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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막겠다고 150일 넘게 노숙농성, 왜?

[인터뷰] 이정희 중도유적지킴본부 공동대표 "피라미드 위에 테마파크 짓는 꼴"

등록 2020.10.15 09:05수정 2020.10.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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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시위 하는 이정희 중도유적지지킴본부 공동대표 ⓒ 이정희

 
"이집트 피라미드와 영국 스톤헨지를 없애버리고 그 위에 레고랜드를 지으면 가만히 있겠나. 지금 춘천 중도 유적지 위에 레고랜드를 올리는 것도 다르지 않은 일이다."

지난 5월 17일부터 강원도 춘천시 중도(의암호에 위치한 섬) 입구 춘천대교 앞에서 '레고랜드 건설 반대 및 중도유적 복원'을 외치며 텐트 하나를 펼친 채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이정희씨에게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자 돌아온 답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국민들 다수가 관련 사실을 제대로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면서 "지금 레고랜드 공사는 20% 가까이 진행됐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첫 단추를 바로 끼고 중도 유적지를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공사장 입구에서 노숙농성하는 이 대표는 '어렵지 않냐'라는 질문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괜찮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 150여 일 동안 그의 곁에는 서울과 대전, 광주 등에서 자발적으로 올라온 시민들이 자리 잡았다. 이들 역시 중도 레고랜드 공사현장 입구에 텐트를 펼쳤다. 함께 모인 이들은 '중도유적지킴본부'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었다. 이 대표는 7년 동안 중도유적 지킴이 활동을 한 정철씨와 함께 공동으로 대표직을 맡았다.

이 대표를 비롯해 중도유적지킴본부 회원들이 텐트를 펼친 중도는 최문순 강원도지사의 도정 최대 과제로 평가받는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인 장소다. 춘천 의암호 섬인 중도 129만㎡ 부지에 '레고'를 주제로 놀이공원과 호텔, 워터파크, 아웃렛 등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14일 기준 151일째 '중도살이'를 이어가는 이정희씨를 <오마이뉴스>가 몇차례에 걸쳐 전화로 인터뷰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유적 위에 놀이공원 짓는 미개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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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레고랜드 공사현장 모습 ⓒ 이정희

 
이 대표는 인터뷰 과정에서 지난 12일 기자에게 '문화유적 위에 놀이공원을 짓는 미개한 짓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을 보내왔다. 이 대표는 청원에서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된 놀이공원 사업을, 박근혜 정부는 법까지 바꿔가며 실행했다"면서 "누가 자기 나라 유적 위에 놀이공원을 짓는 미개한 짓을 한단 말인가. 1000여 기의 집터와 유적지는 강원도가 추진하는 플라스틱 레고공원의 흙 밑으로 다시 매립되었고, 160여 기의 고인돌은 매립되거나, 해체돼 '잡석'으로 처리돼 중도 한구석 검은비닐에 덮여 있다"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문화재 보존점수 76점 이상이면 원형보존인 문화유적을 보존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는 더 빨리 개발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 말대로 2011년 8월 강원도청에서 중도유적지를 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시대 묘지와 2000년 전 조성된 마을 유물과 유적 등 선사시대 유적이 대규모로 발견됐다. 개발 집중 구역 20만㎡를 중심으로 한강문화재연구원 등 5개 전문기관이 나서서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고인돌과 집터 등 1400여 기에 달하는 청동기시대 유구(집, 집터, 배수시설 등 유적을 이루고 있는 개개의 장소)가 확인됐다. 당시 발굴된 유물 중에는 비파형 동검과 청동도끼 등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유물도 포함됐다.

이는 평가 점수로도 확인된다. 2014년 7월 문화재청 매장문화재 평가회의에서 중도에 분포한 문화재는 평점 91.77점을 받아 법적으로 '원형보존을 해야 하는 것'으로 평가 받았다. 보통 평점에서 70점대 중반 이상 평가를 받으면 원형보존을 해야 하는 것으로 결론난다. 중도에 매장된 문화재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결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2014년 9월께 레고랜드 공사와 관련해 발견된 유적에 대해 '일부 이전 복원'으로 결정을 내린다. 지석묘 등 고인돌 등을 옮겨서 복원하고, 테마파크 내 유물전시관 등을 건립하는 것으로 조건부 개발허가가 났다. 이후 발굴된 고인돌은 '잡석' 등으로 분류돼 비닐 포대에 쌓여 공사장 한편에 적재됐다.

춘천시, 유적공원 조성사업 불참 선언... 강원도 "법에 따라 사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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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중도에는 멸종위기 2급 삵과 맹꽁이가 서식한다. 이정희 대표가 직접 찍은 야생동물 발자국. ⓒ 이정희


이 대표는 중도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강원도청 앞으로 매일 이동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유를 물으니 "감사원이 춘천레고랜드에 대한 감사를 잘 하라고 압박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 말대로 감사원은 지난 8월 강원도와 레고랜드 시행사인 영국 멀린사 사이에 '임대료 축소 및 이면합의 등의 거래가 있다'는 논란에 따라 감사를 결정했다. 8월 말부터 4주간의 사전감사 후 9월에 본감사를 3주 동안 예정했다. 그러나 광복절 광화문집회 이후 코로나19 확산세가 두드러지자 감사가 무기한 연기됐다.

이에 대해 최문순 지사는 지난 9월 2일 강원도의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레고랜드 테마파크 임대수익 축소 비공개 등과 관련해 강원도의회에 보고 누락시킨 것을 두고 "의회에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심의 절차에 따라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했다"라고 사과했다.

강원도는 2018년 12월 춘천 레고랜드 테마파크 등을 영국회사 멀린이 직접 투자 개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MDA를 맺었다. 당시 도의회는 MDA를 위해 도가 제출한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사업의 강원도 권리 의무 변경 동의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멀린이 강원도에 지불하기로 한 임대료가 최초 알려진 30.8%가 아닌 3%로 대폭 삭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내용이 강원도 의회에 공유되지 않았던 것. 

한편 강원도의 요청을 받아 선사유적지 조성에 참여한다고 밝혔던 춘천시는 지난 9월 25일 돌연 유적공원 조성사업에 불참을 선언했다. 춘천시는 지역 내 시민단체의 반발과 선사유적지 사업과 관련해 발굴허가를 받은 곳이 레고랜드 개발사인 '중도개발공사'인 점을 이유로 댔다.

이 대표는 "중도에 유적이 너무 많아 유적을 건드리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무엇보다 건물 터에 파일을 박아 고정시키는 공법을 문화재청에서 막았다. 춘천시도 레고랜드 사업이 사업성이 없다는 걸 이제야 인지한 것 아니겠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원도청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춘천시가 참여를 하겠다고 말했다 번복한 상황"이라면서 "유적공원과 관련해 사업추진은 중도개발공사가 하고 나중에 (강원)도가 운영하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장문화재법(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춘천 중도뿐 아니라 타지역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를 비롯해 중도유적 지킴이들의 활동이 이어질수록 전국적인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들을 비롯해 사외버외교사절단으로 평가받는 반크, 광고전문가 이제석씨 등이 레고블록이 청동기 유적 등을 파괴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국내 최대 규모의 중도 유적들이 무리한 공사로 인해 파괴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레고랜드 #춘천 #중도 #최문순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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