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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의원에게 "어이" 부른 대표님, 이 도넛은 못 드시겠네요

[그림책일기 36] 예의 있게 말하는 법 '판다 씨, 제발요!'에서 배우셨으면

등록 2020.10.20 12:32수정 2020.10.2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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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삼촌은 몇 살이야?"
"40살."
"아빠는 39살이잖아. 그런데 왜 삼촌이 아빠한테 형이라고 해?"


추석에 동글이가 삼촌이 왜 아빠에게 형이라고 하는지 질문했다. 남동생이 남편에게 '형'이라고 하는 걸 이상하게 느낀 것이다. 남동생과 남편은 생일이 한 달 차이다. 남동생이 한 달 빠른데, 남편이 학교를 일찍 가서 학번은 같다. 연애할 때부터 자주 보아왔던 터라 매형보단 친근하게 형으로 불렀는데 나이가 더 많은 삼촌이 아빠에게 형이라고 하는 게 아이 눈엔 이상했던 것이다.

몇 년 전 시가에서 동글이가 시어머니에게 "아빠는 엄마보다 (나이가) 어린데 왜 반말해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님이 "남자니까"라고 답해서 기함했다. 부부 사이에 서로 존칭하거나 친근한 표현으로 서로 반말을 할 순 있지만 남자니까 나이가 어려도 반말을 해도 된다고? 이것은 어느 나라 높임 표현 규칙이지? 국어 전공자인 내가 배우지 못한 높임표현법을 사용하는 어머니께 그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 했다.

국회의원에게 "어이" 부른 공영홈쇼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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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희 공영홈쇼핑 대표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에게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처럼 우리말 높임표현에는 상대와 나의 관계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특성이 반영된다. 상대가 어려보이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아 보일 경우, 아니면 기선제압하기 위해서(주로 교통사고 후 '너 몇 살이야?' '아니 이 아줌마가' 할 때) 하대 표현이 사용된다.

아르바이트 하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힘든 점을 물었더니, 일이 고되거나 나이가 어려서 임금을 적게 받거나 월급을 떼일 때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반말하고 하대하는 손님과 사장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는 기사를 봤다. 돈은 상대의 존엄을 훼손하지 못하지만 반말로 인한 하대는 상대의 존엄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19일 공영홈쇼핑 부정채용의혹에 대한 국정감사 과정에서 최창희 대표가 류호정 의원에게 '어이'라고 발언했다. 이에 류호정 의원은 '어이?'라고 반문했다. 이후 오후 추가 질의에서 류 의원은 "제가 사장님 친구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며 "국정감사를 해보니까, 서로 말을 끊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근데 누구도 '어이' 하면서 말을 끊지는 않는다. 무례한 태도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저는 국민의 대표로 이 자리에 와 있고 국민께 답하는 태도를 취해 달라"고 말했다.

최창희 대표는 최연소 국회의원 류호정 의원보다 분명 나이가 많다. 그렇지만 국정감사는 공식적인 자리고 이런 곳에서는 서로 존대를 하는 게 우리말 높임 표현의 바른 사용이다. 최 대표가 '허위'를 '어이'라고 잘못 말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영상을 보면 '어이'에 사용된 어조는 분명, 상대를 낮추어 부르는 말 '어이'였다.

최 대표는 국감장에서 류 의원을 기선제압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나이가 어리니까 혹은 우리 어머님처럼 여자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그는 '어이' 말 한마디로 류호정 의원의 존엄과 국감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의 존엄을 훼손했다.

나이 지긋한 최 대표님이 아직 우리말 높임 표현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 표현과 예절을 배울 수 있는 그림책 한 권을 권하고자 한다. 판다 시리즈 중 하나인 <판다 씨, 제발요!>(아람출판사)라는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예의를 갖춰 말하면 생기는 일
 

판다 씨, 제발요!, 저자 스티브 앤터니 ⓒ 아람

 
도넛 한 상자를 들고 있는 판다가 서 있는 표지를 넘기면 면지 가득 알록달록한 도넛이 나온다. 판다에게 도넛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건지 제목과 이어 유추하며 책장을 넘겨 본다. 판다가 누구랑 도넛을 나눠 먹을까 고민하는데 펭귄을 만났다.

"도넛 좀 먹을래요?"
"응, 분홍색 도넛 하나 줘 봐."
"안 돼요. 당신은 먹을 수 없어요. 마음이 바뀌었어요."

 

'판다 씨, 제발요!' 내용 중에서 ⓒ 아람출판사

 
판다는 도넛을 주지 않는다. 다음엔 스컹크를 만났다.

"도넛 좀 먹을래요?"
"파랑색 도넛 하나랑 노랑색 도넛 하나 줘."

"안 돼요. 당신은 먹을 수 없어요. 마음이 바뀌었어요."

판다는 스컹크에게도 주지 않는다. 펭귄과 스컹크랑 사이가 안 좋은가. 타조는 도넛을 싫다하고 고래는 "네가 가진 도넛 다 먹을래. 그리고 더 갖다 줘"라고 말한다. 고래가 욕심을 내서인지 판다는 도넛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에 만난 동물은 여우원숭이다.

"안녕하세요? 저에게 도넛 좀 나눠주세요."

판다는 여우원숭이에게 도넛을 다 나눠 준다. 

"예의 바르게 말해서 다 주는 거예요."

판다가 다른 동물들에게 도넛을 안 준 이유가 마지막에 밝혀졌다. 이 책은 아람출판사 전집에 있는 책 <판다 씨, 제발요!>이다(출판사 을파소에서 <부탁해요, 미스터 판다>라는 제목으로 나온 단행본도 있지만 번역이 다르니 이 점 유의 바란다).

<판다 씨, 제발요!>에서 판다가 존대하며 말을 건넸지만 반말로 대답한 동물들은 도넛을 받지 못 했다. 판다에게 존대의 말을 건넨 여우원숭이만 도넛을 받을 수 있었다. 

최 대표에게 류 의원은 존대어로 질문했다. 그러나 그는 '어이'라는 말로 받았다. 우린 그에게 도넛을 줄 수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공영홈쇼핑 대표라는 도넛은 이제 상대를 존대할 줄 아는 다른 이에게 나눠줘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올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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