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결혼'은 먼 풍문, 인도의 굳건한 '카스트제도'

[마초의 잡설 2.0] 마을 원로들 허락 있어야 결혼도 이혼도 가능... 아직도 '명예살인' 허용되는 인도

등록 2020.10.14 17:00수정 2020.10.1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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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면 떠오르는 '카스트(Caste)' 제도.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도의 사회 계층 세습적 신분 제도로 힌두교 창조의 신(神) 브라흐마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머리에서 브라흐민(종교인, 학자), 팔목에서 카스트리야(지도자, 장군), 허벅지에서 바이샤(상인, 농부), 발바닥에서 수드라(노동자)가 나왔다고 한다. 그 외, 여기에도 못 끼는 달리트(불가촉천민·오물 청소부)가 있다.

3000여 년 전부터 내려온 힌두교 율법 책 마누스므리티는 "카스트 제도를 사회 질서와 규칙의 기본으로 인정한다"고 가르친다. 인도인들은 출신 지역과 직업, 성(姓)만으로 카스트 계급을 짐작할 수 있다. 카스트는 대대로 대물림되며, 결혼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는 신분이다.

인도 사회가 교육과 직장, 중산층 증가 등으로 현대적으로 발전하면서 사회적 규범도 빠르게 변해, 힌두교 사회도 '연애 결혼'이 느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도 최상위 브라흐민 남성은 모든 카스트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 카스트리아 남성은 카스트리아와 그 아래 카스트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 바이샤 남성은 바이샤, 수드라 여성과 결혼할 수 있고, 수드라 남성은 수드라 여성과만 결혼할 수 있다.
 

힌두교 전통의상의 신랑, 신부가 사원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 요즘은 머리 장식을 간소한 하는 게 유행이다. ⓒ Fishbone Artwork

 
인도 대법원은 힌두교 혼인법에 인터-카스트(Inter-Caste ☞ 다른 카스트 신분 간) 결혼이 국익이자 통일적 요소라고 판결했고, '인터-카스트 결혼이나 타 종교 간 결혼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 그런 부부를 협박하고 폭력 행위를 한 사람은 누구든지 기소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인도에서 가장 잘나가는 결혼 정보 사이트 중 하나인 Shaadi.com과 bharatmatrimony.com 회원들 자기소개서에는 "Caste No Bar(카스트 무시)", "Inter-Caste"라는 표시가 눈에 자주 띈다. 국내외에서 현대식 고등교육을 받은 남녀들은 인터-카스트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기존 법률(인권보호법 1955년, 인도 형법 등)이 달리트를 학대하는 범죄를 막기 부족하자, 1989년 달리트 카스트와 부족 법이 제정되었다. 많은 달리트 출신 남성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자, 대학교, 직장, 사회 등에서 상위 카스트 여성과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인터-카스트 커플들은 상위 카스트 가족들로부터 협박과 살해 위협을 받는다. 그들은 인터-카스트 결혼을 원하기 때문에 가족과 사회의 박해에 직면한다. 여성은 '상위 카스트' 남성과 성관계를 맺으면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이 '하위 카스트' 남성과, 남성이 '상위 카스트' 여성과 성관계를 맺으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인도에서 타 카스트 간의 잘못된 만남은 '금기'로, 그 경우 두들겨 맞거나 죽을 수도 있는 결과가 따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대부분의 결혼 상대를 부모가 결정한다. 여성은 부모가 정해준 남성과 결혼해야만 한다. 결혼 상대자들은 카스트, 재산, 피부색, 점술 등을 고려한다. 남녀가 자유롭게 웃고 춤추는 사랑은 발리우드(Bollywood) 영화 속뿐이다. 현실 속 결혼은 사랑보다는 카스트·힌두교가 가깝다.


바이샤, 수드라나 달리트 남성 등이 상위 카스트 여성과 사귀거나 혼인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여성 가족, 친인척에게 납치되고, 폭행당하고 처참히 살해된다. 경찰은 하위 카스트 남성을 강간 혐의로 체포해, 고문하거나 여성 가족에게 넘겨주기도 한다. 지난 9월에도 상위 카스트 여성과 타지역으로 도망가 혼인 신고한 달리트 남성이 아내 가족에게 납치돼 살해됐다.

여성도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가족에게 살해당한다. 지역사회에서 명예 살인을 결정하면 부모도 사랑하는 딸을 살해해야 한다. 달리트 남성과 사귄 여대생을 친인척들이 고문하고 살해했다. 언론에 보도돼야 경찰이 나서지만, 살인자를 잡더라도 쉽게 처벌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인도 인구의 70%는 시골에 산다. 아직도 보수적인 인도 북부를 중심으로 카스트와 씨족 평의회는 가장 강력한 법집행기관이다. 2018년 인도 대법원은 이 원로회의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현재도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들은 잔인한 형벌과 명예살인까지 판결한다. 원로회의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지역사회의 규범을 의논, 결정하고 집행해 왔다. 마을 원로들 허락을 받아야 결혼, 이혼도 가능하다.
 

신랑, 신부 가족이 힌두교 식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복하고 있다. 요즘은 현대식으로 신부가 고개를 들어 신랑을 보거나 웃고 말할 수 있다. ⓒ Fishbone Artwork

 
3000여 년이 넘게 지켜온 카스트는 인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힌두교 사회 질서다. 정부나 대도시의 고학력 중산층도 카스트에 갇힌 사회 개혁, 관습적인 종교법 폐지에 목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금도 인터-카스트 결혼을 용납 못하는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이다.

최근 인도 정부는 달리트 남성과 그 상위 카스트 여성이 결혼하면 장려금을 주기 시작 했다. 약 2.5렉 루피(약 4백만 원)까지 받을 수 있는 조건은 공증된 첫 혼인증명서, 신랑 신부의 카스트 신분증, 최종학교 졸업증명, 결혼 자격증 등과 부부공동은행계좌다. 결혼에 반대하는 여성 가족의 지참금 없이도 안정된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이다.

2010년 델리에서 시작된 러브코만도(lovecommandos.org)는 가족과 사회에 협박당하는 인터-카스트 커플들에게 쉼터, 법률 지원, 보호를 제공하는 비영리 자원봉사단체다. 지난 10년간 약 5만여 쌍을 도운 덕분에 늘 카스트와 씨족 평의회, 가족 등으로부터 살해 현상금도 걸리고, 살해 협박까지 받고 있다고 러브 코만도 운영진은 주장한다. 

인도에서는 종교적 근본주의가 세속적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종교와 카스트 원리주의의 이러한 사회악을 근절하는 유일한 길은 자유로운 결혼이다. 강제결혼은 전통이 아니라 범죄로 금지해야 한다. 사랑은 종교, 나이, 인종, 신분 등 모든 것을 초월하니까.

최근 수십 년간 현대적인 교육의 확산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카스트 영향력은 다소 약해졌다. 특히 다른 카스트들과 공동주택에 살고, 달리트 출신 전문직들, 인터-카스트 결혼이 보편화되고 있는 대도시에서는 그렇다. 자유로운 결혼만이 인도에서 신분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젊은 세대가 평등하게 사랑할 수 있도록 카스트 제도와 종교적 근본주의 재정립을 조심스럽게 고민해야 할 때다.

인도 인구 약 13억 8000여 만 명(2020년 현재) 중 80%가 힌두교도다. 그들은 아직도 약 6000여 성(姓)과 이름을 통해 세부적으로 카스트를 구분한다. 그 와중에 약 2억 명에 달하는 달리트는 인도에서 가장 억압받는 최하층 시민들로, 그들을 보호하는 법이 있어도 차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서,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부정을 일깨우는 것이 달리트란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인도 내 인터-카스트 결혼은 약 5%였다.
 

파괴의 신(神) 시바와 그의 아내 여신(女神) 파르바티. 파괴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특별한 신이라 이마 중앙에 또 하나의 눈이 있고, 피부가 녹색이다. ⓒ 구글 갈무리

 
한편, 지구상 최초 인터-카스트 결혼은 아이러니하게도 힌두교 3대 신(神) 중 하나인 시바와 파르바티였다. 시바는 달리트 계급이었고, 파르바티는 왕과 신의 딸이었다.  
#조마초 #마초의 잡설 #인도 #카스트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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