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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권유로 간 꿈틀리... 생각지도 못한 인생을 설계하다

지금도 나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고있는 중이다

등록 2020.10.23 14:30수정 2020.10.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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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리인생학교 2기 하몬(류시형), 아름다운 봄날에. 꿈틀리인생학교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꽃과 그늘을 주는 큰 벗나무가 있습니다. ⓒ 꿈틀리인생학교

  
나는 부모님의 제안으로 꿈틀리를 알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2년간 홈스쿨링을 하며 점점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줄어든 나에게 부모님은 꿈틀리에서 1년동안 또래 친구들과 함께 더 많은 경험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원래 익숙한 것을 더 좋아하는 성격에 나는 '꿈틀리'라는 낯선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선뜻 받아드리지 못했다. 또한 6년의 대안학교와 2년의 홈스쿨링이라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온 나는 어쩌면 옆만 보고 살아왔을 수도 있는데 "옆을 볼 자유"가 나한테 정말 필요한 것인지 잘 와닿지 못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고민한 끝에 '꿈틀리는 내 삶에 있어서 또 다른 옆을 볼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꿈틀리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꿈틀리인생학교 2기 후드티 홍보 촬영중. 양이선생님과 함께 ⓒ 꿈틀리인생학교

 
나는 꿈틀리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여러 친구와 함께하면서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차로 5시간 (대중교통으로 7시간) 걸리는 거리를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며 스스로 생활하는 법을 깨우쳤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가고 부모님은 내가 좀 더 넓은 세상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에 나에게 꿈틀리 졸업 후 유학을 제안해 주셨다. 부모님이 꿈틀리를 처음 제안해 주셨을 때처럼 나는 유학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기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나는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꿈틀리를 졸업하고 가게 된 곳은 캐나다 밴쿠버였다. 캐나다로 유학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단지 몇 년 전 가족여행으로 밴쿠버에 갔을 때 보았던 자연적 환경과 만났던 사람들의 특유의 부드러움이 매우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처음 캐나다를 갔을 때 문화도 언어도 공간도 너무나도 다른 이곳에서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컸다. 그래도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고 '두려움 그거 한번 이겨보자!'라는 마음으로 캐나다 생활을 시작했다.  

캐나다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인 만큼 나는 캐나다뿐만 아니라 브라질, 일본, 중국, 대만,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은 모두 살아온 문화도 더 익숙한 언어도 전부 달랐지만,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로 함께 소통하고 다양한 문화를 공유했다. 나에게 있어 언어적인 장벽은 제일 큰 산이었다. 

처음에 나는 수업을 이해하고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매 순간 초긴장 상태였고, 하루가 끝났을 때는 모든 기가 다 빨려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차츰 지나며 어색했던 언어는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나는 수업에서 영어로 발표를 하고 에세이를 쓰고 서툴지만, 친구들과 소통을 하며 조금씩 나의 산을 올랐다. 

내가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 캐나다에 가게 된 만큼 첫 1년 반 동안 나는 정말 열심히 놀았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대중교통을 타고 장시간이 걸리더라도 바다를 보러 갔고, 친구들과 돗자리를 챙겨 퀸 엘리자베스 공원에 가서 피크닉을 즐기기도 하였다. 

한번은 학교에서 하는 파자마데이 때(학생들과 선생님들 누구나 자유롭게 파자마를 입고 학교에 등교할 수 있는 날) 함께하고 싶어서 잠옷 차림 그대로 가방만 들고 등교한 적이 있었다. 처음 잠옷만 입고 학교에 갔을 때는 조금 부끄럽기도 했는데, 안대에 가운까지 준비한 다른 학생들을 보며 그 부끄러움은 금방 사라졌다. 게다가 아침에 준비하는 시간이 없어도 된다니, 부스스하게 등교해도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운 학교의 모습에 나중에는 파자마데이 때 잠옷을 입고 등교했다가 학교 후에 그 차림 그대로 다른 곳에 놀러 가기도 했다.


핼러윈은 캐나다에 있는 이벤트 중 꽤 큰 이벤트에 속한다. 두 달 전부터 가게에는 핼러윈 소품들이 가득하고 집마다 마당에는 거대한 풍선들과 핼러윈 장식들이 예쁘게 꾸며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그날에는 학생들 또한 분장을 하고 학교에 등교하는데 오히려 분장을 하지 않은 학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첫 할로윈, 코스튬 입고 반 친구들과 함께 ⓒ 꿈틀리인생학교

 
유독 전부터 할로윈에 로망이 있었던 나는 첫 할로윈이 다가올수록 설렘과 동시에 어떤 분장을 해야 할 지 나름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그러다 어느새 훌쩍 다가온 날에 후다닥 핼러윈 옷을 샀다. 그 옷은 다름 아닌 바나나 옷이었다. 나는 얼굴을 빨갛게 칠하고 노란 바나나 옷을 뒤집어쓴 채로 학교에 등교하였고, 죽음의 바나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학교 후 저녁에는 집마다 돌며 사탕 또는 달콤한 것을 얻는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을 했는데 그때 열정적으로 집을 돌며 얻은 사탕들은 무려 두 달 동안 내 방에서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때는 노래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매 점심마다 음악실에 박혀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탤런트 쇼(Talent show, 장기자랑)를 한다고 하길래 나는 망설임도 없이 탤런트 쇼에 참여했다. 공연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그래도 첫 번째 순서는 부담이 제일 컸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는데 하필 내가 고른 곡이 더 쇼(The show), 오프닝으로 너무 적합한 곡이어서 오프닝을 하게 되었다. 

이후 공연을 관람하시던 선생님들 중 한 분이 나의 공연을 좋게 봐주셔서 나는 전교생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엄청난 땅 크기를 자랑하는 캐나다인 만큼 우리 학교 전교생은 1천 명이 넘어간다. 그렇기에 나는 그때의 공연이 내가 그동안 했던 공연 중 제일 큰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평소 밴드라고 하면 기타와 드럼이 함께하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반면 캐나다에서는 밴드에 색소폰, 클라리넷, 트럼펫 등 정말 다양한 악기가 함께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학교 밴드 공연을 처음 봤을 때 그 웅장한 소리와 분위기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그때부터 나의 작은 목표는 학교 밴드에 합류하는 것이었고, 11학년 여름방학 동안 한 달간 색소폰을 배워 다음 학기에 학교 밴드에 합류하는 것에 성공했다. 비록 서투른 실력이라 처음에 같이 연습 할 때는 식은땀도 종종 흘렸지만, 그래도 다양한 악기들이 각자의 소리로 화음을 쌓으며 한 노래를 완성하는 것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나는 종종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경험하자'라는 마인드로 이것저것 시도해보았다. 그중 하나가 학교 다문화 동아리(Multicultural Club)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다문화 동아리에서 나는 다른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의 이벤트를 즐길 수 있도록 계획하고 주최하는 일들을 주로 하였고, 매 학기 새 유학생들이 왔을 때 학교를 안내하는 일들도 하였다. 

그러다가 12학년(한국으로 보면 고3)이 되기 전, 나는 한 수업을 통해 '마케팅'이라는 분야를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확고해 지면서 부모님과 많은 상의를 하였고 대학을 결정하였다. 이것은 어쩌면 내 인생에 처음으로 온전히 알아보고 계획하고 선택한 목표였기에 더 절실했던 거 같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나는 살아생전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공부는 말 그대로 교과적인 공부이다. 

물론 캐나다에 온 후 공부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12학년이 되며 더 어려워진 과목들을 한 번에 듣게 되었고 딱히 과외를 받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 전부 해내고 싶었다. 덕분에 나는 좋은 성적과 함께 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2년 반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고등학교를 잘 졸업했다. 

지금 나는 내가 가고 싶어 했던 밴쿠버의 한 대학, 마케팅과에 재학 중이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어 한국에서 16~17시간이라는 시차를 견디며 생활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어쩌면 또 다른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순천에서만 생활했을 때 나의 세상은 아주 작았다. 하지만 그러한 내 세상은 꿈틀리에 가서 조금 더 넓어졌고 캐나다에 가며 더 넓어졌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많은 세상이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해 처음 꿈틀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바로 받아드리지 못했던 것처럼, 캐나다 첫 생활 때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많았던 것처럼, 나에게는 아직도 많은 근심 걱정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더 많은 경험과 세상을 위해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고등학교 졸업 ⓒ 꿈틀리인생학교

  
* 꿈틀리인생학교 6기를 모집합니다.

꿈틀리인생학교 학교설명회 영상은 10월 27일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될 예정이며, 11월 7일과 11월 28일(총 2회) 라이브 질의응답을 진행합니다.

<6기 원서접수 기간>
- 2020년 11월 16일 - 12월 11일

전화문의 : 032-937-7431

* 블로그 : 
ggumtlefterskole.blog.me
* 페이스북 : facebook.com/ggumtlefterskole
덧붙이는 글 꿈틀리인생학교 2기 졸업생 류시형(하몬)이 보내준 글입니다
#꿈틀리인생학교 #전환학교 #대안학교 #학교설명회 #신입생모집
댓글

삶을 숨가쁘게 달려온 청소년들에게 '옆을 볼 자유'를 주는 1년의 시간, 한국형 에프터스콜레 꿈틀리인생학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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