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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여성다움-남성다움' 강요하는 두발규제

[차별금지법과 청소년인권 ④] 두발 규제는 차별이다

등록 2020.10.08 13:37수정 2020.10.0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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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에 따라 지켜야 하는 머리카락의 형태를 정해 놓는 것은 학생들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침해하는 동시에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추긴다. ⓒ freeimages

 
두발 규제가 있는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과 남학생의 두발 길이 규정이 다르다. 남학생은 앞머리, 옆머리, 뒷머리 길이가 정해져 있는 전체적으로 짧은 머리로 명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여학생은 전체적인 머리 길이에 대한 규제와 일정 길이가 넘을 경우 묶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남성은 머리가 짧아야 하고, 여성은 일정 정도 머리가 짧진 않지만 단정해야 된다는 '남성다움', '여성다움', '학생다움'이 그대로 반영된 규정이다. 성별에 따라 지켜야 하는 머리카락의 형태를 정해 놓는 것은 학생들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침해하는 동시에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추긴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이든 없는 지역이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염색과 파마를 금지한다. 학교에서 허용되는 머리색은 거의 검은색뿐이며, 곱슬머리도 허용하지 않는다. 학생의 신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허용된 머리카락의 형태는 획일적이다. 일부 염색이나 파마가 허용되는 학교에도 비대칭 커트, 스크래치, 삭발, 탈색, 원색적 염색 등 '과도한 인위적' 머리 스타일 변형이 불가하다고 명시되어 있다. 두발 규제는 학생의 '단정함', '자연스러움'을 근거로 존재하지만, 곱슬거리지 않는 검은 머리는 누구에게만 자연스러운 일일까.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 머리가 하얗고 회색빛이 도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혼자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다. 그럼에도 머리가 자랄 때마다 매번 염색을 할 수는 없어서 뿌리 쪽에 원래의 머리카락 색이 드러나곤 했다. 이를 본 교사들은 친구에게 늘 머리에 대해 묻고 머리색이 왜 그러냐고 혼내기도 했다. 그 친구는 새 교사를 만날 때마다 매번 자신의 머리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다. 그 친구는 두피가 약해 염색을 할 때마다 두피가 많이 상했지만 설명을 덜 하기 위해 염색을 하고 다녔다. 여러 교사들도 그 친구에게 검은색으로 염색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며 염색을 요구했다. 나의 친구 말고도 자신의 겉모습을 감추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머리카락의 형태는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한국인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인종, 장애, 질병, 신체조건 등에 따라서 머리카락의 형태나 외모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획일적인 두발·용의 규제는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학교에서는 인종, 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차별은 학교 곳곳에 여러 형태로 스며들어 있다. 우리에게는 다름이 두드러지거나 주목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고, 다름을 이유로 위축되거나 차별받는 기준은 없어져야 한다.

여학생에게만 더 엄격한 규정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학생부회장과 학생회장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학생회 임원이라는 이유로 선도부원도 되어야 했기에 학생생활지도를 하게 되었다. 선도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모든 학생생활규정을 확인하고 적용하였지만, 벌점을 받는 비율은 여학생의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여학생의 겉모습을 제한하는 규정이 더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벌점 사유를 기록하다 보면 절반 이상이 색조 화장으로 벌점을 받았다. 또한 교사도 다른 규칙보다는 화장을 집중적으로 잡을 것을 선도부에 요구했다. 클렌징티슈, 면봉, 클렌징폼 등 온갖 화장을 지우는 도구를 이용하라고 지시받기도 했다. 서로가 함께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규칙이 색조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학생을 규제하는 생활규정이 많은 동시에, 여학생들은 교사들에게 더 지도하기 쉬운 대상이기도 하다. 교사들은 여학생을 남학생보다 관리하기 수월한 존재로 여긴다. 이는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덕목인 '순종'과도 연결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여학생에게 요구되는 '여성다움'과 '학생다움'은 이중 억압이자 차별이다. 사실 규제를 목표로 한 규칙 자체가 더 약한 사람에게 강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학생의 몸가짐, 행동, 태도를 지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생생활규정은 소수자인 학생에게 더 불리한 조건을 담고 있고, 이는 사회의 위계질서와 차별을 그대로 담고 있다.

차별의 장이 아닌 학교를 위해

수많은 차별이 학교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 학교의 성차별적인 생활규정과 지도는 트렌스젠더 등의 성소수자 학생에게는 '남자/여자다운 용모와 옷' 등 성별 표현과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장애 학생을 분리시키고 배제하기 일쑤이며, 비장애 학생을 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되는 것은 장애 학생에 대한 차별이 일상적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소수자인 학생들에게도 다닐 만한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의 익숙한 차별을 고치고 다양성이 인정받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교육기관에서의 차별을 금지한다. 이는 학교의 두발 규제나 각종 생활지도에도 적용된다. 차별금지법은 기존의 두발 규제가 성차별은 아닌지, 다양한 소수자를 차별하는 획일적 기준은 아니었는지 문제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또한 학교의 일상적인 운영 과정에 존재하던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학교의 일상적인 차별을 드러내고 고쳐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학교 안의 차별들을 다시금 확인하며 지금껏 차별이 담긴 획일적인 문화를 고수해 온 것을 인지하고 반성해야 된다. 학생들의 다양함을 용인하지 않는 학교의 문화는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인 동시에 여타의 차별들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이은선님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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