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길 와보니, 산속에 사는 이유를 알겠네요

호주 시골 생활 이야기: 미들브라도 국립공원(Middle Brother National Park)

등록 2020.10.26 16:47수정 2020.10.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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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너른 초원 ⓒ 이강진

 
우리 동네에서 조금 내륙으로 가면 타리(Taree)라는 동네가 있다. 이 근처에서는 가장 큰 동네다. 관공서는 물론 상점도 이곳에 몰려있다. 색소폰 하나 들고 가입한 밴드 그룹도 타리에서 모인다. 따라서 자주 찾는 동네다. 

고속도로를 따라 가다 타리 근처에 도달하면 높은 산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림이 울창한 국립공원들이 있는 곳이다. 오래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높고 광활한 산세가 마음을 끌기 때문이다. 


같은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칼리(Kali)라는 할머니가 이 동네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네 토박이다. 칼리를 앞장세워 국립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약속 날짜를 잡고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외진 산속에 살기 때문에 네비게이션이 자기 집을 찾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집에서 가까운 무어랜드(Moorland)라는 동네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국립공원을 둘러보기로 한 날이다. 주유소에서 기름도 채우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눈에 익은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칼리는 이미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안내를 받으며 산으로 향한다. 안내자가 있으니 든든하다.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조금 운전해미들브라더 국립공원(Middle Brother National Park)으로 들어선다.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에 세 자매 바위가 있다면 이곳에는 세 형제라는 국립공원이 있다. 그중에 산세가 가장 높은 미들브라더 국립공원에 온 것이다. 도로는 물론 비포장도로다.

칼리가 제일 먼저 안내한 곳은 버드 트리(Bird Tree)라고 부르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 장소다. 나무를 보니 오래전에 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도로가 아닌 샛길로 와서 그런지 처음 온 기분이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고목이다. 높이가 69m, 둘레가 11m나 되는 나무다. 뉴사우스 웰스(Nsw South Wales)에서 높이는 두 번째이지만 크기로는 가장 큰 나무라고 한다. 관광객이 나무 주위를 둘러볼 수 있도록 난간이 있는 보도도 만들어 놓았다.


나무 주위를 걷는다. 그런데 난간 위에 돋보기가 얌전히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관광객이 놓고 갔을 것이다. 잠시 벗어놓았다가 깜박한 것 같다. 고목에 너무 심취했었나 보다. 안경 주인이 다시 찾으러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안경을 제자리에 두고 목이 아프도록 나무를 올려보며 시간을 보낸다. 

제일 높은 나무를 중심으로 울창한 숲을 사진에 담는다. 그러나 어떠한 구도로 찍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수많은 고목으로 들어찬 숲속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사진으로 살려낼 자신이 없다. 사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미들브라더즈 국립공원의 자랑거리, 버드 트리(Bird Tree) ⓒ 이강진

 
점심시간이다. 산자락 하남배일(Hannam Vale)이라는 동네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규모는 작지만 오래된 카페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내부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선풍기, 램프 등 갖가지 물건이 진열되어 있다. 마치 동네 박물관에 온 것 같다. 냉장고도 특이하게 오래된 함석으로 장식되어 있어 운치를 돋운다. 

식사를 주문하고 카페 입구에 있는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옆 식탁에는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 내용으로 보아 이곳을 처음 찾은 관광객으로 보인다. 

도로 건너편에는 학교가 있다. 하남배일 공립학교(Hannam Vale Public School)라는 이름이 교문에 붙어 있다. 그리고 학교 이름 옆에 1892년에 학교가 설립되었다는 문구도 있다. 1892년에 이런 외진 곳에 학교를 세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국립공원 기슭에 자리 잡은 오래되고 운치 있는 카페 ⓒ 이강진

     
외진 동네의 운치 있는 카페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오늘 하루 여행 가이드를 자처한 칼리와 함께 다시 자동차에 오른다. 왼쪽을 가리키면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오른쪽을 가리키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며 산길을 운전한다. 조금 들어가니 이곳부터는 지방 정부에서 도로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팻말이 나온다. 그래서일까, 도로가 험해지기 시작한다. 

관광객이 다니지 않는 외진 도로다. 쓰러진 나무가 도로를 막기도 한다. 쓰러진 나무를 치워 가면서 숲속을 운전한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비포장도로에서 내뿜는 흙먼지 또한 장난이 아니다. 자동차는 흙먼지로 뒤덮여 흡사 오지를 탐험하는 자동차 모습이다.

짧은 산책로가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산책로를 걷는다. 산에서 살아서인지 칼리는 나무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 보이는 나무들 이름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무에 대한 설명도 열심히 한다. 그러나 이 분야에 지식이 전혀 없는 나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이름을 들어도, 설명을 들어도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산책로를 조금 걸으니 밑동이 크게 비어 있는 나무가 있다. 대여섯사람은 충분히 들어가도 남을 만큼 큰 공간이다. 그러나 뿌리는 넓게 퍼져있다. 하늘로 솟아있는 큰 몸통을 지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특이한 고목을 뒤로하고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들으며조금 더걷는다. 

이번에는 벌목으로 몸통은 잘려 나가고 밑동만 덜렁 남은 고목을 만났다. 남은 몸통에는 크게 파인 자국이 있다. 벌목할 때도끼나 나무를 자를 수 있도록 발판을 끼어넣는 홈이라고 한다. 칼리 할아버지도 이곳에서 벌목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아마도 자기 할아버지가 자른 나무일 것일 수도 있다며 빙긋이 웃는다. 전기톱이 없던 시절, 맨손으로 거대한 나무를 잘라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밑동이 크게 비어 있는 고목, 대여섯 명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 이강진

오래전에 잘려 나간 고목, 벌목을 위해 도끼로 몸통을 판 흔적이 선명하다. ⓒ 이강진

 
산책로를 나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와이투이 폭포(Waitui Falls)라는 곳이다. 그동안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에는 대여섯 대의 자동차가 주차해 있다. 주차하고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니 작은 폭포가 나온다. 폭포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봄이 왔다고 하지만 산속에서 흐르는 물이 차가울 것 같은데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물놀이를 하는 사람 중에는 조금 전에 카페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있다. 물에서 나와 수건으로 흘러 내리는 물을 닦으며 아는 척한다. 춥겠다는 나의 질문에 물이 시원하고 좋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추워하는 나에게 물에 들어가 보라고 권한다. 호주 사람들은 물을 정말 좋아한다.  

맑은 물에 손과 얼굴을 적신 후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에는 전망대(Newby's Lookout)에 도착했다. 전망대 입구에 큼지막한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는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에 대한 정보를 사진과 함께 제공하고 있다. 동굴이 있다는 표시도 보인다. 산책로도 많다. 며칠 이곳에서 지내도다 둘러보지 못할 것이다. 

전망대에 들어서니 조금 전 폭포에서 수영했던 사람들도 있다. 환한 웃음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아이와 함께 온 중년 부부와도 인사를 나눈다. 얼마 전에 도시를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고 하며 멀리 보이는 동네를 가리킨다. 

깎아지른 절벽과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 얕게 깔린 구름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찾아온 보람이 있다.
 

전망대(Newby’s Lookout)에서 풍광을 즐기는 관광객들 ⓒ 이강진

 
하루를 끝낼 시간이다. 짧은 산책로를 걷기도 하고, 볼거리가 있으면 쉬기도 하면서 집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바위가 하늘로 높이 솟은 최고봉(Big Nellie Mount Summit)에서 잠시 쉰다. 전망대와 테이블을 마련하여 쉴 수 있도록 만든 장소다. 잠시 테이블에 앉아 최고봉을 올려본다. 언젠가 다시 와서 정상을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인적 없는 깊은 숲속 분위기가 좋다. 자연과 하나 되어 호흡을 가다듬는다. 마음조차 맑아지는 기분이다. 많은 정신적 지도자가 깊은 산속에 은거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호주 #NSW #HANNAM VALE #호주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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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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