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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는 몰라도 독일이 그러면 안되지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베를린 소녀상과 나치 위안부의 역사

등록 2020.10.18 15:00수정 2020.10.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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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61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월 28일(현지 시각) 베를린시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중심으로 한일 국민과 정부의 외교전이 전개되고 구청의 철거 명령과 소녀상을 세운 코리아협의회의 철거명령 중지 가처분 신청이 이뤄졌다. 미테구는 코리아협의회에 철거 일시 보류로 입장을 바꾸고, 코리아협의회 등에 협상을 제안한 상황이다. 위안부 문제의 주 무대가 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잠시 옮겨간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현재, 독일에는 총 3개의 소녀상이 있다. 2017년 3월 8일 한독 양국 시민단체들에 의해 바이에른주의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에 유럽 최초의 소녀상이 건립됐고, 올해 3월 8일 라인마인 한인교회와 정의기억연대에 의해 프랑크푸르트주의 이 교회 앞에 소녀상이 세워졌다. 이번에 베를린에 세워진 소녀상은 건립 순서로는 세 번째이지만, 독일 공공부지에 세워졌다는 점에서는 독일 최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두 나라를 벗어나 이미 세계적 이슈가 돼 있다. 평화의 소녀상도 한국과 독일뿐 아니라 중국·호주·캐나다·미국에 세워져 있다. 베를린에 소녀상이 등장한 것도 그런 세계적 흐름 속의 현상이다.

독일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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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당국의 철거명령에 대해 항의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다른 나라는 몰라도, 독일에서 세워지는 것과 관련해서는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독일 역시 위안부 문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히틀러 정권 역시 여성을 성노예로 만들어 전쟁 수행에 악용하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2007년 2월 6일 치 <오마이뉴스> 기사 "독일, 나치 위안부 운영 스스로 진상공개(http://bit.ly/V5Die)"에 개략적으로 설명된 것처럼, 위안부 문제는 일본군뿐 아니라 독일군에도 있었다. 나치는 독일 군인뿐 아니라 수용소 노동자들과 관련해서도 위안부 제도를 운영했다. 일부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을 극대화시킬 의도에서였다.

2007년 1월 30일 치 중국 CCTV 인터넷판 보도를 요약·정리한 위 <오마이뉴스> 기사에 아래와 같은 대목들이 있다. 아래에 나오는 '죄수 기방'이란 번역어는 '수용소 위안소'나 '수용소 매춘소'로 바꿀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부터 나치 친위대는 집단수용소 10곳에 죄수 기방(중국측 표현은 囚犯妓院)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그 목적은 수용소 내 남자 노동자들(특히 고급 기술자)의 성적 욕구를 해소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제고한다는 것이었다.

나치 독일은 수용소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국방군·외국노동자·친위대를 위한 별도의 '기방'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경우에는 남자들의 성 욕구를 배출시킴으로써 남자들 간의 동성애 등을 막기 위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일본군국주의의 경우에는 자국뿐 아니라 조선·중국 같은 점령지에서 위안부를 대거 동원했다. 나치독일의 경우에는 주로 자국민들 중에서 그렇게 했다. 독일에서는 수용소에 갇힌 독일인들이 위안부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2018년에 <여성과 역사> 제29권에 실린 정용숙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연구교수의 논문 '나치 국가의 매춘소와 강제 성매매'는 라벤스부르크 수용소 및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출신 위안부들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약 210명으로 추산되는 이들 중 이름이 알려진 이는 174명이다. 독일인이 114명으로 절반이 넘고 폴란드인이 46명, 그 외에 러시아인(6명), 동유럽인, 네덜란드인이 소수 있었다. 유대인 여성은 없었으니, 유대인 남성은 매춘소에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 중에는 나치에 대항한 정치범도 있었고, 유대인 여성과 동성애를 한 독일 여성도 있었다. 동성애자인 줄 알면서도 남성 노동자를 위한 위안부로 동원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가 강제동원됐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어 한다. 나치독일도 위안부들을 '자발적'으로 참여시켰다는 모양새를 갖추고 싶어 했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친위대는 매춘소 여성을 조달하는 데 가능한 한 '자발'의 모양새를 갖추려 애썼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자수용소 수감자 중에서 '자원자'를 모집했다. 이때에 6개월만 일하면 석방시켜준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매춘소에 들어가면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는 소문이 퍼지며 자원자가 줄자, 이전에 매춘부였던 여성들을 골라냈고 '자원'은 무작위 선발과 강제 차출로 바뀌었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나치 독일도 위안부들에게 금전적 대가를 보장했다. 위안소 이용료 2마르크 중에서 0.45마르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들처럼 독일군 위안부들도 대가를 받지 못했다.

이에 관한 내용이 위 논문에 설명돼 있다. 아래의 '코곤'은 오스트리아 유대인으로 부헨발트 수용소에 갇혔던 오이겐 코곤(1903~1937)이다. 가톨릭 수도원에서 성장한 그는 정치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뒤 가톨릭 잡지 편집장을 지내고 반나치 활동을 하다가 게슈타포에 체포됐다.
 
"이용료는 2제국마르크였는데, 친위대가 1.5마르크를 가져가고 5페니히는 여자 감독, 나머지 45페니히가 성매매에 동원된 여성들의 몫이었다. 그마저 당장이 아니라 석방된 다음 지급한다는 약속이었지만, 당연히 실행되지 않았고, 이 돈은 모두 나치 금고로 들어갔다. 코곤은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친위대가 수감자들의 매춘소 이용을 독려하고 강제하였다고 기록했는데, 아마도 이 사업이 친위대의 돈벌이 수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치 독일이 여성을 노예화하는 죄악을 저지른 데는 지도자인 히틀러의 관념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그는 '독일 여성은 건강한 독일 남성을 출산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인식했다. 여성을 남성의 부속품으로 비하하는 이런 인식이 독일군 위안소의 등장에도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2007년에 <독일연구> 제14호에 실린 권형진 건국대 교수의 논문 '나치즘과 젠더'는 히틀러의 여성관을 이렇게 서술한다.
 
"그에 의하면 '한 민족의 생에는 두 세계가 존재하는데, 그 하나는 여성의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남성의 세계다. ··· 여성의 세계는 그녀가 행복하다면, 바로 가족과 그녀의 남편, 그녀의 아이들과 가정이다.' 가정주부·아내·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히틀러의 여성관은 나치 집권 후에 공식화된 젠더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여성이 행복한 경우는 가족·남편·아이·가정과 함께할 때라고 했다. 여성 스스로에 의해 여성이 행복해질 경우는 아예 배제한 것이다.

히틀러뿐 아니라 수많은 남성들이 그 전에나 그때나 그 후에나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대로 세상을 개조하고 싶어 하는 지도자가 그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사회를 그 방향으로 이끌려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히틀러의 생각은 더욱 더 위험했다. 나치 독일에서 위안부 제도가 나오기 쉬웠던 이유 중 하나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피해자들에 의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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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당국의 철거명령에 항의하기 위해 미테구청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우쿨렐레 공연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이 최초로 증언된 것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세)에 의해서였다. 독일군 위안부의 실상이 최초로 증언된 것은 그로부터 1년 전인 1990년 마리아 W(또는 Frau W)로 알려진 인물에 의해서였다.

이처럼 일본군 위안부 문제보다 먼저 부각됐는데도 독일군 위안부 문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일본과 달리 독일은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독일의 전쟁범죄를 드러내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의 증언을 가로막는 사회적 관념 체계에도 적지 않게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성폭력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도리어 비난하는 일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의 위안부 피해자들도 그런 이유로 피해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 W의 사례에서도 그런 어려움이 드러난다.

마리아 W는 제2차 세계대전 뒤 동독 정부로부터 피해자 연금을 받았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나치의 정치적 피해자 자격으로 금전을 받았다. 위안소 '고객'이었던 두 폴란드 남성이 그를 위해 증언을 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두 '고객'의 증언은 허위였다. 원래 마리아 W는 농장요리사였다. 인근의 여관 주인인 반(半)유대인이 아내와 사별하자 그는 농장 요리사보다는 여관 요리사가 낫다는 생각에 그 유대인에게 이성적으로 접근했다. 이 때문에 '민족의 수치'를 범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위안부 피해자가 된 것이다.

그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정치적 피해자인 척 하면서 연금을 받았다. 이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한국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스스로 밝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뒤 마리아 W는 서독으로 이주했다. 이때는 1961년 베를린장벽 축조 이전이었다. 그는 서독에서도 국가배상을 청구했지만, 거부 당했다. 서독에는 그를 위해 허위 증언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서독 정부는 그가 수용소에 간 진짜 이유를 파악했다. 그래서 그가 연금 수령 자격이 없다고 결정했다. 위안부 피해는 피해로 인정해주지 않던 당시의 실상을 반영하는 일이다.

여성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사회적 관념 이외에, 나치 독일의 범죄를 반성하는 독일의 관념 체계도 위안부 문제의 부각을 막는 요인이 됐다. '나치 독일' 하면 흔히 홀로코스트가 연상되고 '홀로코스트' 하면 흔히 유대인이 연상된다. 이로 인해 독일인들의 피해 사실이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는 것에 더해, 위안부의 등장이 남성들의 피해 사실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덜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고 위의 정용숙 논문은 말한다.
 
"남성 수감자의 노동력을 바닥까지 짜내기 위해 성적 인센티브의 도구로 동원된 여성 수감자들은 나치 폭력의 '희생자의 희생자' 다시 말해 이중의 희생자였지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들의 존재는 드러나서는 안 되었다. 이들에 대한 성적 폭력과 착취를 기획하고 조직한 것은 친위대이지만, 이용자는 같은 처지의 남성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성 생존자들은 매춘소의 존재를 내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남성들의 증언과 경험담 발굴은 어려움에 부딪혔으니, 매춘소의 존재가 나치 폭력 피해자들의 '집단 서사'를 더럽혀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 '더러움'을 홀로 뒤집어써야 했던 것은 인간 이하의 수용소 생활과 강요된 성매매로부터 살아남아야 했던 이중의 피해자인 여성들이었다."
 
나치는 남성 군인뿐 아니라 남성 수감자를 위해서도 위안부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 경우, 남성 수감자는 나치로 인한 피해자인 동시에 위안부에 대한 가해자가 된다. 남성 수감자가 위안부 가해자의 이미지를 가질 경우 그가 갖는 피해자의 이미지는 약해진다. 이로 인한 이해관계 역시 위안부 문제의 부각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성매매를 금지한 나치 독일의 엄격한 태도로 인해 위안부 문제가 덜 부각된 측면도 있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나치가 성도덕에서만큼은 깨끗했다는 선입관이 그들의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관심을 가로막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는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의 문제이며 전 세계의 문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느 정도 규명되고 세계적 호응도 얻고 있는 반면, 독일군 위안부 문제는 아직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소녀상 문제의 무대가 되고 있는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독일군 위안부 문제도 활발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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