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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충동에 시달리다 의사가 된 남자, 그의 위대한 실험

[서평] 영화를 통해 배우는 의학 이야기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등록 2020.10.21 15:06수정 2020.10.2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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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때때로 자살 충동을 느끼며 거리를 떠돌던 남자는 정신병원으로 찾아가 스스로 입원한다.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며 잃어버린 삶의 방향을 어떻게든 찾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도리어 절망하고 만다.

여러 증상의 환자를 함께 있게 하는 등 치료보다 방치나 수용에 가까운 데다, 환자와의 첫 상담조차 서류 기재를 위한 절차에 불과한 듯 건성으로 흘려듣는 의사, 그리고 환자의 타당하고 당연한 요청도 '정신병자의 행동'으로 간주하고 무시하는 환경 때문이었다.

그는 시시때때로 룸메이트의 돌발적인 발작으로 온몸이 짓눌리고 목이 졸리는 것과 같은,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는 지경의 폭행을 당한다. 그런데도 병원 측의 도움을 받지 못하던 그는 어느 순간 룸메이트의 발작에 공감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자신을 지키고 싶은 본능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공격하며 날뛰던 룸메이트가 안정을 찾고 온화해진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인간적인 교류나 공감 혹은 관심 등만으로도 아픈 누군가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희망으로 병원을 뛰쳐나온다. 그로부터 2년 후 각고의 노력으로 버지니아주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아마도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 자랐다면 그리 어리지 않은 아이들의 아빠로 살아갈 그런 나이인 39세 때의 일이다. 

미국의 의사이자 코미디언인 헌터 도허티 아담스(1945~)의 삶을 영화화한 <패치 아담스>(1999년 4월 개봉. 로빈 윌리엄스 주연. 같은 제목의 책도 출간)는 이렇게 시작된다.

환자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던 사람들 

병원에서 수업이 이뤄지던 날, 패치 아담스(아래 패치)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명과 사례, 그리고 행정 편의를 위해 '호실'로만 대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의사들의 권위적인 행동과 말투에 간호사들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은 엄숙했으며 경직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는 그 병원만의 관행이 아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의료(학)계 전통이었다.  

패치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패치는 우연히 백혈병동을 기웃거리게 된다. 수많은 아이가 죽음만을 기다리는 듯 누워 숨만 쉬고 있는 곳이었다. 패치는 잠든 듯 누워 있던 아이의 침대 옆에 있던 관장에 쓰이는 작은 도구를 코에 맞게 잘라 붙인 후 피에로처럼 연기한다. 그 아이를 웃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병실 대부분 아이를 일어나게 하고, 웃게 한다.

이를 시작으로 여러 병실의 환자들에게 다양한 모습과 행동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한편 그들의 아픔과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병원에는 차츰 웃음소리가 늘어난다. 그러면서 식사를 거부하거나, 걸핏하면 보조 치료 도구들을 던지는 등으로 치료를 거부하던 환자들이 치료를 받아들이거나, 호전되는 환자가 늘어나는 등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간호사들을 비롯한 병원 종사자들 얼굴에도 웃음이 번지는 등 병원에는 활기가 돈다. 그러나 의사로서의 권위와 관행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학장에게 이 사실을 들키고, 퇴학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는다. 3학년이 될 때까지 환자를 만나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패치는 학과가 끝난 후 환자들과 만나는 등으로 계속 활동을 이어갔고, 그렇게 월콧 학장의 눈엣가시가 된다.

겨우 3학년이 된 패치. 그는 뜻이 같은 동급생 몇 명과 의미 있는 실험을 한다. 병원의 비인격적인 관리시스템과 치료비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이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서로를 돕고 건강을 회복하는 인간 혹은 환자 중심의 병원을 운영해보기로 결정한다. 숲속의 버려진 농장을 이용해 무료 진료소(전설적인 병원 '게준트 하이트'의 시작이다)를 연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의약품이 바닥나고, 사랑을 나누던 동급생 캐린이 무료 진료소를 드나들던 정신병자에게 살해당하는 불행을 겪는다. 사람에게 가졌던 희망은 회의와 환멸로 바뀌고, 자책으로 절망하며 다시 자살 충동을 느낀다. 설상가상, 그는 퇴학통지서를 받게 된다.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책표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의료계는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곳이다. 전통은 사회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사고와 합의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착된 도덕적 규범의 하나이다. 따라서 전통은 사회 구성원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사고에 제약을 가하며, 전체 사회에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행위이다. 마치 패치가 입학한 의대에서 환자를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고 하나의 사례로만 대하는 전통으로 인해 새로 입학한 의대생 모두가 그러한 사고에 젖어, 결국은 환자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낳는 것처럼 말이다. -134쪽.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홍익출판 미디어그룹)은 <패치 아담스>처럼 의학적 요소가 강한 영화 19편으로 들려주는 의학 이야기다. 19편 전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어떤 영화인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도록 줄거리를 들려주면서, 동시에 의학적인 지식을 본문에 녹여냈다. 

그런 다음, 별도의 페이지에서 영화와 관련한 또 다른 의학적 정보를 정리해 설명한 책이다. <패치 아담스> 편에서는 병원과 의료, 의사의 역할과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어서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느꼈던 자살 충동과 우리의 자살 현황, 자살의 한 원인이 되곤 하는 우울증과 치료에 대해 풀어냈다.

어느 정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쉬운 의학 이야기를 대중성 높은 매체인 영화를 통해 들려줘 이해가 쉬웠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데다, 여러 영화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롭다.

<패치 아담스>의 실제 인물인 헌터 도허티 아담스는 영화에서처럼 모든 환자들과 의료진들을 격의 없이, 그리고 환자 이전에 인간으로 대했다고 한다. 그 결과 치료를 거부하던 환자가 다시 치료에 응하거나, 호전되는 환자들이 느는 등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곤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다른 의사들로부터 의사의 품위를 지키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곤 했다고 한다.
 
"치료의 정의를 내려주시겠습니까?(…) 언제부터 '의사'라는 말이 경이로운 것이 되었나요? 우리가 언제부터 우리를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박식한 친구 그 이상이 되었나요?(…)병동에 들어서기 전에 인간성을 회복하십시오." -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

영화에서, 퇴학이 최종 결정되는 주 의학 위원회에서 의사(병원)의 역할과 치료의 신념에 관해 말한 패치는 수많은 의료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의대생에게 '바람직한 의료인의 역할과 자세'를 호소한다.

의사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의료인들이 다양한 모습이 와닿는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10월 하순 현재, 다행히 내 주변 누구도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 스스로 방역 노력을 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확산을 일선에서 막아준 의료인들을 비롯한 방역 전문가들의 역할이 컸다. 

8월 말, 친정엄마가 많이 아프셨다. 응급 처치 후 2주 입원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119에 실려 가 응급 처치를 한 후 마땅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응급실에 오래 있어야 했다. 결국, 인근 다른 지역 병원으로 갔지만, 오래 기다린 끝에 겨우 입원할 수 있었다. 병원 파업 때문이었다.

이대로 엄마와 영영 이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절박함, 의료계에 대한 막연한 배신감으로 시간을 보냈던 며칠이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쓰리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올해의 의료 파업과 의사 고시 거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책이 다루는 영화들은 <언노운 걸>, <컨테이젼>, <타고난 재능: 벤 카슨 스토리>, <리포 맨>, <화장>, <겟 아웃>, <1987> 등 19편이다. 암이나 치매, 한센병, 감염병처럼 인류를 괴롭히는 병들에 대해, 최초의 장기이식 수술이나 샴쌍둥이 분리 수술, 역사상 가장 길었던 수술, 정신질환자의 입원, 인구감소, 백신 개발 과정, 안락사와 존엄사 등 의학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 서울대 의대, 영화와 문학으로 배우는 의학 이야기

권시진, 오흥권 (지은이),
홍익출판미디어그룹,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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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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