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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앞두고 벌벌 떠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에디터만 아는 TMI] 작가가 된 시민기자가 독자와 처음 만날 때 긴장을 줄이는 법

등록 2020.10.21 18:57수정 2020.10.2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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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만 아는 시민기자의, 시민기자에 의한, 시민기자를 위한 뉴스를 알려드립니다.[편집자말]
하마터면 결재할 뻔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2분 37초짜리 SNS 광고 영상 하나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21년 경력 편집자가 알려주는 '독자가 읽을 수밖에 없는 글쓰기' 강의를 홍보하는 영상이었다. 표정과 눈빛, 어투, 강의에서 어필하는 내용 그리고 자신감 '쩌는' 태도까지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나는 이 영상을 공유하며 SNS에 이렇게 적었다. '결재 버튼 직전까지 가게 만드심.' 얼마 안 있어 페친의 댓글이 달렸다. "저도요."

말하기는 내가 제일 자신 없어 하는 영역이다. 가능한 피하고 싶었던 일이다. 내가 하겠다고 나서서 하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이를 낳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내 경우엔 남 앞에서 말하는 일이 그랬다.


아이는 발표 수업이 있는 날이면 늘 긴장했다. 저학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4학년이 돼서는 급기야 말없이 울기까지 했다. 너무나 긴장이 되는 그 마음을 표현하길, '발표할 때 내가 불 속에 있는 것 같아'라고 했다. 어떤 기분인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때마다 "괜찮다"라고 "떨려도 실수해도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늘 괜찮지 않았다.

나는 아이에게 "괜찮다"라는 말보다 다른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때 마침 편집부로 들어온 글쓰기 강의가 있어 자원했다. '마이크 울렁증'이 있는 나의 첫 강의였다. 엄마가 강의를 준비하는 모습은 아이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 심지어 강의 전 두려워하고 떨려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까지 해줬다.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해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강의실에서 혼자 섰을 때 든 생각은,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도 있네'라는 거였다. ⓒ Pixabay

 
그 후로 책을 내면서 강의를 해야 하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꾸준히 있는 게 아니라(꾸준히 했다면 좀 늘었을까?), 뜸하게 잊힐 만 하면 가끔씩 이어졌기에 할 때마다 처음 하는 것처럼 떨리고 힘들었다. 준비한 걸 반도 못 이야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준비한 걸 한마디도 못 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내 잘못은 아니었다. 강의 장소에 한 명도 오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강의는 못 했지만 강의료는 받은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강의실에서 혼자 섰을 때 들었던 생각은,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도 있네'라는 거였다. 인생에서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였다. 강의를 하면서 실수하고 망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배울 건 하나라도 있었다. 남들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실패의 경험을 글로 쓰면서 무너진 마음을 다시 정상 궤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일단 들어오는 강의는 마다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생겼다. 왜?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경험을 놓치는 건 손해니까.

첫 강연을 앞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

지난 9월,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를 출간한 이혜선 시민기자를 만났을 때 그 역시 말하기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다. 


"책을 내고 강의를 해야 책도 팔린다는데...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거 전혀 소질이 없거든요. 긴장을 너무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지난 몇 년간 강의와 관련한 나의 흑역사가 자동재생 되었다. 그의 고민이 내게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그랬다. 출간을 하기까지도 너무 힘든데, 출간 이후에는 더 큰 고민이 생긴다. 바로 판매다. 출간은 저절로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책은 저자가 팔아야 한다는 말이 너무 당연하게 나온다. 이제 막 책을 낸 저자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내 책에 대해 말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내가 쓴 책을 알리긴 쑥스러운데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라는 일은 현실에선 안타깝게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혜선 시민기자를 비롯해 책을 냈거나, 책을 준비 중인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 떠오른 책이 바로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다. 이 책 80페이지에 '강연에서 떨지 않는 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말하기를 말하기, 김하나 지음 ⓒ 콜라주


오랜 기간 카피라이터로 살았고, 두 권의 책을 낸 작가로 살았지만, 언제부터인가 강연이나 방송 등 말하는 일이 쓰는 일보다 많아졌다는 작가. 그런 자신을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 그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말하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 경험을 녹여 쓴 것이 <말하기를 말하기>다. 작가는 말한다.
 
나의 경우, 강연은 해도 해도 힘들다. 모두가 초롱초롱한 나를 쳐다보고 있고 나 혼자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건 참 긴장되는 일이다. 반대로, 초롱초롱 쳐다보지 않고 청중이 졸기 시작하면 그것도 미칠 노릇이다. 강연을 시작한 지도 여러 해 되었고, 그동안 수도 없이 다양한 곳에서 강연을 했으니 이제 좀 나아질 법도 한데, 매번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싶어서 뭔가 위로가 되었다. 매번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온다니 이 역시 나와 다르지 않구나 싶어서 뭔가 용기가 생긴다. 뿐만 아니라, 엄마 앞에서 강의를 망친 이야기, 여성 작가들과의 모임에서 흘러나온 너도 나도 망한 강의 이야기가 버라이티하게 펼쳐진다. 그걸 보면서 '다들 한 번쯤 망한 이야기가 있구나, 망한 이야기를 이렇게 유쾌하게도 쓸 수 있구나, 다음에 망하면 이렇게 유쾌하게 써봐야겠다'는 다짐까지 생겼다.

망한 이야기까지 글감으로 소화하는 건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았다. 왜? 글 쓰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괜찮다고도 말하게 된다. (잘하면 좋겠지만) 잘 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나는 글을 잘(!) 쓰잖아, 여기면 된다. 말보다 글을 잘 쓰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여기면 된다. 그리 생각하면 쪼그라든 자존감이 조금 팽팽해지는 것 같다.

작가는 '강연의 말하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긴장하지 않는 편안한 마음가짐인 것 같다'면서 '잘 준비해 놓고 긴장해서 강연을 망치지 않는 법'을 넌지시 알려준다. 
 
1. 못해도 괜찮다. 2. 안 들으면 니 손해다(확 마!) 3. 다 X밥이다(이것은 설명이 좀 필요한데... 코미디언 장도연이 원래는 사람 많은 데서 말을 잘 못하는데, 그래도 해야할 일이 생기면, 긴장을 풀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내용이 책에서 언급된다. 다만,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욕설은 피했다 - 기자말)  4. 유명인도 아무 말을 한다 등등을 새기며 긴장을 풀어보자.

"망했다고 생각하면? 다음에 잘 하면 된다"

나라고 좌절의 경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비교적 성공이라고 기억하는 강의는 내가 말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강의 안에 함께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사람들. 내 책을 사주는 사람들. 내가 뭐라고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고, 무언가 느낀 바를 적고, 물어주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흔들리는 정신을 붙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을 한마디라도 더 했을 때 보람 있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015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상을 받았고 <우리 독립 청춘>, <소년의 레시피>를 출간했으며, 최근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로 활동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 <환상의 동네서점>을 출간한 저자 배지영 작가에게 물었다. 첫 강의를 앞둔 시민기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느냐고.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처음 강의를 하는 강연자의 떨림까지도 좋아하는 것 같더라. 상주작가로 일하면서 작가 강연을 많이 진행해보니 작가는 떨어도 괜찮더라. '아이, 저 사람 왜 이렇게 매너 없게 떨어' 이런 게 아니라 '처음에는 떨 수 있다, 나도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시민기자의 첫 강연을 듣는 사람들은 '나도 언젠가 저기 설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10이라도 하는 사람들이다. 떨림을 용서 못 하는 사람들이 아니니 떨어도 된다.

망했다고 생각하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 한번 망해야 그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강의는 만능 버전이 없다. 다녀오면 항상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강의는 오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분위기에 따라 다르고, 강사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러니까 강연은 그냥 한번 딛고 가는 거다. 아기를 낳았을 때, 아기를 잘 키운 사람 책 읽는다고 해서 내 아이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프로의 강연을 흉내 낸다고 해서 그 사람처럼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나대로 잘 할 수 있다. 나도 한 번씩 강의를 망하고 나서 자신감이 붙었다. 지금은 내가 별 말 안 해도 웃는 사람들이 있다."


책을 내지 않았다면 나나, 배지영 작가가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었을까. 그래서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꼭 책을 내라고 권하는 것은. 내가 한 좋은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도 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2020년도 이제 2개월 남았다. 묵은 원고가 있다면 단행본을 염두에 두고 파일명 하나로 모아보자. 목차도 정해보고, 제목도 지어보자. 내가 생각하는 독자 타깃층도 생각해보자. 나한테 맞는 출판사도 한번 찾아보자. 10월은 어쩐지 투고하기 딱 좋은 계절 같으니까. 

말하기를 말하기 -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김하나 (지은이),
콜라주, 2020


#에디터만 아는 TMI #이혜선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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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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