 수 없고
 경신년(1800)의 임금님 별세 그 슬픔 어찌 말하랴
 대나무 몇 그루에 어느 날 밤 달빛 비치면
 고향 향해 고개 돌려 눈물만 주룩주룩. (주석 5)

 

다산초당도 다산이 머물던 당시의 다산초당 풍경이 아주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과는 더러 다른 부분이 있어 눈길을 끈다. ⓒ 김종길

 
일반에 조금은 낯설은 김이재를 소환한 것은 정약용이 그에게 '대단히 불온'한 편지를 썼고, 그 내용이 역사의 앞일을 정확히 내다봤기 때문이다. 풀어 설명하면, 정약용은 1809년 여름과 가을 어간에 다산초당에서 '민란의 조짐'을 예견하고 있었고, 1894년 마침내 동학농민혁명으로 발발한 것이다. 「공후 김이재에게 보냅니다②」의 내용을 요약한다.

 1. 민란의 조짐

지금 호남(湖南) 일도(一道)에 근심스러운 일이 두 가지 있으니, 그 한 가지는 백성들의 소요이고, 또 한 가지는 아전의 탐학인 것입니다. 요 몇 해 사이에 깊은 산골로 이사한 명문대가(名門大家)가 수천 명이나 됩니다. 무주(茂朱)ㆍ장수(長水) 사이에는 노숙(路宿)하는 사람들이 산골짜기에 가득하고, 순창(淳昌)ㆍ동복(同福) 사이에는 유민(流民)이 길을 메웠으며, 바닷가의 여러 마을에는 촌락이 쓸쓸하고 논과 밭의 값이 없으니, 그 모양을 보면 황황(遑遑)하고 그 들리는 소리는 흉흉(洶洶)합니다.

그 문화(門貨)를 헤쳐 다투어 술과 고기를 사고 악기를 들고 산과 물로 가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시고 떠들고 허벅지와 손뼉을 치며 즐기고 있으니 이는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불행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뜻을 잃고 나라를 원망하는 무리들이 허황된 뜬소리를 퍼뜨려 불안한 말로 선동하고 참위(讖緯)의 그릇된 설을 조작하여 백성들을 현혹시킬 목적으로  한 사람이 거짓말을 퍼뜨리면 많은 사람들은 참말로 알고 전하므로, 비록 장의(張儀)ㆍ소진(蘇秦)의 말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또한 그 일어남을 덮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수령이란 관리는 귀머거리인 양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감사란 신하들도 전혀 마음을 쓰지 않으니, 이는 마치 자녀가 지랄병에 걸려 미친 듯 고함을 치고 어지럽게 치닫는데도 부모나 형이 되어서 어디가 아픈 지를 물어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조정은 백성의 심장이고 백성은 조정의 사지이니, 힘줄과 경락(經絡)의 연결과 혈맥의 유통은 한순간의 막힘이나 끊김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백성들이 두려워 근심하고 있는데도 안위(安慰)하지 않고 한 도가 시끄러운데도 진정시키고 무마할 대책은 꾀하지 않고서, 오직 다투고 반목하는 일만 엎치락뒤치락 서두를 뿐, 큰 집이 한 번 무너지면 제비나 참새도 또한 서식할 곳을 잃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강진 다산초당 전경. 신유박해 때 유배된 다산 정약용이 생활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이돈삼

 
2. 탐관오리의 횡포

탐관오리의 불법을 자행함이 해마다 늘어나고 달이 갈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6. 7년 동안 동서로 수백리를 돌아다녀 보니, 갈수록 더욱 기발하고 고을마다 모두 그러하여 추악한 소문과 냄새가 참혹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령은 아전과 함께 장사를 하며 아전을 놓아 간악한 짓을 시키니 온갖 질고 때문에 백성들이 편히 살 수 없습니다.

법 아닌 법이 달마다 생겨나서 이제는 일일이 셀 수조차 없을 지경입니다. 조그만 고을의 아전들도 재상과 교제를 맺지 않은 자가 없이, 재상의 편지가 내리기라도 하면 기세가 산처럼 솟아올라 그 편지를 팔아 위세를 펼쳐 위아래에 과시하는데도 수령은 위축이 되어 감히 가벼운 형벌도 시행하지 못하고 사민(士民)들은 겁이 나고 두려워서 감히 그 비행을 말하지 못하므로 권위가 이미 세워져 뜻대로 침학합니다.

계산해 보면, 한 고을 안에 이런 무리가 5, 6명을 밑돌지 않으니, 양떼 속에서 범을 없애버리지 않고 논밭에서 잡초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어찌 양이 잘 크고 곡식 싹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감사가 군현(郡縣)을 순행할 적이면 가는 곳마다 반드시 이 5, 6명을 불러 좋은 안색으로 대해 주고 음식을 대접하는데, 무릇 이런 접대를 받은 자들이 물러나서는 천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 아아, 안타깝습니다.

한 도가 이러하니 여러 도를 알 수 있고, 여러 도가 이러하니 나라가 장차 어찌 되겠습니까. 이몸은 풍비(風痹)가 점점 심해지고 온갖 병이 생겨 언제 죽을지 모르겠으니, 기쁜 마음으로 장강(獐江)에 뼈를 던지겠으나, 다만 마음속에 서려 있는 우국(憂國)의 충정을 발산할 길이 없어 점점 응어리가 되어가므로 술에 취한 김에 붓가는 대로 이와 같이 심중을 털어놓았으니,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밝게 살피시고 나의 미치고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주석 6)


주석
5> 『다산시정선(하)』, 519쪽.
6> 정약용ㆍ정약전 저, 정해렴 편역주, 『다산서간정선』, 213~215쪽, 현대실학사, 2002.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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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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