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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물었다, "조영남 그림이 대작이라는데 책은 직접 썼나?"

[조영남의 책, 출간 비하인드 ①] '글 쓰는 인간' 조영남과 편집자로 처음 만났을 때

등록 2020.10.12 08:01수정 2020.10.1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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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5일, 대법원은 조영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6년 이른바 '미술품 대작 사건' 이후 약 4년여를 끌어온 재판의 종지부가 마침내 찍혔다.

고요히 흐르던 그의 일상은 밀려드는 취재진들과의 만남으로 분주해졌고, 그 못지 않게 나 역시 마음이 바빠졌다. 그와 함께 몇 년 동안 준비한 두 권의 책이 드디어 세상 빛을 볼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선 출간한 책은 현대미술에 관한 조영남의 100문 100답을 담은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었다. 

글 쓰는 사람, 조영남   
 

대법원 판결 직후 출간한 책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앞표지 조영남 선생은 자신의 책 표지 그림을 직접 그리는 것은 물론 디자인도 직접 한다. ⓒ 이현화

   

조영남 식 표지 디자인. 컴퓨터를 못 쓰는 그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표지의 여러 요소를 직접 자르고 붙여 디자인한다. ⓒ 이현화

 
시작은 2017년 봄날로부터다. 그 무렵 조영남 선생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미술품 대작 사건'으로 대외활동을 중단했다는 건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여러 모로 조심스러워 그에게 따로 안부를 묻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영동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청담동 자택을 찾았다. 못 본 지 꽤 오래 되었음에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선생은 여전한 모습이었다. 국밥에 밥 한 숟갈을 같이 뜨면서 시시콜콜 서로의 근황을 나눴다. 그런 뒤 선생은 불쑥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시간이 너무 남아 돌아서 현대미술에 관한 책을 한 권 써보고 싶은데 어때?"

나는 두말도 하지 않고 동의했다. 선생에게 책을 쓴다는 행위는 '그냥 시간이 남아 돌아서' 무심히 하는 행위일 수 없다. '시간이 너무 남아 돌아서'라는 말은 선생 방식의 표현일 뿐, 현대미술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그의 의지를 알 것 같았다.

원치 않아도 이미 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이름이 되어버린 그가 현대미술에 관한 책을 쓴다는 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이미 10여 년 전 현대미술에 관해 '최대한 알아먹기 쉽게' 쓴 책을 출간한 전력도 있으니 못할 게 없어 보였다. 

나는 조영남 선생과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그와 처음 만난 건 2005년 '독도 발언'으로 그가 칩거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 무렵 다니던 회사 사장님을 따라 처음 만난 뒤로 나는 그의 편집자가 되었다. 그와 '사랑'에 관한 책을, '현대미술'에 관한 책을 만들고, '시인 이상'에 관한 책의 원고 작업을 도왔다.

그를 만나기 전 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한마디로 '설렁설렁, 대충대충'이었다. 만난 지 5분 만에 이런 설익은 선입견은 장렬하게 박살이 났다. 그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와 책을 만들면서 조영남이라는 또다른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헐렁하게, 일체의 형식을 무시하고 자유롭게만 살 것 같은 그는 원고 작업에 들어가면 그렇게 몰입할 수가 없었다. 일단 그는 컴퓨터를 쓰지 못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모든 원고를 손으로 직접 쓰는 건 물론이다. 여기에 더해 원고의 모든 내용은 '인터넷 검색의 결과값'일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초고. 그가 원고를 쓰는 방식은 이렇다. 이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 ⓒ 이현화

 
깨알 같은(정말 글씨가 깨알 같다!) 글씨로 촘촘히 써내려가는 그의 글줄을 따라 읽노라면 펜 끝에서 술술술 흘러나오는 글자의 행렬만큼이나, 그의 머릿속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방대한 정보의 행렬이 놀랍기만 하다. 글 한 문단을 쓸 때마다 습관처럼 인터넷 검색창에 모든 걸 검색해보는 나로서는, 거의 기억력에만 의존해서 완성하는 그의 글쓰기가 도리어 무척 신기해 보이기까지 했다.

참고하는 문헌은 정말로 문헌이다. 원고를 쓰는 내내 그의 독서 이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책꽂이에 꽂힌 그의 수많은 책들이 거실과 집안 곳곳에 널브러진 장면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온갖 지식과 정보가 망라된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을 완성했고, 사랑에 관한 온갖 담론을 그만의 방식으로 담아낸 <어느날 사랑이>를 썼으며, 필생의 소망으로 품고 산 시인 이상의 시 해설집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를 썼다. 마치 개미의 행렬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은 때로 산으로 가고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자신의 글 안에서 길을 잃은 적이 없다.

말하려는 바를 잊은 적이 없다. 주술은 어긋난 듯 아닌 듯 묘하게 맞아떨어지고, 발상은 기가 막히고, 썰렁한 아재 개그로 변죽을 울리다가 방심한 틈을 타 한 방의 '훅'을 날리는 걸 잊지 않는다. 눈앞의 문장을 읽으면서 다음 문장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 문장을 읽으면서 기상천외한 전개방식에 흠칫 놀라다가 박장대소를 거듭하노라면 어느덧 마지막 장에 이른다.

그는 노래 부르는 사람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나 처음 만나 그의 글을 입력한 최초의 순간,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그는 글 쓰는 자, 바로 호모 스크리벤스(Homo scribens)다. 그것도 매우 희한하고 흥미로운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인간 조영남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표지 그림 그리는 조영남 선생. 앞에서 본 그 테이블에서 그는 이렇게 수많은 그림을 그리며 지난 몇 년을 보냈다. ⓒ 이현화

 
'인간' 조영남 역시 만만치 않게 희한하다. 다음 원고를 언제까지 쓰겠다, 책에 들어갈 이미지 목록을 정리하겠다, 초교를 언제까지 보겠다 등등 저자와 편집자는 무수히 많은 약속을 거듭한다.

대부분의 저자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지키지 못한다. 때문에 철두철미한 약속의 이행은 일정 정도 포기의 대상이 되기 쉽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심전심의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라 여겼다. 아니었다. 그가 하기로 한 것을 하기로 한 날에 못한 일이 기억에 없다. 그의 약속을 나는 신뢰한다.

엉성해 보이는 스케줄표에 역시나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해둔 걸 보면 저걸로 어떻게 약속을 기억할 수 있을까 싶지만, 최신 스마트폰에 기록한 나의 약속이 오히려 가벼울 뿐 그에게 약속은 매우 무겁다.

오히려 늘 하기로 한 것을 다 못했다고, 약속을 미루는 쪽은 나였다. 설렁설렁, 대충대충, 요령껏, 기분 내키는 대로 살 것 같은 그에 관한 나의 선입견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보이는 것과 실상의 차이가 극명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이런 그의 철저한 약속의 이행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나온 것으로 여긴다. 그는 책에 관해 건네는 나의 의견을 존중하고 깊이 경청한다. 그의 이런 태도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나의 이런 경탄을 듣고 누군가는 '유명인이 스스로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상대의 말을 깊이 듣는 제스처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제스처를 15년여 동안 일관되게 보일 수는 없다.

존중과 배려라는 그의 태도는 노력과 예의의 범주를 벗어난 그냥 조영남,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걸 나는 몇 번 만난 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썰렁한 농담 이면에, 뭔가에 꽂히면 앞뒤 돌아보지 못하고 직진하는 태도 안쪽에 존재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 어쩌면 그를 온갖 풍파에도 그를 그로서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 아닐까, 이것이 그를 보며 내가 내린 나만의 결론이다. 

'조영남'이라는 한 권의 책
 

조영남 선생의 거실이자 작업실. 그는 여기 앉아 그림도 그리고 책도 쓰고 손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콜라도 마신다. ⓒ 이현화

 
시간은 흘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나는 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가 다일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뜻밖에 그뒤로도 그는 책을 만들 일이 있으면 언제나 연락을 해왔고, 그때마다 나는 부름에 응해 의견을 전하거나 또는 같이 또다른 책을 만들거나 하며 지냈다.

방송을 통해 만나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설렁설렁, 대충대충, 자유로운 방식의 외피를 썼으나, 그런 위악과 과장된 제스처를 벗어던진 일상 속의 그는 소탈하고 진솔하며 재기로 반짝거리는, 만나면 늘 경탄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시간은 흘렀고, 미술품 대작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는 그를 뉴스를 통해 보면서 걱정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공교롭게도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독도 발언'으로 칩거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그때와 똑같은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또 반복되고 있구나, 하는 묘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2017년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선생을 만나, 책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뒤 내가 한 일은 다름아닌 '입력'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게 30대 중반이었다. 그때도 이렇게 숱한 밤낮을 입력하는 걸로 씨름했다.

40대 후반을 지나 50대 초반에 접어드는 나로서는 이 나이까지 그의 깨알 같은 글씨를 입력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와의 작업 방식은 이러하다. 그는 쓴다. 붉은색 펜으로 어떨 때는 A4 용지에, 어떨 때는 노란색 서류 파일에 쓴다. 쓰다가 생각이 엉뚱한 데로 흐르면 글은 여기로 저기로 마구잡이로 흐른다. 수많은 지시선을 따라 그 원고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입력하는 일은 그 때문에 난이도가 매우 높다.

내가 바쁘다고 누구에게 부탁할 수도 없다. 그렇게 입력해서 출력해 가져가면 그는 또 쓴다. 고치고 또 고친다. 앞에 있던 내용이 뒤로 가기도 하고, 기껏 입력한 내용이 모두 날아가기도 한다. 편집자로서 내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그가 일단락이 되었다고 할 때까지 입력과 수정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불쑥 묻는다.

"지금까지 내용이 어떠냐?"

그럼 나는 대답한다. 원고의 장단점, 보완할 점에 대해 답한다. 그는 전적으로 수용한다. 다시 또 쓰고 나는 또 다시 입력하고 다시 수정한다. 조영남과 책을 만드는 일은 이 과정의 무한 반복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밝힌다. 이른바 '미술품 대작 사건'이 불거진 뒤 몇몇 언론사에서 물어물어 내게 연락을 해왔다. 취지는 '그림도 대작이라는데 그가 쓴 책도 혹시 대작이 아닌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고,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모 방송사에서 집요하게 연락을 해왔다. 급기야 "고스트 라이터"가 나타났으니 '사실대로 밝히라'고 압박해오기까지 했다.

조영남 선생의 책을 대신 쓴 일명 대필작가, 유령 작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 '고스트 라이터'를 나와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원고를 다 쓴 뒤 보내오는 다른 저자라면 몰라도 조영남 선생이 쓴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내 손으로 입력해서 만든 책에 고스트 라이터가 있을 리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더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마침내 '현대미술'에 관한 1차 원고를 끝내는 날, 이제 이걸로 편집에 들어가도 좋겠다고 서로 합의한 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말이야, 말러 교향곡을 다시 들었는데 이게 기가 막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말러 음악을 듣는데 시인 이상이 떠오르더라. 그래서 말야. 이상에 관한 책을 한 권 더 쓸까 해."

이미 그는 구상을 마쳤다. 시인 이상을 피카소, 아인슈타인, 니체, 말러 등과 같은 세계 최고 천재 반열에 올리고 싶다고 했다. 가상의 보컬그룹을 꾸리고, 이상의 시로 가사로 삼아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게 하겠다는 기가 막힌 포부가 이어졌다. 이미 이를 주제 삼은 그림까지 그리기 시작했다며 완성한 첫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는 시인 이상의 '덕후'다. 그의 '덕질의 역사'는 고등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그의 작품을 만난 이래 60여 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시인 이상 덕후인 그가 마침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글도 쓰는 사람이니 그에 관해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만들고,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얼핏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한다고 하니 나는 역시 오케이했다. 기꺼이 다시 또 그 무한 루프로의 진입을 받아들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바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얼핏 허무맹랑해 보일지언정 끝까지 그런 일은 없다. 게다가 나는 책이 언제 나오느냐에 큰 관심이 별로 없었다. 선생이 들으면 어떠실지 모르지만 얼마나 팔리느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책을 만드는 그 과정, 그 시간을 통해 조영남이라는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흥미로웠고 그와 그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면 뭐든 오케이였다. 그렇게 또 시인 이상에 관한 기상천외한 책을 만드는 무한 루프의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그와의 작업 그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도 여겨졌다. 누구라서 그와 더불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랴. 나는 그것만으로도 오케이였다. 

- 2화 <조영남 책을 내겠다니 돌아온 말 "무슨 일을 겪으려고?">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블로그 및 페이스북 등에 동시 게재합니다

보컬그룹 시인 李箱과 5명의 아해들 - 조영남의 시인 이상 띄우기 본격 프로젝트

조영남 (지은이),
혜화11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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