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또 다른 도전 꿈꾸는 박은빈 "인성 빼고 다 가진 캐릭터도..."

[인터뷰]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 역할 맡은 배우 박은빈

20.10.23 10:11최종업데이트20.10.23 13:22
원고료로 응원

ⓒ 나무엑터스

 
지난 20일 방송된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바이올린을 포기한 채송아(박은빈 분)는 경후문화재단에서 일하게 됐고 박준영(김민재 분)은 마음의 짐을 덜고 행복한 피아니스트로 거듭났다. 절절한 이별 이후 다시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반지를 나눠끼며 결혼을 약속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만난 배우 박은빈은 "다시 만난 송아와 준영은 더 견고한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설령 더 상처받을지라도 견디는 힘이 생겼고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너무 만족스런 결말이다"라고 말했다. 

20대 끝자락에 선 스물아홉 청춘들의 고민과 방황, 성장을 그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같은 나이인 박은빈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저와 다른 나이의 인물을 연기하려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연기적으로 힘써야 할 때도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됐다. 편한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다. 딱 올해 만난 작품이라 내겐 운명적인 것 같기도 하다. 저의 20대를 다시 되돌아보기도 했다. 20대 마지막 작품으로서는 선물같은 드라마였다"는 소회를 전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올해 '코로나 19' 시국의 한가운데서도 촬영을 이어가야 했다. 박은빈은 "(여름 내내 촬영하느라) 태풍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토로했다. 날씨 상황으로 인해 야외 촬영이 지연되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박은빈은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싶다는 게 1차적인 목표였다. 마지막 촬영까지 끝내고 나서는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아쉽기도 했지만 일단 내가 할 도리를 했고 최선을 다했고 잘 끝나서 너무 다행이었다"고 털어놨다.
 

ⓒ 나무엑터스

 
올해 초 SBS <스토브리그>에서 프로야구 최초이자 최연소 여성 운영팀장 역을 소화했던 박은빈은 6개월여 만에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로 변신했다. <스토브리그>에서는 무례하게 구는 야구선수의 행동에 격분해 유리컵을 던져 깨기도 하는 등 거친 면이 도드라졌다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는 초라한 자신의 재능에 늘 위축된 청춘의 모습이었다. 박은빈은 전혀 다른 두 인물을 통해 자신의 연기 폭을 넓히고 싶다는 계산이었다고 고백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채송아와 비슷한 결의 연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2016년 JTBC 드라마 <청춘시대> 이후로는 또 반대쪽 캐릭터들을 보여드릴 기회가 많았다. 그즈음 연기 폭을 넓히고 싶다는 욕심이 들더라. 이런 것도 도전해보고 싶고, 저런 것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스토브리그> 이후 정 반대의 캐릭터를 바로 연기하면 제 삶의 폭도 넓어지고 배우로서도 재미있지 않을까, 작품을 선택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극 중에서 채송아는 국내 최고 명문대인 서령대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4수를 한 끝에 음대 신입생으로 입학할 정도로 음악과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늦게 시작한 바이올린은 송아의 열정 만큼 따라주지 않았고, 4년 내내 실기 성적은 늘 꼴찌를 면치 못했다. 박은빈은 채송아와 상황은 다르지만 연기를 사랑했던 본인을 많이 투영했다고 말했다.

"송아가 바이올린에 진심이었듯, 저도 연기에 진심이었다. 송아는 비록 바이올린을 놓아주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지만, 저는 다행히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정리가 된 상태다. 대신 송아의 삶에 대한 열정을 저한테 투영하려 했다. 나는 언제 이렇게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 적이 있었나 싶더라. 저보다 송아가 밀고 나가는 힘은 훨씬 강력하다. 음대에서 4년 동안 재능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치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송아가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어린 아이가 '언니, 바이올린 잘해요?'라고 묻는데 '좋아해, 아주 많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잘하냐고 물었는데 잘한다고 대답하지 못하고 좋아한다고 대답하는 송아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제게도 누가 '연기 잘해?'라고 묻는다면 '좋아한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교수님의 잔심부름까지 하면서 어떻게든 연주자로서의 삶을 꿈꿨던 채송아는 결국 드라마의 마지막에야 "해도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바이올린을 놓는다. 박은빈은 "이 드라마는 채송아가 바이올린을 놓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사랑했던 것을 놓아주는 과정도 참 중요하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 공감하고, 위로와 위안을 얻으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연기할 때 제 고민이었고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너무 사랑했던 것을 내려놓으면서 한발짝 성장한 채송아처럼, 박은빈에게도 올해는 성장의 한 해였다. 2020년을 두 달여간 남겨놓은 지금 박은빈은 너무 바쁜 한해를 보내면서 여유를 배웠다고 말했다. 10개월을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남은 두 달은 충분히 휴식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예전에는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다시 생각하면 '그게 정말 최선이었나?' 하면서 저를 꾸짖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지 않았니? 스스로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제가 느끼기에도 최선을 다했고 여유도 생겼다. 한 해 동안 건강을 지키느라 애썼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았다. 남은 두 달간은 편하게 쉬면서 저의 20대를 잘 마무리 하고 싶다."

서른을 앞둔 박은빈의 30대 첫 작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겨울 동안 푹 쉬면서 틈틈이 다음 작품을 검토할 예정이라는 박은빈은 "30대의 첫 작품이라는 것에 깊은 의미를 두고 고르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드라마 속에서 나온 부제처럼 '다카포'같은 마음이고 싶다. '처음으로 되돌아가서'라는 뜻의 음악 용어인데, 뭔가 새로운 것이나 낯선 것이 아니더라도 낯설게 바라보는 작업을 스스로 해보려고 한다. 내가 언제 어떤 마음으로 대본을 읽느냐도 작품을 결정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작품을 고르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5살이었던 1996년부터 24년째 연기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박은빈은 정작 악역을 연기해본 적은 거의 없다고. 자신의 한계를 늘 뛰어넘고 싶다는 그는 "대부분 선한 캐릭터였다. 특히 최근에는 내면의 심지가 굳은, 강단 있는 캐릭터들을 많이 맡았다. 요즘은 인간 박은빈으로서는 할 수 없는 걸 연기로서 해보고 싶기도 하다"며 "인성 빼고 다 가진 캐릭터도 좋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 나무엑터스

 
이날 인터뷰에 임하는 박은빈의 앞에는 내내 두꺼운 노트가 놓여 있었다. 그가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연구할 때, 때때로 촬영 도중에 생각나는 것들을 써 두는 노트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목표를 세웠냐'는 질문에 그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노트를 펼쳤다. 커다란 노트에는 빼곡하고 정갈한 글씨로 배우 박은빈의 고민과 생각이 가득 쓰여있었다. 그는 "'송아의 크레센도(점점 크게)를 위해 건강하고 즐겁게'라고 썼다. 이게 내 목표였나보다"며 환하게 웃었다. 

"처음에 캐릭터를 만났을 때 준비 과정에서 가장 많이 쓴다. 촬영 중간에도 추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캐릭터의 기본값을 고민할 때 흔적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역시 처음 기초를 탄탄히 해 두고 감정선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연기를 해야하는 작품이라서 촬영 도중에는 쓰지 않았다. 오늘 인터뷰를 하니까, 처음에 대본 받았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그런 걸 들춰보고 싶어서 가지고 왔다. 이 노트를 쓰면서 '송아의 매력이 뭘까'를 고민하고 감독님, 작가님께 질문했었다."
브람스를좋아하세요 박은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