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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무서운 과거... 편지 한 통 남기고 떠난 아들

[피해자 구술, 수상한 섬 수상한 이야기 3] 피해자 오경대

등록 2020.11.07 11:36수정 2020.11.0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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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에는 누구든 간첩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제주에는 공권력의 고문과 폭력에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들이 많다. 제주에 사는 조작간첩 피해자의 피해 사실과 그들의 삶과 기억을 기록해 현대사의 비극에 직면하고 이를 통해 파괴된 공동체와 인권의 회복을 돕고자 한다. [편집자말]
육지에서 많은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를 만나고 그들의 아픔을 들었지만 제주에서 간첩으로 조작된 분들은 육지의 조작 간첩과는 또 달랐다. 앞서 말했듯이 처음 제주의 피해자들을 만났을 때 몰랐던 사실이 있다. 제주의 조작간첩이 4.3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상처의 깊이가 육지의 어느 것보다 크고 심각하다는 사실을 깊이 알지 못했다.

제주의 소위 '빨갱이' 역사는 육지의 그것보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것은 육지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적대와 학살의 반복이었다. 그런 이유로 간첩으로 몰린 사람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꺼내는 데 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내가 참고, 나만 손해보고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 억울함이 자신의 삶을 넘어서 가족, 공동체의 삶과 미래를 가로막는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오경대씨의 재심 개시 결정문. 그는 아들의 문제로 재심을 결정했다고 한다. ⓒ 변상철

 
오경대의 구술 = "마음을 어떻게 달래면서 살았느냐. 정말 어떻게 표현을 하면은 정말 내 마음을 순수하게 얘기할 수 있는가. 그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흥분되는데. 옛날 말이 있어요 시집가면 귀먹어 삼 년 눈멀어 삼 년. 말 모르게 삼 년 이렇게 산다는데. 내가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하고 바른말을 해도 그걸 이해해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당신은 간첩으로 15년간 감옥살이 산 사람이다. 나를 아는 사람도 내 과거를 알면 다 이렇게 낙인을 찍어 버렸어요. 그렇게 낙인이 돼버린 것을 어떻게 지울 수 있느냐 말이야. 저는 나름대로 시간이 흐르고 많이 세월이 흐르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이 사람들이 이해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지냈어요. 그러면서 81년 8월 15일 출소해서 지금까지 내가 태어난 고향 그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재심이란 이야기는 저는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재심이 있다, 없다 이런 것도 몰랐어요. 관심 자체가 없었다고 보면 맞을 거예요. 그런 내가 재심을 왜 고민하게 됐느냐면 우리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이 2016년도에 자기 가족을 데리고 이탈리아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민을 가기 전까지는 한마디 안 하던 아들이 이탈리아로 이민 간 다음에 이메일로 긴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 내용이 뭐였느냐 하면 이런 내용의 편지였어요.

'늙은 아버지를 두고 떠나는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나는 고등학교 때 경찰대학을 꿈꾸었는데 아버지의 과거사로 중단되고 그 이후에 공무원 생활을 하려고 해도 그것도 안 되고 또 장사를 해도 일정 기간은 잘 되는데 경쟁자가 나타나면 아버지 과거를 들추면서 이렇게 하니까 도저히 한국 땅에선 생활 할 수 없습니다. 떠나온 것을 너무 섭섭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들의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 부모로서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얼마 후에 모슬포에 살고 있는 임문준씨라는 분을 찾아갔습니다. 임문준씨는 대전교도소에 같이 있었던 사람이었어요. 내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도 재심을 해서 2012년에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 동생에게 아들 이야기를 했더니 '형님 얘기를 들어보니까 재심을 한 번 신청하십시오' 하길래 '내가 이북까지 갔다 왔는데 그게 어떻게 되겠느냐' 했더니 '그래도 한 번 해보십시오' 하길래 그때는 안 하겠다고 손사래를 쳤어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서울에 있는 박상원씨라고 대구에서 같이 복역했던 조작간첩 피해자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박상원이 '서울의 변 국장님이란 분이 찾아갈 거니까 한 번 얘기를 해보십시오' 하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변 국장이 찾아왔어요. 변 국장에게 사실 얘기를 하니까 억울한 점이 있다면 한번 확인해 보십시다 해가지고 같이 조사받고 고문 받은 가족들 찾아다니고 증인 찾아다니고 해서 재심을 신청하게 되었죠. 작년(2019년) 10월 31일 1차 법원에 갔다 오고 올해 4월 21일 날인가... 그때 다시 한번 가 가지고 재판 중에 있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재심이란
  

오경대씨 집에 모여있는 강광보, 김평강 등 피해자. 함께 있어 용기가 난다는 그들이다. ⓒ 변상철

 
그들의 재심에 용기를 북돋운 것은 다름 아닌 같은 일을 겪은 피해자들이다. 물론 오경대씨처럼 한 번의 설득이 아니라 여러 번의 설득과 권유가 있어야 결심할 수 있다. 국가폭력은 그런 것이다. 간첩으로 만들어지고 조작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국가기관과 사회에 대한 불신은 몸속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 같은 제3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허황된 약속이나 말이 아닌, 격려와 지지, 공감뿐이라는 것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강광보의 구술 = "내가 86년도에 광주교도소 가니까 나보다 6개월 먼저 들어온 분이 있더라고. 그분이 일본에 친척이 있고 (나중에 대구교도소 살았는데) 제주도로 전화 왔더라고. 나하고 변 국장님하고 찾아갔지. (그분이) 재심을 어떻게 하느냐 물어봐서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고 우리가 함께 돕겠다 했지. 우리가 재심을 할 수 있는 걸 몰랐냐고 하니 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왜 그럼 지금까지 재심을 해보지 않고 가만히 있었느냐고 하니까 나는 저기(북)에 납치돼 갔다 와서 어렵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자기 발로 간 것도 아니고 납치돼서 갔다가 돌아온 것인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했지. 스스로 간 것이 아니고 신변에 위협을 느껴서 끌려간 것이니 억울한 건 풀자고 했지. 그래서 재심하게 됐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도 재심을 안 하고 있었을 거예요." 


강광보씨의 말처럼 조작간첩 피해자들에게 재심이란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억울함도 있지만 재심의 결과가 진실 규명, 무죄라는 결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길고 어려운 재심 과정 동안 가족은 과거에 경험했던 수사와 재판을 다시 겪어야 하고, 또 이웃들에게 자신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드러내야 한다. 이런 고통의 시간을 다시 견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김종민 전 4.3 전문위원 = "우리나라는 3심제입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이 너도나도 재심 청구하는 걸 받아주면 3심제가 아니라 4심제가 되는 셈이지요. 그만큼 재심은 어려운 겁니다. 요즘엔 인권 변호사들이 계셔서 억울한 사건들에 대한 재심 청구를 맡고 있지만 오래된 사건을 피해자 개인이 변호사를 선임해 재심 청구하는 것은 어렵지요."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형법상 '간첩' 죄가 살아있다. ⓒ 변상철

 
간첩, 대한민국에서 무서운 단어로 둘째가면 서럽다고 할 단어다. 그 무서운 간첩이 내가 아는 가족이나 이웃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았는가. 지금 어느 순간 어느 길에서 '간첩'이라는 전과를 가지고 길을 걷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또 '간첩' 전과자의 가족과 친척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그런 간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는 앞으로 계속 고민하며 살펴볼 것이다.

* 오경대씨의 재심 재판이 진행중입니다. 11월 20일 서울지법 320호 오후 2시 1심 선고가 내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2004년 12월 국정원 진실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2006년 4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으로 위원회를 옮겨 2010년 12월까지 과거사 조사를 계속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해체된 뒤에도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피해를 밝혀내는 일을 꾸준히 해왔고 지금은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단체인 '지금 여기에'에서 일하며 국가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진실을 규명하고 이들의 사법적 회복을 돕고 있다.
#수상한집 #평화박물관 #지금여기에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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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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