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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육지 간첩과 달라'... 제주도 간첩 4명을 만나다

[피해자 구술, 수상한 섬 수상한 이야기 2] 첫 만남

등록 2020.11.04 08:28수정 2020.11.0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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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에는 누구든 간첩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제주에는 공권력의 고문과 폭력에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들이 많다. 제주에 사는 조작간첩 피해자의 피해 사실과 그들의 삶과 기억을 기록해 현대사의 비극에 직면하고 이를 통해 파괴된 공동체와 인권의 회복을 돕고자 한다. [편집자말]
강희철씨와 이장형씨의 소식을 듣고 재심을 결심한 강광보씨는 본격적으로 재심을 준비했다. 그의 재심 준비는 피해자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됐다. 

강광보씨는 제주의 조작간첩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내어 만나고, 설득했다. 몇 년간 제주 지역을 돌아다니며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함께 진실을 찾자고 설득했다. 그가 그렇게 찾아낸 피해자들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제주시 일도이동에 위치한 오래된 다방, 양지다방이었다.

강광보씨가 어렵게 피해자들을 설득해 그 자리에 나오기는 했지만 이들은 의심 가득한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마주 앉아 있는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떤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만남이라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그들의 의심은 수사 과정과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겪은 불신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나 간첩이라는 특별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낯선 이에게 선뜻 자신이 간첩으로 조작된 억울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때, 몇 명이나 그 이야기에 공감해 줄 수 있을까? 이미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오래전부터 여러 번 경험했던 이들로서는 자신의 억울함을 꺼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희철, 강광보라는 같은 피해를 경험한 사람이 보증을 했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제주의 특수한 사정
 

바닷가에 모여 잠시 쉬고 있는 피해자들. 왼쪽부터 강희철, 김평강, 강광보 ⓒ 한톨

 
나 역시 이들을 육지에서 조작된 간첩과 같은 피해자로 생각하고 만났다. 제주 피해자들이 육지 피해자들과 달리 4.3, 밀항, 조총련과 같은 제주의 특수한 사정 속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날 이후 제주 피해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오래전부터 육지 권력자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수많은 제주인들이 고통당해야만 했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날 모인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모두 4명, 이들의 징역형을 합하면 모두 30년쯤 되었다. 이들은 곤을, 화북, 삼양 등 가까운 마을 사람들로 모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보통 조작간첩 피해자들과의 첫 만남에서는 서로 인사를 주고 받고 '나는 이러이러한 일로 억울한 사람이다' 정도만을 듣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다 해도 그 자리에서 당장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첫 만남에서는 마음을 다해 진실규명을 함께 하겠다고 다짐하고, 국가기록원이나 검찰로부터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을 신청해 받는 방법을 공유했다. 그 후에 어떤 점이 억울한지, 재심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증거나 증인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모인 분 중 한 분이던 김평강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열었다.


막상 재심을 하려면 육지나 일본 같은 곳에 사는 증인이나 증거를 찾아 여기저기 다녀야 할 텐데 나이 든 자신들이 그런 일을 하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특히 김평강씨의 경우 불법체류로 일본에서 추방된 상태라 10년간 일본 재입국이 금지되어 있는 상태였다. 김평강씨 사건이 대부분 일본의 교포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증인이나 증거를 찾으러 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증인과 증거를 찾는 일을 자신이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재심 재판을 하려면 재판 비용이 들어갈 텐데 변변한 돈벌이가 없는 자신들은 그러한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모인 김평강, 허간회는 70대 후반으로 직장이 없었고, 강광보는 70대 초반으로 버스 회사 주차장 야간경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자신의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니 적게는 수백만 원에 이르는 보통의 재판 비용을 생각하면 재심을 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진실규명을 시작하다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이야기하는 김평강 ⓒ 한톨

 
나는 그런 것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국가폭력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단체를 만든 것이고, 억울한 피해자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체의 힘으로 하겠으니 염려 마시라 말씀드렸다. 한편으로 재판의 경우 억울한 점이 확인되면, 그래서 재심을 해야겠다고 판단되면, 일단 무료 변론해줄 변호사를 찾아보겠으니 그 점도 염려마시라 전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물었다. 자신들 사건을 맡았다가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해도 원망하지 않을테니 부담 갖지 말라는 것이었다.

대신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 손을 먼저 놓지만 않으시면, 제가 먼저 선생님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조작 간첩에 대한 진실규명이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2004년 12월 국정원 진실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2006년 4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으로 위원회를 옮겨 2010년 12월까지 과거사 조사를 계속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된 뒤에도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피해를 밝혀내는 일을 꾸준히 해왔고 지금은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인 '지금 여기에'에서 일하며 국가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진실을 규명하고 이들의 사법적 회복을 돕고 있다.
#수상한집 #평화박물관 #지금여기에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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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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