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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이 낭독한 책, 나이 50에 '성덕'이 됐습니다

[에디터만 아는 TMI] 기사 하나로 출간 계약까지... 최성연 지음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등록 2020.10.07 08:50수정 2021.05.1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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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만 아는 시민기자의, 시민기자에 의한, 시민기자를 위한 뉴스를 알려드립니다.[편집자말]
인생에서 단호함이 필요할 때는 언제일까. 1년 6개월여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가 쓴 글을 통해 세 번의 단호함을 봤다.

'2017년 딸이 입시생으로 수능을 치르고 대학 입학 당락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그는 한국을 떠난다. '삶이 싫어서 몸부림치며 우는 인간, 그러면서도 소설을 쓰기 위해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려는 40대 후반의 여자가 당시의 나였다'라고 고백한 그는 통장 잔고를 털어 요가를 배우기로 한다. 딸의 등록금 정도만 남겨두고. 내가 본 그의 첫 번째 단호함이다. 


요가를 배우고 돌아왔지만, 삶에 대한 그의 고민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평생 예술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던 그였다. 피아노 전공으로 예고에 진학하고, 명문대를 나왔다. 대학원에서는 연극을 전공했다. 연극 무대에 서거나 지도하고 희곡을 쓰는 일로 돈을 벌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수입이란 게 너무 작고, 일정치 않았다는 것. 그래서 결심한다. 예술 활동을 중단하고 미화원으로 취직하기로. 이를 위해 이력서에 최종학력을 '고졸'이라 고쳐 쓴다. 2018년 초의 일. 내가 본 그의 두 번째 단호함이다. 

그는 미화원 일을 시작하며, 그토록 갈망하던 소설 대신 <오마이뉴스>에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인생 계획에 전혀 없던 일, 우연히 사는이야기를 보고 '이런 글은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었다고 생각해 시작한 일이다. 연재기사 '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의 시작이었다. 그는 바로 최성연 시민기자다. 그리고 내가 본 그의 세 번째 단호함은 미화원으로 일한 지 1년이 되었을 무렵 일을 그만두고 요가 강사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거다. 

피아노 건반을 치던 손이, 연극 무대를 거쳐 변기솔과 락스통을 들게 되다니. 그리고 이번엔 두 발로 요가 매트를 지지하고 섰다니. 그의 도전과 용기 그리고 단호함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50대 고학력자 예술인이 시민기자 되던 날
 

'오십이 되면 다르게 살고 싶어서'라는 부제가 달린 책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 위즈덤하우스

 
나는 그의 첫 번째 독자였다. 2019년 5월 11일 '50대 고학력 여성의 마음을 흔든 구인 공고'라는 제목의 글을 편집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지만,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편집 소견(내부에서만 볼 수 있는 메모 기능)을 짤막하게 남겼다. 그때 그는 취재 경위에 이렇게 썼다. 
 
일 년 계약직으로 미화원이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건물과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했지만 그곳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미화원을 눈여겨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일, 그 일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들어서기 전엔 절대 보이지 않는 '미화'의 숨겨진 세계를 몇 회에 걸쳐 솔직하게 적어보려 합니다.

처음 5편 정도로만 쓸 예정이었던 글은, 더 써 봐도 좋겠다는 내 권유가 있기도 했지만, 본인의 의지로 10회까지 쓰다 개인 사정으로 중단했다. 그리고 해를 넘겨 지난 9월, 한 손에 쥘 수 있는 아담한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오십이 되면 다르게 살고 싶어서'라는 부제가 달린 책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로. '딱 일 년만'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진 목차가 눈에 띈다. 

출간 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첫 기사가 나가고 '이 기사 너무 좋지 않니?'라고 출판사에 다니는 후배에게 기사 링크를 보낸 게 바로 계약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기사 하나만 보고 출간 계약을 할 수 있지?' 싶었는데 원고가 하나도 없어도 계약부터 하고 보는 게 출판사라는 걸 미처 생각 못했다(좋은 작가는 일단 계약부터 하고 보는 법이라나 뭐라나).  


저자는 '책을 닫으며'라는 글에서 말한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 '내가 어떻게 적응할까?'를 걱정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가 '나를 어떻게 이끌어 줄 것인가?'를 기대한다. 어떤 자극과 충격으로 내 안의 잠재된 영역을 깨우고, 내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설렌다. 청소일은 그동안 내가 해 온 일의 성격과 정반대의 일이어서 기대가 컸다"라고.

그의 글에서 느낀 단호함의 실체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의 삶은, 단호함으로 인해 생기는 불안보다 그 불안을 오히려 자극으로 받아들이며 일궈 온 것이라는 걸. 청소 일이 '기대했던 대로 심플라이프는 아니었지만, 때로 우연한 만남이 인생의 결정적인 길을 열어주듯, 기대를 배신한 전개는 인생의 풍경을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다'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이런 성찰도 거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도. 평생을 안주하며 사는 사람은 결코 얻을 수 없는 '경험치'들. 아직 쓰이지 않은 그의 소설까지 기대되는 이유다.

"김창완 아저씨가 제 책을 낭송하다니요"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홈페이지 화면 캡처. ⓒ SBS

 
지난달 말, 출간을 핑계로 잠시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희곡집이나 소설책이 아닌 이런 대중서를 내게 될 줄 몰랐다면서도 "책이 나와 좋다"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진짜 기적 같은 일이 생겼잖아요. 김창완씨가, 제가 어릴 적부터 너무 좋아했던 가수 김창완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제 글이 낭독 되었어요! 저 완전 '성공한 덕후'가 됐어요. 기적 같아요."

김창완이 낭독한 부분은 79페이지, '청소를 하더라도 폼나게' 부분이다. 김창완씨는 낭독 말미에 말했다. 

"작가는 청소 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담아 책을 냈다고 합니다. 내 눈에 비친 세상이 바로 내 세상입니다. 그걸 내 마음에 비추면 그게 내 인생입니다. 청소를 하면서 본 세상을 나눠주는 작가의 마음이 따뜻합니다."

사는이야기를 쓰기 이전 그의 삶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사는이야기에서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다만 짐작할 뿐. 그래도 그에게 하나는 제대로 배웠다. 인생에서 단호함이 필요할 때가 온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삶의 태도. 모든 도전은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주니까. 최성연 작가가 그걸 온몸으로 보여줬으니까.

끝으로 이 책의 시작을 함께 했다는 인연으로, 추천의 말을 쓰게 됐는데 그 일부를 옮기며 글을 마친다. 
 
청소하는 일에 대해 쓰고 있으나, 내가 하고 있는 일과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당장이라도 내 일에 적용해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말들이 마음에 별처럼 박혔다. '몸으로 하는 일에 마음이 함께 쓰이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노동은 노동일뿐 마음 주지 말고 정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 '노동자들은 사용자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으며 더 잘하고 싶어 한다'는 것, '일의 이유를 알고 일 할 때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그냥 일할 때, 일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은 많이 다르다'는 내용 같은 게 그랬다.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 오십이 되면 다르게 살고 싶어서

최성연 (지은이),
위즈덤하우스, 2020


"모든 시민은 기자다! '뉴스게릴라들의 뉴스연대'가 바로 오마이뉴스입니다.
#에디터만 아는 TMI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최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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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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