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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시 낭인' 아들의 대반전, 현수막 걸어야 할까요?

방앗간 사장님, 이장님 도움까지 받아가며 한 운전 연습... 우여곡절 1종 보통 면허 도전기

등록 2020.10.20 09:02수정 2020.10.2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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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1종 보통면허에 도전했다. ⓒ pixabay

 
"엄마는 떨어져도 실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로 해놓고는 왜 소리를 질러요. 엄마의 그런 이중적인 태도에 나는 더 속이 상한다고요."

아들 녀석이 첫 번째 운전면허 시험에서 처참하게 떨어지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우리 모자는 대판 싸웠다.

맞는 말이다. 그때는 아들 녀석이나 나나 그까짓 운전 면허 시험에 그렇게 어이없이, 쉽게 떨어지리라고는 10%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도로 주행에서 핸드 브레이크를 내리지 않고 출발해서 핸들조차 잡아보지 못하고 실격을 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내 아들이 연출할 줄이야.

더구나,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아들 녀석은 필기시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1년 유효 기간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들은 상근 예비역으로 지역에서 군 복무 중이라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지역을 벗어나는 일이 생기면 위에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상관인 중대장은 아들 녀석이 운전면허를 따는 일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오는 상근 예비역들의 일탈 행위의 대부분은 운전으로 인한 사고였다. 중대장은 아들의 무면허를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들은 제대하면 바로 복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정상, 군 복무 중이지만 주말을 이용해서라도 운전면허를 꼭 취득해야 했다. 평일 시험은 꿈도 못 꾸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토요일 시험에만 응시해야 했다. 중대장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다시 시험에 응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탈락, 탈락, 또 탈락 

1년 전, 학교 근처 운전 학원에서 깔끔하게 면허를 따라고 교습비를 보내줬더니 아들 녀석은 도로 주행 시험을 미루다가 입대 날을 받아버렸다.

도로 주행만 남겨 놓은 상황이라 아들은 여유를 부렸다. 첫 휴가의 3일을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더니 휴가 마지막 날에서야 시험을 보러 가겠다는 것이었다. 휴가 첫날에 시험을 보았다가 떨어지면 마지막 날에 다시 볼 수 있는데 그 기회를 가볍게 차 버린 것에 더 속이 상했다. 아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과 대책 없는 여유로움에 화가 치밀었다. 우리 모자는 잔소리 폭탄과 반항심을 고성으로 주고받았다.

그렇게 허망하게 면허 시험에 떨어진 아들 녀석과 예산에 있는 운전 면허 시험장에 함께 가는 건 그 후로 다섯 번이나 계속되었다.

다시 학원 수강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엄마인 난 온 동네의 인맥을 동원해서 1톤 트럭을 빌리러 다녔다. 한적한 주차장이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전 연습을 시켰다.

아들은 처음 한두 번 불합격 했을 때나 곤두박질친 자존감에 괴로워했지만 나중에는 허탈감조차 씹어 먹어버렸다. 불합격에도 면역력이 생기는지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엄마인 내 눈치도 보지 않고 예산 행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오히려 1톤 트럭을 흔쾌히 빌려준 동네의 인맥들이 조심스러워하며 합격 여부를 묻지 않는 에티켓을 발휘해 주었다.

동행하면서 지켜본 운전면허 시험장의 풍경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1톤 트럭으로 시험을 보는 1종 보통 면허 시험의 경우 합격률이 2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미 도로에서 날고 기는 운전 실력을 발휘하다가 실수로 면허가 취소되어 다시 시험을 보러온 것 같은 노련한 수험생들도 불합격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집에 1톤 트럭이 있어서 1주일 동안 아들을 스파르타 훈련을 시켜서 시험장에 데리고 왔다고 내게 자랑질을 했던 어떤 아빠가 있었다. 그의 아들도 죽음의 직각 주차 코스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변변치 못한 운전 실력을 가지고 있는 나를 보고 자라서, 학원에만 믿고 맡긴 내 아들이 죽음의 직각 주차 코스를 쉽게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불합격의 면역력은 아들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겐 합리화의 명분까지 덧씌워졌다.

운전 면허 하나엔 온 마을이 필요하다

군대에서 두 번째 휴가 날을 받은 아들은 휴가의 첫째 날과 마지막 날을 운전면허 시험 날짜로 미리 받아 놓았다.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예산 운전 면허 시험장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유로웠다.

우리 모자의 예산 행이 잦아지는 동안 합격에 대한 기대치는 바닥을 쳤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 되면 '운시 낭인'이니 '운시 폐인'(운전면허 시험 낭인, 폐인) 소리를 들어도 시원치 않을 수험생 아들의 표정도 갈수록 뻔뻔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변이었다. 아들 녀석이 죽음의 직각 주차 코스를 무사히 넘더니 도로주행까지 합격한 것이었다. 합격에 대한 기대를 낮춘 것이 합격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든 것 같았다. 어쨌든, 아들은 운전면허 시험 4전5기만에 힘겹게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그깟 운전면허 시험을 수능시험보다도 어렵게 통과했다.

"현수막 몇 개 걸까?"

아들의 운전 연습을 도와준 방앗간 강 사장님은 이런 농담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거봐, 진작에 나한테 배웠으면 한 번에 붙는 건디 그 고생을 했잖여..... "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합격 전 마지막 연습을 도와준 스쿨버스 기사 출신의 천당리 이장님도 한 마디를 보탰다. 파란만장했던 아들의 운전면허증은 마을에서 따준 것이었다.

"엄마, 사실은 학원에서도 두 번 떨어졌어. 엄밀하게 말하면 7전8기야"

면허증을 손에 쥔 아들은 이런 고백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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