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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계열 학자와 인성 논쟁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 / 62회] 정약용은 이재의와 논쟁을 시작하면서 경전연구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하였다

등록 2020.10.31 13:59수정 2020.10.3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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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 강진군청 홈페이지 캡처

 
1814년 3월 4일 뜬금없이 한 선비가 정약용을 찾아왔다.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 1772~1839)였다. 서울 출생으로 아들이 1812년 전라도 영암군수로 발령받자 이듬해 여름 영암으로 거처를 옮겨 살다가 정약용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노론 계열인 이재의가 남인 출신의 유배지를 적소로 찾아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사고가 트인 선비였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귀양이 풀려 고향 마재로 돌아온 뒤에까지 20여 년 동안 이어졌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만덕사를 거닐며 토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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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정약용은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제자들과 600여권의 책을 편찬했다. ⓒ 강대호

 
당시 정약용은 『맹자요의』를 저술하고 있을 즈음이어서 주제가 맹자의 사단(四端)과 인성의 문제로 모아졌다.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맹자』의 사단(四端)과 성(性)의 문제로 집중되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문산이 한원진의 연원(淵源)인 성담 송환기(性潭 宋煥箕, 1728~1807)의 제자이면서 또 일찍 도암 이재(陶庵 李縡, 1680~1746)의 학통(學統)인 근재 박윤원(近齋 朴胤源)에게 배우기도 한 노론 가문의 이름난 선비였다는 점에서, 그리도 당색(黨色)이나 학문적 계파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문인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이 역사적 만남이 가능했다." (주석 2)

정약용은 모처럼 시골 벽지에서 만난 학인이어서 그와 토론하는 것을 즐겨하였다. 더욱이 『맹자』의 '사단'은 여전히 탐구의 화두가 되고 있었다.

이때 정약용은 경전해석을 통해 밝혀 낸 자신의 독자적 이론으로 사덕(四德), (仁義禮智)이 내재하는 본성이 아니라 실천하여 획득되는 결과임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사단의 '단'이 내재하는 덕이 드러나는 끝머리인 단서(端緖)가 아니라 덕의 실현을 향하여 출발하는 첫머리인 단초(端初)임을 내세워 주자의 해석과 상반된 견해를 유감없이 토로하였다.

바로 이 점은 이재의가 옹호하는 성리학의 입장과 예리하게 충돌하는 것이었다. 비록 이재의는 정약용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자학의 입장을 고수하였지만, 학문을 대하는 정약용의 진지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주석 3)


두 사람은 향후 이 화두를 갖고 서한을 주고받으며 10여 차례에 걸쳐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신뢰가 쌓였다. 정약용이 귀향 뒤인 1831년 가을에 쓴 「문산 이진사가 옴을 기뻐함」이다.

 나루정자 늙은 버드나무에 철 늦은 매미 소리
 매양 석양무렵이면 그대 오기를 기다린다
 좋은 달 이미 지났으니 비 온들 무슨 지장
 손님 수레 갓 멈췄으니 날 개기를 안 바란다
 몸은 짧은 촛불같아 불똥만 남았고
 저서는 두다만 바둑처럼 판이 안 끝난 셈. (주석 4)


정약용은 이재의와 논쟁을 시작하면서 경전연구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하였다. 이것은 처음부터 붓을 놓을 때까지 그가 지켜온 학문연구의 준칙이기도 하다. 1차 서한의 앞 부문이다.

나는 경전을 연구할 때 오직 옳은 것만 찾고, 옳은 것만 지키려고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해서 지키고자 할 때 언제나 널리 고증하고 지력을 다해 정밀히 검토하는데, 마음가짐을 티없는 거울과 평평한 저울같이 유지하면서 송사(訟事)에 단안을 내리듯이 그 본의(本義)를 파악해낸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비로소 견해를 세우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거라고 추측하는 정도의 견해를 가지고 누가 주장했다고 해서 덩달아 낌새만 보고 주장하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정론(定論)을 위반하겠는가? 내 생각으로는 당신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의견이 합치되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살펴본 바가 정말 백(白)이기 때문에 백(白)이라고 하는 것이지 마음속으로는 흑(黑)이라고 인정하면서 억지로 백(白)이라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신의 생각이 이렇기만 하다면, 나와도 생각이 같은 것이다.

마음의 자세가 같은데 견해가 다른 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다만 이 문제는 학문의 두뇌에 관계된 사항이어서 다시 한번 당신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대로 합치되지 못한다면, 입을 꽉 다물고 이번 봄을 보낼 것이요, 더 이상 옛 사람들이 하던 것처럼 두 번 세 번이고 다시 거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뒤끝이 좋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주석 5)


주석
2> 정약용ㆍ이재의 저, 실시학사경학연구회 편역, 『다산과 문산의 인성논쟁』, 「해제」, 17쪽, 한길사, 1996.
3> 금장태, 『실천적이론가 정약용』, 277쪽.
4> 『다산과 문산의 인성논쟁』, 251쪽.
5> 앞의 책, 35~3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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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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