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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특검에 집착하는 '경험적 이유'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한때 보수의 '잘 드는 검'이었던 특별검사

등록 2020.10.24 11:51수정 2020.10.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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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22일 오전 국회 의안과에 라임 옵티머스 펀드 금융사기 피해 및 권력형 비리 게이트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이 이른바 '라스 특검'(라임·옵티머스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2일엔 '라임·옵티머스 펀드 금융사기 피해 및 권력형 비리 게이트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해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를 압박했다.

민주당은 이 사안이 권력형 비리가 아니며 특검수사로 5개월이나 소요할 필요가 없다고 맞받았다. 국회 의석 수 분포로 볼 때, 특검 출범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특검법 통과를 위해선 재적의원 과반 출석(150명) 중 과반 찬성을 이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특검법 공동발의자 수는 110명이라 현실 가능성이 떨어진다.

21년간 13건의 특검수사

1999년에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과 옷 로비 사건으로 두 건의 특별검사 수사가 동시에 개시된 이래로 2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총 13건의 특검 수사가 벌어졌다. 특검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까지 합치면, 특검 관련 보도는 지난 21년간 거의 매년 우리 귓전을 맴돌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정치가 특검이란 제도에 많이 의존해왔음을 알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특별검사제도는 '특별한 검사'가 수사·기소하는 제도가 아니다. '특별한 변호사'가 특별검사가 돼 사건을 담당한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21년간 13건이나 있었다.

'특별'이나 '예외'가 일상화되면, 평소에 작동하는 일반 제도가 위축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비교적 중립적인 법조인들에 의해 정치적 사건이 처리되면 정쟁의 과열양상은 막을 수 있겠지만, 여야가 무대 밑으로 내려가 법조인들의 정치적 활약을 구경하는 일이 잦아지게 된다. 국회가 아닌 특검에 의해 행정부나 집권당의 비리가 파헤쳐지는 일이 잦아지다 보면, 국회가 가진 본연의 기능인 행정부 견제 역량이 약해질 소지가 있다. 또 '경찰·검찰에서 안 되면 특검으로 가면 된다'는 인식이 조장될 수 있다. 이는 수사기관의 역량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특별검사가 임명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행정부나 집권여당엔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렇지만 이 제도가 오·남용되면 부작용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특검(特檢)을 예리한 '특검(特劍)'으로 다듬어 부조리를 도려내는 데 요긴하게 쓰려면, 필요한 최소 한도의 범위에서 제도를 아껴쓸 필요가 있다. 21년간 열세 번이나 꺼내 쓴 것도 모자라, 걸핏하면 이 검을 만지작거린다면 더 이상 특별한 검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특검' 하면 무용론도 많이 나왔고 용두사미란 용어도 많이 등장했다. 그런데도 보수정당이 특검을 자주 꺼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특검 전개의 양상
 

21년 동안 출범한 특검 정리 표. ⓒ 김종성

 
'최순실 게이트' 특검이나 '삼성 비자금' 특검 같은 예외적인 사례들을 제외하면, 특검은 보수세력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는 일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보수정당 입장에서는 특검에 친숙함을 느낄 만한 이유가 있는 것. 이 점은 그간 특검을 개략적으로 정리한 위 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표의 맨 왼쪽 '회차'에서 '2번'이 없는 것은 최초의 두 특검이 동시에 출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에서 '공격 주체'는 특검법을 발의했거나 특검 출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집단을 뜻한다. 국회에서 특검법을 발의한 당사자는 아니지만 시민사회가 특검을 추동하는 힘이 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경우엔 시민사회를 공격 주체로 표기했다. 표에서 '공격 주체'나 '공격 대상'은 해당 공격을 주도했거나 공격을 받은 진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그룹을 뜻한다. 이 칸에 표기되지 않은 정당이나 정치세력이라 하여 해당 특검과 무관했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과 관련된 6번 특검의 경우에는 진보세력인 민주노동당도 한나라당과 함께 특검을 요구했다. 하지만 주도권을 가진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그래서 표에서는 한나라당만 '공격 주체'로 등장한다.

오른쪽 끝의 항목이 '뚜렷한 타격'으로 명명된 것은 이렇게 하지 않고는 개별 특검의 성과를 계량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특검이 성과 없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특검법을 발의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공격 주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또 사건이 무혐의로 끝난 경우에도 '공격 대상'은 어느 정도의 이미지 손실을 본다.

그런데 이 같은 '약간의 성과'와 '약간의 손실'은 수치상으로 계량화하기 힘들다. 최소한의 계량화를 위해, 공격 주체가 공격 대상에게 뚜렷한 타격을 입힌 경우만을 표기했다. 특검이 공격 대상에게 뚜렷한 타격을 입힌 사례는 이용호 특검(3번), 대북송금 특검(4번),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12번), 세 건이다.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김대중 정부 때는 3회, 노무현 때는 5회, 이명박 때는 3회, 박근혜 때는 1회, 문재인 때는 1회의 특검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특검과 이명박 정부 특검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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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15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BBK 관련 의혹 등을 수사할 정호영 특별검사 수사팀이 서울 역삼동 특검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진행한 모습. 오른쪽 부터 최철, 문강배, 김학근 특검보와 정호영 특검, 이상인, 이건행 특검보. ⓒ 남소연

 
노무현 정부 때 다섯 번의 특검이 있었다고 해서, 노무현 정부가 특검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의 첫 특검(4번)인 대북송금 특검과 마지막 특검(8번)인 BBK 특검은 각각 김대중 정부와 차기 이명박 당선인에 관련한 것이었다.

또 삼성 비자금 특검(7번) 역시 엄밀히 말하면 노무현 정부와 직접적 관련이 없었다. 이 정부도 어느 정도 부담을 안기는 했지만, 이 특검은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을 겨냥한 것이었다. 정권이 아닌 재벌그룹이 특검을 받은 유일한 사례가 노무현 정부 때 있었던 것이다. 현대그룹 역시 대북송금 특검과 연루됐지만, 이 특검의 직접적인 공격 대상은 현대그룹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였다.

삼성그룹을 겨냥한 특검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특검 제도가 여야의 정쟁 수단을 뛰어넘어 보다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시민사회가 이 특검을 추동하는 힘이 됐다는 사실은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들의 영향력이 향상됐음을 보여줬다. 

노무현 정부와 직접적 관련이 있었던 특검은 '노무현 측근 비리'(5번)와 '철도공사 러시아 유전개발'(6번)로 인한 두 건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정부, 현재 정부, 미래 정부와 관련한 특검뿐만 아니라 재벌그룹과 관련한 특검까지 벌어진 '특검 종합선물세트' 같은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명박 때는 세 건의 특검이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의 8번(BBK특검)까지 합하면 실질적으로 네 건의 특검이 있었다. 그중 스폰서 검사 특검(9번)은 검찰 조직과 관련된 것이고, 디도스 사건(10번)은 이명박보다는 한나라당과 더 연관이 깊었다.

이명박 정부와 관련된 특검은 BBK 특검과 더불어 내곡동 사저 부지 특검(11번)이었다. 개인 비리 문제로 특검이 두 번이나 열렸다는 점에서, 이명박은 청렴 문제에 관해 역사적으로 특기할 만한 이력을 남긴 정치인이다. 

특검을 가장 많이 활용한 한나라당... 그런데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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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사진은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회의에서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지난 21년 동안 공격수 역할을 가장 많이 한 세력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다. 한나라당은 13건 중 여섯 번의 특검에서 공격 주체로 활약해 제도를 잘 활용했다. 그들이 주도한 특검에서는 '뚜렷한 타격'이란 성과를 내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이용호 게이트를 통해 김대중 정부의 핵심인물들을 구속하고,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김대중 정부 인사들의 법률 저촉 사실을 확인했다. 특검을 통한 공격을 가장 많이 당한 건 김대중 정부였다. 한나라당의 후예인 국민의힘이 특검 제도에 의욕을 보이는 '유전적 이유' 중 하나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뀐 뒤에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특검이 삼성을 겨냥한 뒤부터 이와 같은 양상이 보인다. 주로 시민사회나 민주당 계열이 활약했는데, 2016년 최순실 게이트 특검은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다.

2018년 드루킹 특검 때는 자유한국당이 오랜만에 공격 주체가 됐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2003년 대북송금 특검 이후로는 보수정당이 별다른 '전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3건의 특검 가운데서 7번(삼성비자금)·9번(스폰서 검사)·12번(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때 시민사회가 공격 주체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검 제도 도입 초기에는 보수정당이 특검을 주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국민 대중의 목소리가 이 무대에서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특검 무대에서 보수정당의 칼날이 점점 무뎌지는 동시에, 무대 밖의 국민들이 예리한 칼날을 휘두르며 특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보수정당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특검 제도가 더는 보수정당의 유력한 정쟁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현재 국회 의석수 분포상 보수정당은 특검법 통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최고위원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특검 도입을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힘, '무엇을 비호하려고 특검을 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고조될 때 특검이 관철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다음 정쟁 수단은 '여론몰이'가 될 것을 암시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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