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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이 더 유명했던 호텔… '하이슬라이더' 아는 사람 찾습니다

[어느 도시인의 고향 탐구] 수유리⑧ 장미원과 그린파크

등록 2020.10.24 11:59수정 2020.10.2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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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살던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편집자말]
지난 몇 달간 진행한 나의 첫 고향 수유리 답사는 사라진 옛 흔적들을 찾는 과정이었다. 다가구 주택이 된 나의 옛집과 오래전에 없어진 유치원 그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간 초등학교의 옛터를 찾는 과정부터 그랬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흔적들을 복구할 수는 없었지만 기억 깊은 곳에 묻혀 있던 많은 추억이 되살아났다.

지난 여러 번의 수유리 답사에서 나의 옛집과 유치원과 학교 외에도 찾고 싶은 곳들이 또 있었다. 장미원과 그린파크다. 아마 나와 같은 시대인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 수유리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추억의 장소일 것이다.


장미원이 사라지고 남은 흔적
  

장미원 골목시장 장미원 근처에 들어선 재래시장 ⓒ 강대호

   

옛 장미원 근처 도로의 장미 화단 장미를 가꾸는 것으로 이곳에 예전에 장미원이었음을 알려준다. ⓒ 강대호

 
장미원은 현재 우이신설 경전철 가오리역과 419민주묘지역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장미 농원이다. 한신초등학교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때와 집으로 돌아올 때 차창을 스치듯 가까이서 만발했던 장미들이 기억난다.

장미원은 어떤 곳이었을까. <조선일보> 1962년 2월 2일자 '꽃 중에서도 여왕(女王)' 기사는 장미원을 "우리나라에서 장미를 제일 많이 기르는" 곳으로 소개한다. 또한 <조선일보> 1964년 3월 2일자 '장미 가꾸기 강습' 기사는 장미원이 일반인들에게 장미 키우기를 가르치고 보급하는 농장으로도 소개한다.

그리고 장미원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사람들이 즐겨 찾는 나들이 장소 중 하나였다. 소설가 송기원은 1993년 10월 22일 <조선일보>에 게재한 수필 '따뜻한 추억'에서 장미원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60년대 후반 무렵) 수유리에는 4·19탑뿐만이 아니라 장미원도 있어서 대부분이 나처럼 지방에서 유학 온 가난한 시골 출신들에게는 값싼 데이트 장소로 애용되었다.
 
소설가의 술회처럼 장미원은 나도 내 친구들도 가족들과 나들이 가던 곳이었다. 그만큼 나와 내 친구들 어릴 적 사진에는 장미원에서 찍은 것들이 많았다. 그런 장미원이 1970년대 말에 문을 닫고 그 자리는 주택가로 변했다. 신문 기사를 검색하면 1980년대부터는 개발 광고와 분양 광고만 검색된다.

그렇게 장미원은 사라지고 '장미원' 버스 정류장과 '장미원 골목 시장'이라는 지명으로, 길가 화단에서 장미를 가꾸는 것으로 그곳에 장미원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철물점, 부동산, 기원 등 몇몇 가게에 붙은 간판에 장미원은 흔적으로 남았다.
  

장미원의 옛 흔적. 간판들 옛 장미원 근처에는 장미원을 이름으로 한 상점 간판을 여럿 볼 수 있었다. ⓒ 강대호

   
난 장미원을 기록한 자료와 장미원을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을 찾고 싶었지만 그러진 못했다. 내 취재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 혼자 장미원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가 최승린의 '수유리, 장미원'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오래전에 없어진 장미원을 찾아 헤매는 어떤 노인처럼.

나도 소설 속 노인처럼 동네 사람들에게 "여기에 장미원이 있었지요?"라고 물어보고 다녔다. 하지만 명쾌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길에서 물어본 학생 중 장미원이 무엇인지 아는 이들은 없었고 장미원이 어떤 곳인지 아는 사람들도 그곳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들이 명소였던 장미원은 우리 세대 일부의 기억에만 남는 곳이 됐다.

그 시절의 워터파크
     

그린파크 수영장 전경(1973) 그린파크는 최신식 시설을 갖춘 대형 수영장이었다. ⓒ 국가기록원

   

그린파크 수영장의 하이슬라이더(1973) 그린파크 수영장의 명물 하이슬라이더는 입장료 외에 추가 요금을 내야 했다. ⓒ 국가기록원

 
장미원 못지않게 그린파크도 명소였다. 2020년에 대형 워터파크가 있다면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그린파크가 그 역할을 했다. 그린파크는 원래 1968년 우이동에 문을 연 호텔인데 부속시설인 야외수영장이 더 유명했다.

그린파크는 2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야외수영장이었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슬라이더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인기였다. 1972년 7월 22일자 <경향신문> '자녀 손 이끌고 가까운 물 쉴 곳을 찾는다' 기사에는 그린파크 이용 안내가 담겼다. 대인 400원과 소인 300원의 입장료로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지만 하이슬라이더는 1회에 20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고.

난 유치원 시절 그린파크에 단체로 갔던 추억이 지금도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다른 놀이나 오락거리가 많이 없었던 1970년대 초반에 대형 수영장과 다양한 놀이 시설을 가진 그린파크는 내게 다른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린파크도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

그린파크가 있던 곳과 가까운 우이신설 경전철 북한산우이역 입구에서 등산객들에게 그린파크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젊은 등산객들은 거의 모른다고 했고 나이 지긋한 등산객 중에는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이 지목하는 위치도 대략 비슷했다. 북한산 계곡을 끼고 도선사 방향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오른쪽에 자리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었다.

우이동 유원지나 그린파크 수영장으로 유명했던 그곳은 2000년대 이전에 운영을 중단했고 지금은 콘도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국립공원 근처인 이곳이 어떻게 개발이 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논란이 많았던 모양이다.

개발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개발제한구역이니까 콘도를 못 짓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찬성 측에서는 개발제한구역과 국립공원 경계 밖의 토지라고 맞섰다고 한다. 논란 끝에 공사가 시작됐지만 사업자의 부도로 한동안 방치됐다가 2019년 공사가 재개됐다. 현장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2021년 준공을 계획으로 공사한다고 했다.

공사장은 등산로 입구 가까운 곳에 있다. 예전에 이 코스로 북한산을 오르면 계곡 소리를 들으며 산행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공사장 소음을 들으며 산행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공사는 언젠간 끝나겠지만.
 

우이동 콘도 공사 현장 옛 그린파크 자리에 콘도가 들어서고 있었다 ⓒ 강대호

      
나의 유적

이번 연재를 위해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거나 같은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을 취재했는데 그들도 나와 공유하는 추억이 많았다. 집과 동네를 제외하고 수유리를 생각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게 4·19 묘지이고 그다음으로 장미원과 그린파크였다고.

많은 이의 추억 속에 남은 장미원과 그린파크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만 흔적으로 남고 그냥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없어진 자리는 개발됐다. 택지 개발이든 휴양시설 개발이든.

만약 개발 과정에서 과거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된다면 공사를 중단하고 조사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유물이나 유적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지 아니면 그대로 보존할지를 신중하게 논의한다. 여기서 유물 혹은 유적이란 최소한 근대 조선 시대까지의 것들을 의미한다. 근대 이후 일제 압제 시절이나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것들은 그냥 부숴버리거나 묻어버린다.

그런 과정에서 개발의 구호 아래 장미원과 그린파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울선언>과 <갈등도시>를 쓴 도시 문헌학자 '김시덕'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누추해 보이고 비참해 보이고 부끄럽게 느껴져서 부정하고 싶어지는 20세기의 유물 유적까지도, 현대 한국을 구성하는 귀중한 전통의 일부라고 말입니다. - 김시덕 <서울선언'>중
 
내게는 어쩌면 장미원과 그린파크가 유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찾아야 할 유적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나마 남은 흔적이 없어지기 전에 어서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지 않겠냐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어느 도시인의 고향 탐구 #수유리 #장미원 #그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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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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