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김기희의 눈물, 그게 바로 전북과 울산의 차이였다

눈앞의 승점 3점차이보다 좁힐 수 없었던 근본적인 격차는...

20.10.26 11:28최종업데이트20.10.26 11:28
원고료로 응원
어쩌면 우승의 운명을 좌우할 2020년 세 번의 '현대가 더비'는 전북의 완승으로 끝났다. 25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26라운드에서 전북 현대가 울산 현대를 1-0으로 제압했다.

전북은 지난 6월 28일 원정 첫 대결에서 2-0, 9월 15일 홈에서 2-1로 승리한데 이어 올시즌 울산과 세 번의 맞대결을 모두 이겼다. 올시즌 전까지 울산과의 역대전적에서 열세였던 전북은 올해에만 3연승으로 38승 2무 36패를 기록하며 역전에 성공했다.

또한 사상 최초의 K리그 4연패에 도전하는 전북은 올시즌도 지난해에 이어 역전 우승이 유력해졌다. 전북은 18승 3무 4패, 승점 57점을 기록하며 16승 6무 4패, 승점 54점에 머무른 울산을 3점차로 제치고 선두로 등극했다. 전북은 다음달 1일 대구와의 최종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할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반면 울산은 같은날 최종전에서 광주를 잡고 전북이 무조건 패하기만 기다려야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렸다. 양팀의 승점이 같을 경우 다득점으로 순위를 가리는데, 울산(51골)이 전북(44골)에 현재 7골차로 앞서있어서 승점이 같아지면 울산이 유리하다는 것이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이다.

김기희가 또다시 양팀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신스틸러'가 됐다. 0-0으로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던 후반 18분 전북 진영에서 길게 넘어온 패스가 울산 센터백 김기희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울산 진영이었고 상대 선수와 볼경합을 하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침착하게 볼처리를 할수 있는 시간적-공간적 여유가 모두 충분했다.

하지만 김기희는 위험지역에서 굳이 부정확한 백헤딩으로 골키퍼 조현우에게 볼을 연결하려고 했고 멀리서 쇄도하던 전북 공격수 바로우를 순간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바로우는 김기희와 조현우 사이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박스로 파고들었다. 김기희의 백헤딩이 바로우에게 주는 어시스트가 되어버린 셈이다.

바로우의 논스톱 슛은 조현우의 손에 맞고 굴절되며 데굴데굴 전북의 골문으로 흘러들어갔고 이날의 결승골이 됐다. 직전까지 긴장감넘치는 승부의 균형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한골에 운명이 좌우되는 축구에서 수비수의 안이한 판단 하나가 어떤 재앙을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김기희는 지난 6월 28일 전북과 시즌 첫 맞대결에서도 경기 초반 김보경에게 과격한 태클을 저질렀다가 퇴장당하며, 팀이 수적열세속에 힘 한번 못써보고 0-2로 완패하는 빌미를 제공한 적이 있다. 울산이 올시즌 당한 4패중 무려 3패가 전북전이고, 이중 딱 한 경기만 이겼어도 지금 울산이 우승에 매우 근접해있었을 상황임을 고려하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김기희의 치명적인 두 번의 실수가 불러온 '나비효과'가 전북전 3연패는 물론이고, 아예 울산의 한 시즌 농사 자체를 완전히 망칠 수 있는 부메랑으로까지 돌아온 셈이다. 김기희 스스로도 자책감으로 충격이 컸던 듯, 전북전이 끝난후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 K리그 최강팀으로 장기간 군림한 전북도 항상 잘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약팀에게 덜미를 잡히거나 경기력에 기대에 못미쳤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경기나 고비에서 선수단이 집중력을 발휘하여 이기기 힘든 경기도 어떻게든 결과를 끌어내는 뒷심이 있다.

전북의 강점을 뒤집어보면 바로 울산의 약점이 보인다. 객관적인 전력상 울산은 전북과 비교해도 전혀 뒤질 것이 없다. 하지만 '큰 경기'나 '승부처'에서 번번이 고비를 넘지못하고 고꾸라지는게는 고질적인 징크스다.

울산은 올시즌 승리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3골차 이상으로 대승한 경기도 많다. 하지만 의외로 무너질때는 허무하게 침몰하는 경우가 많았다. 울산이 올시즌 당한 패배는 K리그팀중 최소인 4번(전북 3패-포항 1패) 뿐이지만, 모두가 하필 우승 경쟁의 중요한 고비마다 나왔다는게 치명타였다.

하나같이 울산이 스스로의 강점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자멸한 경기이자, 내용상 흔히 말하는 '졌잘싸'(졌지만 잘싸웠다)라고 위안을 삼을수 있는 경기도 전무했다는게 공통점이다. 이는 김도훈 감독 부임 이후 반복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울산은 지난해도 최종전에서 '동해안 더비' 라이벌 포항에 완패를 당하며 전북에 역전우승을 내준 바 있다. 올시즌도 전북에 한때 5점차까지 리드를 벌리며 조기 우승을 눈앞에 뒀으나 정규라운드 후반기부터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치며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전북과의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직전 25라운드 포항전에서 0-4로 완패할때부터 울산은 이미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다.

울산은 이 경기에서 불투이스와 비욘 존슨이 잇달아 퇴장당하며 전력누수까지 안게됐다. 전북전에서 불투이스를 대체하여 투입된 김기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주니오의 부진을 대체할 수 있었던 존슨의 공백은 공격력의 약화까지 불러왔으니, 포항전의 나비효과가 결국 전북전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청용이나 윤빛가람 등 경기흐름이 어려울 때 리더나 해결사 역할을 기대했던 선수들은 오히려 부진했다. 몇차례 골대를 맞추는 아쉬운 기회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전북도 마찬가지였다.

득점찬스와 유효슈팅은 오히려 전북이 더 많았고 구스타보의 PK가 조현우의 선방에 막히지 않았다면 경기는 더 일찍 기울 수도 있었다. 울산에서 이날 경기내내 높은 클래스를 유지한 선수가 필드플레이어가 아닌 골키퍼 조현우였다는 사실이 곧 울산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었다.

울산은 올해도 자력 우승의 기회를 놓치며 이제 상대팀의 실수만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우승 유무와 별개로 올시즌 세 번의 전북전을 모두 무기력하게 패했다는 것은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막강한 전력에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 위기를 극복해내는 저력, 팬들을 감동시킬만한 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은, 눈앞의 승점 3점차이보다 울산과 전북간에 좁힐 수 없었던 근본적인 격차였는지도 모른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울산현대 김기희 김도훈감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