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33살 꽃게잡이 배를 탔다, 같이 탔던 선원이 죽었다

[나는 배달노동자 ②-1] '배민라이더스' 배달노동자 이병환

등록 2020.10.18 15:00수정 2020.10.18 15:00
0
원고료로 응원
라이더유니온 인터뷰 기획 '나는 배달노동자'는 인권재단사람 정기공모사업 '2020 인권프로젝트-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술작가 2명이 10대~50대 라이더 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편집자말]
방배동 개츠비 

동작대로와 방배로 사이로 난 800미터 남짓한 왕복 2차선 도로. 1978년 이곳에 '장미의 숲'이 열렸다. 지금은 어딘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이름의 이 카페는 당시 서울 최고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였다. '장미의 숲'을 필두로 유행의 첨단을 걷는 비싸고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내가 좀 잘나간다는 젊은이들이 좁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낮에도 누군가와 어깨를 스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방배동 카페 골목'의 탄생이다.

유행엔 언제나 수명이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방배동 카페 골목은 압구정동과 청담동에 그 명성을 서서히 내주었다. 정부의 심야영업 규제가 강화되면서 퇴폐의 대명사로 뉴스에 올랐다. 새천년이 되자 카페 골목에서 카페를 찾기 어려워졌다. 1996년, 아직은 영광의 흔적이 남은 방배동 카페 골목에서 스무 살의 이병환은 첫 장사를 시작했다. 찻값 비싼 방배동식 카페였다. 당시 그는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의 신입생이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운이 좋았다.

"아는 형이 있었는데 가게를 저한테 넘겼어요. 그 형 식구들이 다 해외에 있었거든요. 혼자 있으니까 가족이 그리웠나 봐요. 가게를 빨리 처분하느라 헐값에 판다고 하는데 아깝더라고요. 농담 삼아 내가 한다고 했죠. 그 다음 날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벌어서 갚으라고."

빚이나 다름없는 인수대금은 몇 달 만에 갚았다. 그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때는 거의 현금 장사죠. 카드기가 아예 없는 업소도 있었고. 돈 벌기 좋았죠. IMF 때도 술은 잘 팔렸어요. 사람들이 힘드니까 더 술을 먹더라고요."

카페들은 쇠락해갔어도 그는 가라오케와 유흥주점 등으로 업종을 바꿔가며 큰돈을 모았다. 흘러넘치는 돈과 젊음이 있었다.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나이트클럽에서 돈다발을 뿌리면서도 아까운 줄 몰랐다. '화려한 시절'은 서른한 살 때쯤 갑자기 막을 내렸다.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는 와이프와 결혼 전이었는데, 임신했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요. 책임져야지. 이참에 이 생활을 정리해보기로 했어요. 경찰한테 돈 주면서 이리저리 로비해야 하는 생활도 더는 하기 싫더라고요."

그는 아버지가 되기로 했다. 그 자리에 걸맞은 삶이라는 게 있다고도 믿었다. 그러나 직업을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새 삶을 시작하려고 보니, 지난 11년은 경력도 경험도 될 수 없는 공백의 시간이었다.

"그만뒀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뒤에 딱히 뭘 할 게 없는 거예요. 와이프가 뭘 해보겠다고 한두 번 가게 차려서 날려 먹고.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식당 차렸다가 손해 보고."

버는 것도 순식간이었지만, 잃는 건 더 순식간이었다.

"이제 가진 거라고는 집 하나 남았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단기간에 목돈 버는 일'이 뭐가 있나 찾아봤어요. 신문이고 뭐고 이리저리 뒤져봤죠."

그의 갈급한 구직활동에는 단서가 하나 더 있었다. '몸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 격화된 취업 경쟁에서, 딱히 내세울 경력이 없는 서른 초반의 구직자가 살아남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머리는 다 썩어 있지… 나 혼자 너무 겁을 먹은 건지도 모르지만 몸을 쓰는 '단순노동'으로만 알아보게 되는 거죠. 맨 처음에 조선소도 찾아봤었는데 조선소는 너무 멀더라고요. 이사 가자니 여의치 않고. 그냥 여행 갔다 생각하고 배를 탄 거죠."

살길을 찾아야 했다. 지도처럼 펴든 구인광고를 더듬어 간 길 끝에 영종도가 있었다. 꽃게잡이 배였다. 서른세 살, 이병환은 물살 거친 낯선 바다로 나아갔다.

절벽 같은 파도가 다가왔다

"처음에는 배를 타러 가는 건지도 몰랐어요. 영종도라고 하니까 서울에서 멀지 않잖아요. 집에서 왔다 갔다 할 생각으로 갔는데, 갔더니 배를 타는 거더라고요. (웃음)"

이병환을 태운 배는 한 번 바다로 나가면 어지간히 나쁜 날씨가 아니고서는 항구로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 위에서 먹고 자며 쉴 틈 없이 일하다 가끔 땅을 밟았다.

"6개월쯤 일하고 그만뒀어요. 죽을 고생 했어요. 진짜 죽을 뻔했어요. 파도가 세면 꽃게가 많이 잡히거든요. 위험하니까 보통은 파도가 너무 센 날은 안 잡아요. 욕심내는 선장들은 하죠. 진짜 센 날은 파도 높이가 4미터 5미터씩 하거든요. 그런 파도가 올라오면 절벽이 다가오는 느낌이에요. 그 파도가 한번 빵 치면 갑판이 안 보여요. 저는 물을 겁내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건 무섭더라고요. 집에 가고 싶었죠. 밧줄로 몸을 기둥에 묶어놓고 일했어요."

배는 제법 규모가 있었다. 선원만 스물다섯 명, 반은 이병환과 같은 초보였다. 모두 급하게 목돈이 필요한데 가진 건 몸뿐인 사람들이었다. 바다 위도 엄연한 노동의 현장이고 선원법이나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었지만, 실제로는 법의 힘이 미치기 어려운 곳들이 태반이었다.

어선원들은 '보합제'라는 일종의 성과급제로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먼저, 전체 어획량을 토대로 계산한 수입에서 어선을 운영하는데 든 경비를 제한다. 나머지 금액에서 선주가 50%, 선장과 선원들이 50%를 가져간다. 어획량에 따라 수입이 변하는 것이다.

"나처럼 목돈 벌겠다고 들어온 사람들은 어차피 이번 한 번이라고 생각하니까 목숨 걸고 일하는 거예요."

선주는 애초에 대박일지 쪽박일지 알 수 없는 도박장을 펼쳤다. 선원들은 운이든 노력이든 기를 쓰고 긁어모아 어창을 가득 채웠다. 초짜 말단 선원도 한 달에 600만~700만 원은 받을 수 있어 보였다. 한껏 부풀어 오른 기대는, 일이 끝났을 무렵 반 토막이 났다. 선원이 하나 죽었기 때문이다. 일하다 사고로 죽었으나 보상금은 선주와 선원들이 나누어 내었다. 그 죽음에 대한 보상금도 '경비'로 분류됐다.

"사람이 죽었을 때는 많이 충격이었죠.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더라고요. 배 타러 오는 사람들이 산전수전 겪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워낙 사람이 죽는 일이 잦은 거 같기도 하고."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이것저것 다 해봤어요. '그 고생했는데 이거 못하겠어?' 하면서. 막노동에, 대리기사에, 오토바이 배달에, 투잡 쓰리잡 닥치는 대로 했죠."

배민라이더라는 게 있다고?
 
a

배민 라이더 오토바이 ⓒ 라이더유니온

 
이병환은 음식점의 일당제 기사로 처음 오토바이 배달 일을 시작했다. 배달 일이 적은 날은 대리기사를 병행했다. 둘 다 없으면 건설 현장으로 갔다. 블록을 끼워 맞추듯 하루 시간표를 할 수 있는 모든 일용직 일감으로 채웠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생활비가 더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배달 대행에 뛰어든 건 2015년부터다. '푸드플라이'(2011년 8월 생겨난 배달주문·대행서비스, 2017년 9월 요기요에 흡수됨)를 통해서였다.

"동작 쪽에서 일했어요. 집 근처라서.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12시간 일했어요. 지금이랑 똑같이 건바이건(수행한 콜 당 배달료를 받는 방식)이었죠. 한 달 보름하고 말았는데, 그만둔 이유는 관리하는 쪽에서 배차로 장난질을 해서. 관리자가 자기하고 친한 라이더한테만 좋은 콜을 빼주는 거예요. 화가 나서 나왔죠. 그리고 바로 '배민'으로 갔어요."

이병환이 지칭하는 '배민'은 '배민라이더스'를 의미한다. 2010년 6월 주문 중개 앱 '배달의민족'을 런칭한 '우아한형제들'이 '우아한청년들'이라는 자회사를 세워 2015년 8월 시작한 배달대행 서비스의 이름이다.

'배민라이더스'는 강남, 송파, 서초를 시작으로 현재는 서울 전역과 경기도 일산, 부천, 분당 등 수도권 일대와 대전, 부산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배민라이더스는 초기 월급제 정규직 라이더를 고용하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현재는 배달 건당 보수를 받는 지입제 라이더가 절대적으로 많다.) 이병환은 정규직 라이더를 서포트하는 일당직 라이더로 배민과 처음 만났다.

"배민이 처음 생겼을 때라 지금보다 배달 단가가 낮았어요. 한 건당 2500원 정도. 콜수도 적었고. 그래도 하루 10시간만 쉬지 않고 타면 18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로 벌었어요. 투잡 쓰리잡 할 때 비해서 버는 돈도 비슷하고 일하는 시간도 전체로 따지면 비슷했어요. 대신 하나만 집중하니까 덜 힘들더라고요."

이병환은 라이더 일이 체질에 맞았다. 배달지를 이동했지만, 지리를 금방 익혔다. 길눈이 워낙 좋은 데다가 요령도 금세 터득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쉴 새 없는 노동의 결과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잖아요. 9시쯤 출근해서 배차 잡고, 코스 잡고, 도착시간 맞추고 이걸 반복하는 건데. 저는 방법을 다양하게 써봐요. 오늘은 두 개 픽업해서 배달하고 그다음 오더를 잡고. 어떤 때는 여러 개 잡아서 한꺼번에 픽업해서 한꺼번에 갖다주기도 하고. 어떤 때 어떤 방법이 좋은지 저 나름의 데이터를 만드는 거죠. 일할 때만큼은 다른 생각을 거의 안 해요. 1분이라도 아끼려고 해요. 우리한테 1분이 되게 크거든요.

예를 들어, A까지 지금 도로 상황이면 5분에 갈 거 같아. 중간에 B 들렀다 가도 5분이야. 그러면 2건을 갈 수 있어. 그런데 C콜을 잡으면 1건밖에 못하는 데 5분이야. 그러면 2건 칠 수 있는 데로 가는 거죠. (강제배차가 아닌, 라이더가 스스로 콜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상황)

저 나름의 규칙이 있어요. 내가 오더(콜)를 잡고 손님에게 음식이 도착하기까지 40분 안쪽으로 처리되게 계산해서 움직여요. 음식이 나올 때까지 20분 걸리는 데도 있고 10분 걸리는 데도 있고 5분 걸리는 데도 있는데, 항상 모든 건이 40분 안쪽으로 처리되게 계산해요. 평균적으로 20~30분 사이에 처리해요. 음식점에서 음식 나오는 시간을 다 알고 계산해서 맞추는 거예요. 5분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기다리는 시간에 먼저 받은 거 갖다주고.

오더를 한꺼번에 잡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계산하면서 잡아야 하는 거예요. 이미 잡은 오더는 머릿속에 들어와 있으니까 각각의 오더를 픽업해서 손님께 배달하는 시간을 어림하면서 잡는 거죠. 하나 떨구면서 오더 잡고 또 하나 떨구고 오더 잡고 이런 식이에요. 계속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지도를 그리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많이 했을 때는 한 시간에 12건까지도 배달해봤어요. 괜찮게 벌었어요. 재미도 있었고."


(* 이병환씨 이야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기사] 
들쑥날쑥 수수료... "'배민' 장난질에 놀아난다 싶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총장은 우선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2. 2 [영상] '조국 딸 모욕' 고소당한 일베 "전과 남나요?"
  3. 3 [오마이포토] 류호정 의원 1인시위 바라보는 문재인 대통령
  4. 4 대장과 병장 월급 차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을 거다
  5. 5 조국이 이렇게 반격할 줄은 몰랐을 거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