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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생가 안내판 바꿨지만... 여전한 '역사왜곡' 논란

추석연휴 전 새 안내판 설치... 진보당 "과를 덮을 주는 안내판" - 합천군 "사실만 담았다"

등록 2020.10.06 19:11수정 2020.10.0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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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이 최근 새로 설치한 전두환 생가 새 안내판. ⓒ 진보당 경남도당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된 전두환(89)씨 생가 앞 새 안내판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전두환씨 기념사업과 관련해 지역 안팎에서 비판이 거세지자 최근 경남 합천군이 생가 안내판을 교체했는데, 도리어 '과오를 덮어주는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두환씨 생가는 그의 고향인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 있다. 합천군이 1983년 생가를 복원해 관리하고 있다.

앞서 적폐청산과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진보당 경남도당은 지난 6월 합천군에 '범죄자 전두환 관련 기념물 청산'을 요청했다.

이들은 전두환씨의 아호(일해)를 따서 붙인 '일해공원'(옛 새천년생명의숲)의 명칭 변경과 생가의 군재산목록 삭제, 군청 뜰 기념식수 표지석 철수, 창의사 현판 철거를 요구했다.

경남운동본부는 "범죄자 전두환은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내란수괴를 비롯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선고를 받았다"며 "전직대통령예우에관한법률에 의해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은 경우 경비·경호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당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두환을 추앙하며 만든 기념시설을 국가나 지자체 예산을 들여 관리하는 모순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기념물 청산을 요청했던 것이다.

합천군은 생가 안내판을 추석연휴 전인 지난 9월 말 교체했다. 새 안내판에서는 10.26 이후 국가 위기를 수습해 대통령으로 추대됐다거나, 재임 기간 경제도약과 국제적 위상 상승을 이뤄냈다는 식의 찬양 문구는 빠졌다. 그러나 5.18 당시 만행, 민주화운동 탄압 등 전두환씨의 '잘못'에 대한 언급은 여전히 하나도 없다.


새 안내판 문구에 대해 석영철 전 진보당 경남도당 위원장은 "조삼모사다. 옛 안내판이나 지금 문구나 별 차이가 없다. 공과를 기록해야 하는데, 새 안내판은 '잘못'인 '과'가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안내판으로서 의미가 없다"며 "과를 덮을 주는 안내판이다.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합천군청 관계자는 "내부 검토 과정을 거쳐 안내판을 새로 세웠다. 가치관이 반영된 부분은 빼고 있는 사실 그대로 담았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최대한 뺐다"고 설명했다.

합천군은 '일해공원' 명칭 변경과 기념식수 표지석 철거 등에 대해서는 아직 진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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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 율곡면 내천리에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 옛 안내판. ⓒ 윤성효



다음은 이전 안내판과 새 안내판 문구다.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옛 안내판]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2길 12-3(내천리 263)의 이 가옥은 전두환 대한민국 제12대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완산 인왕전씨인 부친(전상우)과 광산김씨인 모친(김점문) 슬하의 7남매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난 (1931년 1월 18일) 전 대통령은 가족들을 따라 만주로 이주한 8살 때(1939년)까지 이곳에서 자랐다. 2년만에 만주에서 돌아와 대구에 정착하게 된 전 대통령은 빈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고학을 하며 어렵게 마쳤다.
북한공산군의 남침으로 인산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육간사관학교에 입교했다(1951년 12월). 정규 4년제의 첫 졸업생으로 임관된(1955년) 이후에는 유능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장교로 두각을 나타냈다. 우리나라 장교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특수전·심리전 교육훈련 과정을 이수했으며(1959년~60년) 원대복귀한 뒤에는 공수특전부대의 대대장·여단장 등 지휘관을 차례로 역임했다.
1968년 1.21사태 때에는 청와대의 외곽 경호를 맡고 있는 수도경비사령부의 대대장으로 있으면서 사전에 치밀한 대비태세를 갖춤으로써, 북한특공대의 기습을 효과적으로 격퇴하는 공로를 세웠다. 동생 가운데 맨처음 장군이 된(1973년) 전 대통령은 대통령 경호실 차장보로 근무하다 소장으로 진급하여 1사단장으로 부임했다(1978년). 이 시절 북한이 휴전선 이남으로 파내려온 제3땅굴을 발견했다.
1979년 3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됐으며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됐는데, 그 수사과정에서 12.12사태가 빚어졌다. 1980년 중앙정보부장(서리)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서 10.26사건을 전후하여 조성된 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수습하는데 지도적 역량을 발휘했으며, 이를 계기로 제11대 대통령으로 추대됐다. 이어 새로운 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아 1981년 3월 취임했다.
전 대통령은 7년간 재임하면서 획기적인 물가안정과 사상 최초의 국제수지흑자 전환으로 경제도약의 토대를 쌓았다. 또한 서울올림픽 대회를 유치함으로써 전방위 외교의 기반을 확충하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 때의 단임 실천 약속을 지켜 1988년 2월 퇴임함으로써 40년 헌정사에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물러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퇴임하자마자 정치적 공격을 받아 모두 4년 넘게 유폐생활과 옥고를 치렀으나. 평화적 정권 이양의 전통을 세워 나가기 위한 진통으로 여겨 모든 어려움을 감내했다.
합천군에서는 전두환 대통령이 태어난 이곳을 문화유산으로 길이 보존하기 위해 1983년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전두환 대통령 생가의 새 안내판]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천2길 12-3(내천리 263)의 이 가옥은 대한민국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완산 인왕전씨인 부친(전상우)와 광산김씨인 모친(김점문) 슬하의 7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1931년 1월 18일) 빈한한 가정형편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고학을 하며 어렵게 마쳤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2월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정규4년제의 첫 졸업생으로 임관된(1955년) 이후 공수특전부대의 대대장·여단장 등 지휘관을 차례로 역임했다.
1968년 1.21사태 때에는 청와대의 외곽 경호를 맡고 있는 수도경비사령부의 대대장으로서 사전에 치밀한 대비태세를 갖춤으로써, 북한특공대의 기습을 효과적으로 격퇴하는 공로를 세웠다. 동기생 가운데 맨 처음 장군이 되어(1973년) 대통령 경호실차장보로 근무하다 소장으로 진급하여 1사단장으로 부임했다(1978년). 이 시절 북한이 휴전선 이남으로 파내려온 제3땅굴을 발견했다.
1979년 3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됐으며,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됐는데, 그 수사과정에서 12.12사태가 빚어졌다. 이후 제11대 대통령이 되었고, 새로운 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1981년 3월 취임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 때의 단임 실천 약속에 따라 1988년 2월 퇴임함으로써 40년 헌정사에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물러난 최초의 대통령이 됐다.
이곳은 목조 초가 4동으로 1983년 조성되었다.
#전두환 #합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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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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