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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은 물론 외지인들까지 다 보듬어주는 숲

마을의 역사와 문화·전통 모두 간직하고 있는 함평 향교마을숲

등록 2020.10.22 16:09수정 2020.10.2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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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을 산 노거수가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함평 향교마을숲.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 이돈삼


팽나무와 개서어나무, 느티나무가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수백 년을 산 노거수다. 아름드리 곰솔도 있다. 몸통의 절반을 인공 수피로 채우고, 지지대에 기대 비스듬히 서 있다.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나중에 심은 후계목과도 잘 어우러진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다. 그것도 수십 그루가 줄을 맞춰 서 있다.

나무의 위엄은 용틀임하듯 뻗은 줄기와 가지에서도 묻어난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고산봉을 병풍으로 삼고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는 마을과도 잘 어우러진다. 마을과 함께 수백 년을 살아 온 마을숲이다.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 향교리에 있는 숲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향교숲'으로 통한다.


숲의 면적이 3만7193㎡에 달한다. 1962년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108호로 지정됐다. 산림청과 유한킴벌리 등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기도 했다. 경관도, 보전상태도 좋다는 평을 받았다.
  

단풍으로 물든 함평 향교마을숲. 재작년 11월의 모습이다. ⓒ 이돈삼

   

누렇게 물들고 있는 함평 향교마을숲. 재작년 11월의 모습이다. ⓒ 이돈삼

 
"숲에 단풍 들면 얼마나 고운데요. 가을에 가장 아름다워요. 눈 내리는 겨울에도 정말 멋집니다. 봄·여름에도 좋고요. 사철 아름답고, 기품도 남다른 숲입니다. 우리 마을의 역사와 전통, 문화까지 모든 것을 다 간직하고 있는 숲입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박미경(전남도청)씨의 말이다.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3대 일가족도 보인다. 웃음꽃이 끊이질 않는다. 성인용 유모차를 밀고 바람을 쐬러 나온 어르신들도 보인다.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덩달아 흐뭇해 한다.

마을사람들은 물론 외지인들까지 다 보듬어주는 숲이다. 서로 말을 하지 않더라도, 숲에서는 금세 가까워진다. 마주치는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오간다. 다 이해하고, 또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표정이다. 향교숲의 나무그림자가 드리워진 밭에서는 양파 모종이 자라고 있다. 밭에서 일일이 손으로 풀을 뽑고 솎아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마을을 돋보이게 해주는 함평 향교마을숲. 방풍림이면서 경관림이다. ⓒ 이돈삼

   

함평향교를 빛내는 은행나무. 성인 두 명이 두 팔을 벌려야 겨우 닿을 정도다. ⓒ 이돈삼

 
"옛날에 여그가 얼매나 빽빽했는 줄 아요? 말도 못허게 빽빽혔어. 아름드리 나무들이 얼매나 많았던지. 세월이 흐르고, 벼락도 맞아서 많이 죽어서 그래. 지금은. 우리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애지중지 가꿔 온 숲이제. 지금은 마을 청년들이 관심 갖고 신경을 쓰더랑께. 나무를 심고 가꾸는 울력도 함서."

숲에서 만난 마을어르신의 얘기다.


향교마을 숲은 함평향교와 떼려야 뗄 수 없다. 풍수지리로 봤을 때, 앞산 수산봉의 화기를 눌러야 했다. 너른 들녘을 타고 곧장 미치는 화기를 막아줄 공간이 필요했다. 액운도 막아야 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도 맞서야 했다. 마을 앞에 줄을 맞춰 나무를 심은 이유다. 400여 년 전의 얘기다.

"이 마을 출신 이덕일 의병장의 기개가 높았습니다. 이덕일은 정유재란 때 의병을 꾸려 일본군과 싸웠어요. 이순신 장군도 그 분을 불러서 전략을 논했다고 합니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나라를 걱정하며 '우국가(憂國歌)'를 지었다고 해요."

이목헌 함평향교 사무국장의 말이다.
  

함평 향교마을숲. 마을주민과 수백 년을 함께 해 온 숲이다. ⓒ 이돈삼

   

함평 향교마을 풍경. 마을 앞, 양파 모종 밭에서 마을주민들이 잡풀을 일일이 솎아내고 있다. ⓒ 이돈삼

 
향교숲이 마을을 더욱 아름답게, 돋보이게 해준다. 경관림이다. 바닷바람이나 태풍을 막아주는 방풍림이다. 마을사람들과 외지인들한테 언제라도 쉼터를 제공한다. 초등학교와 인접한 숲은 어린 학생들의 놀이터도 된다.

햇볕 뜨거운 여름날엔, 농사일로 고단한 마을사람들이 몸을 눕혀 쉬도록 그늘도 내어줬다. 농한기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크고 작은 일을 나누며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숲이 사랑방이었다. 마을에 사는 총각과 처녀들이 몰래 만나던 곳이기도 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 보듬어줬다.

최근엔 숲이 철학과 버무려지고 있다. 인문학자로 이름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내려와 살면서다. 최 교수는 철학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있다. 최근에 나온 〈탁월한 사유의 시선〉도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이 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왜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하는지? 철학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철학이 지금 이 시대를 극복할 해답을 줄 수 있는지.

나와 우리의 앞길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향교마을이다. 우리한테 편안한 쉼을 주는 숲이 향교숲이다.
  

함평향교 전경. 함평 향교마을의 중심 공간이다. ⓒ 이돈삼

#함평향교숲 #함평향교 #향교마을숲 #최진석 #아름다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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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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