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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공범으로 둔갑... 이들은 속수무책 당한다

[영주씨의 1억원 ②]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있지만 지원 취약... 피해사례 통계조차 없어

등록 2020.10.23 13:07수정 2020.10.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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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자신이 피해자이고 상대가 장애인을 이용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장애인의 경우 본인 스스로 카드를 만들고, 돈을 줬다고 해도 그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사무국장은 지적장애인이 금융사기 피해를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 어느 날 그는 1억 원 빚쟁이가 됐다)

14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김 국장은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금융사기는 늘어나지만, 장애인의 대응은 한계가 명확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장추련 산하의 장애인 차별 상담전화(1577-1330) '평지'에서 장애인이 겪은 차별·범죄에 대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 53개 지역에 지부가 있는 평지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거의 유일한 장애인 피해 상담전화 창구다. 

앱 하나로 통장관리... 피해 사례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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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10월까지 김영주씨 신용정보. 제2금융권 계좌와 카드에 대출계좌를 개설하고 신용조사를 한 기록이다. ⓒ 김상민

 
김 국장의 말에 따르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금융사기는 최근 상담건수가 늘어나고 사안이 복잡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앱 하나로 여러 계좌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편리함은 간편하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지능 수준은 낮지만, 소통이 가능한 지적장애인이 금융범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금융사기와 관련된 상담요청이 최근 급증해 1년 동안 50여 건을 상담했다"라고 말했다. 

피해는 늘어나지만, 피해를 인정 받기는 쉽지 않다. 지적장애인이 고소를 진행하려면 고소장을 쓰고, 증거를 모아 경찰에 제출해야 한다. 이체명세서를 챙기고, 상세 피해 금액명세 등 증거자료도 준비해야 한다. 휴대폰 소액결제와 관련한 피해는 언제·어디서·어떤 방식으로 휴대폰을 개통했는지 기억해 근거자료를 마련해야 한다.

이전 기사에서 1억여 원의 금전피해를 입었다고 언급한 지적장애인 김영주(33, 가명)씨에게 경찰은 여러가지 증거목록을 요구했다. 김 국장은 "지능수준이 초등학생 정도인 지적장애인에게 금융거래 내역을 가져오라하고 하면,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다"면서 "경찰이 장애인이 놓인 특수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영주씨처럼 장애인단체나 가족의 도움으로 고소를 진행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경찰이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사건에 대해 참고인 조사와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사건을 여러차례 대리한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지적장애인(발달장애인)만의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30~40분 진술하고 나면 그다음은 집중력이 떨어져 모두 '네' 하는 식"이라면서 "어떤 경찰들은 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며 긍정의 의미로 조서를 써서 피해자인 장애인이 공범이 되는 경우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대포통장의 경우가 그렇다. 금전거래가 없고,  통장이 없는 장애인에게 누군가 통장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하면, 쉽게 응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매달 조금씩 돈도 주겠다고 하면 더 그렇다. 상대방은 통장과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고, 장애인에게 10~20만원을 준다. 경찰이 '그럼 통장을 주는 대신 돈도 받았다는 거죠'라고 묻는다. 장애인은 '맞다'라고 답한다. 

맥락이 삭제된 질문과 답변 속에서 장애인은 피해자가 아닌 공범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통장개설에 동의했고, 돈의 입금과 출금을 했기 때문이다. 김성연 사무국장은 "자기에게 어떤 피해가 생길지 예측하는 것이 인지능력인데, 지적장애인은 이게 부족한 사람"이라며 "현실에서 대포통장 피해를 입고도 외려 공범으로 기소를 당하고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가 있다"라고 부연했다.

문제는 아직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금융사기에 노출됐고, 금융사기를 경험했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대책을 위한 기초자료조차 마련되지 않는 셈이다. 2017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성명서에서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위원회는 발달장애인이 원활한 금융서비스 이용에 관한 정책만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금융사기 피해와 관련된 실태 및 통계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3년이 지났지만, 자료 공백은 여전하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지난 15일 경찰청에 '지방청별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죄  ▲장애인복지법 위반에 대한 '고소 접수 및 기소 현황'을 요구했지만,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했다. 경찰청은 '범죄통계시스템상 죄명별로 통계를 관리하고 있으므로, 특정 신분의 피해자 관련 통계는 별도로 현출되지 않아 제공해드리지 못한다'는 답변을 했다.

발달장애인 전담수사관은 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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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장애인인권센터가 4월 22일 경남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 피의자 진술 조력 시스템 구축을 요구했다. ⓒ 창원장애인인권센터

 
금융사기에 노출된 장애인, 이미 피해를 당한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당장 '경찰의 수사지원'을 강조했다. 피해사실을 직접 입증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해 수사단계에서부터 경찰의 조력과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5년 제정된 '발달장애인법'으로 각 경찰서는 발달장애인 사건을 전담 조사하는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이 지정돼 있다. 또,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발생 시 경찰과 지원센터는 상호 동행출동 요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의 협조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김예원 변호사는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제도가 있지만,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발달장애인이 조사를 받는데, 전담경찰관이 담당하지 않고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결국 수사내용 가운데 증거능력이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전담경찰관이 배치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김 변호사의 말처럼 지난 4월 한 발달장애인이 단순폭행사건으로 피의자 조사를 받았지만, 전담경찰을 배치받지 못했다. 당시 그는 해당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계 소속 일반 경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장애인의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경찰서에서 다시 재수사를 진행했다. 

앞서 1억원의 빚이 생긴 김영주씨의 경우도 <오마이뉴스>의 취재 이후 담당수사관이 바뀌었다. 애초 용인동부경찰서는경제4팀의 수사관을 배치했다. 19일 <오마이뉴스>가 영주씨 사건에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이 배치된 것인지를 묻자 관계자는 "확인해보겠다"라고 했고, 2시간 여 만에 "영주씨의 참고인조사를 아직 하지 않았다, 전담 수사관은 (조사때) 배치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영주씨의 가족은 수사관이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주씨의 오빠 상민씨는 "19일 저녁에 갑자기 수사관이 바뀌었다고 했다, 전담수사관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지적장애인 #경찰 #소액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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