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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형과 편지 주고 받으며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56회] 동생은 힘들여 쓴 저술이 마무리 되면 형에게 초고를 보내어 의견을 들었다

등록 2020.10.25 16:11수정 2020.10.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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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초상화. ⓒ 이재형

 
귀양살이 하는 유배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많은 글을 쓰느라 몸이 무척 쇠약해졌다. 그런 중에도 흑산도에 유배 중인 둘째 형과 인편을 통해 어렵살이 주고받는 편지는 큰 위안이었다.

동생은 힘들여 쓴 저술이 마무리 되면 형에게 초고를 보내어 의견을 들었다. 형도 『자산어보(玆山魚譜)』가 완성되자 동생의 견해를 물었다.

편지는 형제가 공히 석학답게 학문과 저술 관련한 내용이지만 간혹 평범한 일상의 사연도 담긴다. 1811년 겨울에 「둘째형님께 글월 올립니다」에는 "개고기 삶아먹는 법"이란 내용이 들어있다.

형은 완고한 유학자 신분이어서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 같으나 동생은 자유분방한 실학자여서 구체적 요리방법까지 제시한다. 편지 중 앞뒷 부분은 생략하고 '개고기' 부문을 소개한다.
 

한국최초의 어류학자 정약전 선생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선생은 홍어의 습성과 요리에 대해서 그림을 그리듯 소세하게 기록했다. 흑산도에는 자산어보 문화관이 있어 선생의 삶의 궤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김대호

 
개고기 삶아먹는 법

보내주신 편지에서 "짐승의 고기는 전혀 먹지 못한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도(道)라고 하겠습니까. 섬 안에 산개(山犬)가 천 마리 백 마리 뿐이 아닐 텐데, 제가 그곳에 있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결코 빠뜨리지 않겠습니다. 섬 안에 활이나 화살, 총이나 탄환이 없다고 해도 그물이나 덫을 설치할 수야 없겠습니까. 이곳에 어떤 사람이 하나 있는데, 개잡는 기술이 뛰어납니다.

그 방법은 이렇습니다. 먹이통 하나는 만드는 데 그 둘레는 개의 입이 들어갈 만하게 하고 깊이는 개의 머리가 빠질 만하게 만든 다음 그 통(桶) 안의 사방 가장자리에는 두루 쇠낫을 꼽는데 그 모양이 송곳처럼 곧아야지 낚시바늘처럼 굽어서는 안 됩니다. 그 통의 밑바닥에는 뼈다귀를 묶어놓아도 되고 밥이나 죽 모두 미끼로 할 수 있습니다.

그 낫은 박힌 부분은 위로 가게 하고 날의 끝은 통의 아래에 있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개가 주둥이를 넣기는 수월해도 주둥이를 꺼내기는 거북합니다. 또 개가 이미 미끼를 물면 그 주둥이가 불룩하게 커져서 사면(四面)으로 찔리기 때문에 끝내는 걸리게 되어 공손히 엎드려 꼬리만 흔들 수밖에 없습니다.


5일마다 한 마리를 삶으면 하루 이틀쯤이야 생선 찌개를 먹는다 해도 어찌 기운을 잃는 데까지야 이르겠습니까. 1년 365일에 52마리의 개를 삶으면 충분히 고기를 계속 먹을 수가 있습니다. 하늘이 흑산도를 형님의 탕목읍(湯沐邑)으로 만들어 주어 고기를 먹고 부귀를 누리게 하였는데도 오히려 고달픔과 괴로움을 스스로 택하다니, 역시 사정에 어두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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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사라마을 정약전 유배지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가장 잘 사는 사리 마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자산어보를 기록하다. ⓒ 이재언

 
들깨 한 말을 이 편에 부쳐 드리니 볶아서 가루로 만드십시오.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 또 삶은 법을 말씀드리면, 우선 티끌이 묻지 않도록 달아매서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씻어도 그 나머지는 절대로 씻지 말고 곧장 가마솥 속에 넣어서 바로 맑은 물로 삶습니다.

그러고는 일단 꺼내놓고 식초ㆍ 장ㆍ기름ㆍ파로 양념을 하여 더러는 다시 볶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삶는데 이렇게 해야 훌륭한 맛이 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의 개고기 요리법입니다. (주석 1)


주석
1> 『다산문학선집』, 338~339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다산 #정약용평전 #정약용 #다산정약용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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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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