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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 제자 '다산학단' 실용학문 가르쳐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59회] 선비로서 살아가는 방법의 두 가지 기본조건 강조해

등록 2020.10.28 17:46수정 2020.10.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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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초상화. ⓒ 이재형

 
학문연구와 제자교육은 학자의 본분이다. 고금동서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약용은 본디 학자였다.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학자의 본분을 지켜나갔다. 강진의 밥집 우거 때에는 하급 관리들의 자제들이었는데 다산초당으로 옮긴 뒤에는 외가쪽 집안 자제들을 중심으로 가르쳤다.

그에게는 '18'이란 숫자와 묘한 인연이 있었다. 강진에서 18년을 귀양살이 하고, 해배되어 18년을 고향 마재에서 살았다. 그런데 다산초당에서 가르친 제자가 18명이었다. 나중에 세 사람이 추가되었지만 기본은 18명이다.

초당을 빌려준 윤단의 손자들이 6명이고 나머지는 이 지역 선비들의 자제들이다. 이들이 '다산학단(茶山學団)'을 이루어, 배우면서 스승의 학술연구와 저술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해배 뒤에 스승이 귀향했을 때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학습을 계속하였다. 초기의 제자 명단이다.

이유회ㆍ이강회ㆍ정학가ㆍ정학포ㆍ윤종문ㆍ윤종영ㆍ정수칠ㆍ이기록ㆍ윤종기ㆍ윤종벽ㆍ윤자동ㆍ윤아동ㆍ윤종심ㆍ윤종두ㆍ이택규ㆍ이덕운ㆍ윤종삼ㆍ윤종진.

스승과 제자들은 1818년 8월 그믐날 다신계(茶信契)를 조직하였다. 차를 마시며 신의를 지켜 학문을 계속하자는 모임이었다. 「다산계 절목(節目)」에는 제자들의 이름과 실천할 내용이 적혀 있다.

ㆍ보임에 있는 논은 이덕운이 관리하고, 백도에 있는 논은 이문백이 관리하여, 매년 추수되는 곡식은 봄에 돈으로 만든다.
ㆍ매년 청명 한식일에 계원들은 다산에 모여 계사를 치르고, 출제된 운(韻)에 따라 연명으로 지은 시를 편지를 만들어 유산(다산의 아들)에게 보내라. 이렇듯 모이는 날에 생선값 1냥은 계전(契錢)에서 지불하고, 양식할 쌀 1되는 각자 가져온다.
ㆍ곡우에 엽차를 따서 섞어 1근을 만들고, 입하에 늦차를 따서 떡차 2근을 만든다. 이 엽차 1근과 떡차 2근을 시와 편지와 함께 부친다.
ㆍ국화꽃 필 때 계원들은 다산에 모여 계사를 치르고 운자를 놓고 시를 짓되, 연명으로 서장을 만들어 유산에게 보내라. 이렇듯 모이는 날에 생선값 1냥은 계전(契錢)에서 지불하고, 양식할 쌀 1되는 각자 가져온다.
ㆍ상강날 햇무명 한 필을 사되, 그 굵기와 가늘기는 살펴서, 그 해의 곡식이 많으면 가는 피륙을 사고, 곡식이 적으면 굵은 피륙을 사라. 백로에 딴 비자(榧子) 5되와 무명을 함께 유산에게 보낸다. 비자는 윤종문과 윤종영 두 사람이 해마다 올릴 것이며, 이 두 사람에게는 차와 부역을 면제시켜 준다.
ㆍ차따기의 부역은 사람마다 수효를 갈라서 스스로 갖추되, 스스로 갖추지 못하는 사람은 돈 5푼을 신동에게 주어 귤동마을 어린이들을 고용하여 차따기의 수효를 채우게 한다.
ㆍ동암(東菴) 지붕을 잇는 이엉값 한 냥은 입동날 곗돈에서 지불케 하라. 귤동의 계원 여섯 사람으로 하여금 이엉 엮기를 감독하여 반드시 동지(冬至) 전에 새로 덮는다. 만일 동지가 지나면 이듬해 봄의 차 부역은 6인이 전담하게 하며, 다른 계원은 이를 거들지 않는다.
ㆍ이상의 여러 부역 비용 지불한 후에도 만약에 남는 돈이 있거든 착실한 계원으로 하여금 이자를 증식하도록 하되, 한 사람에 2냥을 넘지 못하며, 15냥이 차거나 혹 20냥이 되면 곧 논을 사서 곗돈에 붙이고 그 돈의 이자 증식은 20냥을 넘지 못한다. (주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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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정약용은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제자들과 600여권의 책을 편찬했다. ⓒ 강대호

 
제자에는 초기의 18명 외에 나중에 사위가 된 윤창모와 황상 그리고 이시헌 등이 있었다. 스승은 제자들의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전통유학의 공리공담이 아니라 실용적인 학문을 가르치고 각자 생업으로 품격있는 생활기반을 갖추도록 하였다. 「제자에게 주는 글」에 그의 교육철학이 보인다.

지금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의 절개도 없으면서 몸을 누추한 오막살이에 감추고, 명아주나 비름의 껍질로 배를 채우며, 부모와 처자식을 헐벗어 얼고 굶주리게 하며, 벗이 찾아와도 술 한 잔 권할 수 없으며, 명절 때에도 처마 끝에 걸려 있는 고기는 보이지 않고, 오직 공적이나 사적으로 빚독촉하는 사람들만 대문을 두드리며 꾸짖고 있으니, 이는 세상에서 가장 졸렬한 것으로 지혜로운 선비는 하지 않을 일이다. (주석 8)


조선시대 선비들 중에는 노동을 천시하면서 학문이나 과거시험의 구실 아래 놀고먹는 유한계층이 많았다. 정약용은 이를 경계하였다.

정약용이 제자들에게 훈계하던 기본입장은 생업으로 품격 있는 생활기반을 확보하고 독서로 인격의 향상을 추구하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선비로서 살아가는 방법의 두 가지 기본조건임을 강조하는 데 있다. 아무 대책 없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단지 독서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당시 조선사회의 선비들이 보여준 생활태도를 선비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라 역설한 것이다. 이 점은 교육자로서 현실을 중시하는 실학 정신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주석 9)


주석
7> 윤동환, 앞의 책, 338~339쪽.
8> 금장태, 앞의 책, 228쪽.
9> 과학원 철학연구소 편, 『정다산연구』, 147쪽, 1976.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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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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