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즐겨보면서 애니메이션은 왜 잘 보지 않았을까

부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본 '번개맨: 더 비기닝'과 '클라이밍'

등록 2020.10.28 08:24수정 2020.10.2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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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철없는 어른으로 보일까 봐 드러내 놓고 좋아하는 것을 표시 내지는 않았지만, 첫 아이를 임신하고 배가 많이 불러 움직이기 힘들 때까지 만화를 보았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버스가 다니던 큰길에 있는 허름하고 좁은 만화가게를 매일 들락거렸다. 만화에 푹 빠져 몸이 자유롭지 않은 무료한 시간들을 그래도 수월하게 넘겼던 것 같다. 

10권씩 시리즈로 나오는 당시의 만화의 제목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순정만화류부터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만화까지 가리지 않고 봤던 것 같다. 지금도 포털의 웹툰은 요일별로 즐겨보는 것들이 있다. 몇몇 작가의 작품은 내용도 그림체도 취향에 맞아 놓치지 않는 편이다.

​주로 우리의 토속적인 문화, 설화 등을 만화로 재구성하고 매회 에피소드를 달리해서 보여주는 작품은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일주일의 텀을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가 스토리를 이어간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선거 등의 정치판을 실감 나게 다룬 것도, 부동산 문제나 화폐 개혁을 다룬 작품도, 이혼 전문 변호사의 세계를 다룬 작품도 있어서 만화의 지평이 많이 넓어진 것 같다.

만화는 좋아하지만 영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즐겨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 어렸을 때 함께 봤던 <라이온 킹>과 <뮬란> 정도가 내가 본 애니메이션으로 떠오르는 것들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만화 영화는 일부러 피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접근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사는 지역 부천에는 국제적인 행사가 많다. 지난번에는 BIFAN이었고 이번엔 BIAF다. 부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BIAF2020)(2020.10.23.~27)이 막 끝났따. 세계적인 작품들이 모이고 상영이 되니 뭔가 시끌벅적해야 할 것 같은데 조용하다. 

며칠 전 지역에서 12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고 특정 학원을 중심으로 한 집단 감염이 있었다. 때가 때니만큼 민감한 상황이라서 국제적인 행사가 개최되어도 차분하게를 넘어 썰렁하게 지나가는 양상이다.

지역 시민들의 여론도 민감하다. 한두 명의 확진자가 나올 때에도 끊임없이 확진자가 발생하는 것에 대한 경계가 있었는데, 무려 12명의 확진자는 가볍게 넘어가지질 않는 것 같다. 

행사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BIAF 현장을 찾았다. 국제적인 행사가 주는 묘한 분위기가 있고, 아무 때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혼자서라도 만끽하고 싶어서다. 이번 BIAF에서 나의 선택은 국제경쟁 부문에 오른 우리나라의 작품이었다. 
 

번개맨: 더 비기닝 스틸컷 ⓒ 장순심

 
첫 선택은 국제경쟁 장편 부문의 한국 애니메이션 <번개맨: 더 비기닝>이었다. 한국판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기대하는 작품이라고 했고, 이미 EBS 프로그램이나 뮤지컬을 통해 잘 알려진 작품인 것 같았다.

고백하자면 번개맨 캐릭터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동심의 세계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해외 유명 배급사의 애니메이션과 비교는 차치하고, 인물들의 캐릭터가 살아있는 느낌이었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오랜만에 맛본 것 같았다.
 

클라이밍 스틸컷 ⓒ 장순심

 
두 번째 작품 역시 국제경쟁 장편 부문에 진출한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 <클라이밍>이었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의 효과 등의 기술적인 면보다는 인간 심리 묘사에 집중한 작품인 것 같았다.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느낌보다는 스릴과 긴장이 넘치는 심리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았다.

주인공 세현은 프로 클라이머다. 세계 대회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함께 사는 연인, 가족에게 지나치게 차갑다. 작품 초반 어렴풋이 사고의 후유증을 팔의 떨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 사고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거기에 원치 않는 임신 소식은 어느 것이 현실이고 망상인지를 혼동하게 만든다. 그것이 인물의 힘든 상황을 오히려 극적으로 표현해주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프로 클라이머인 여성 세현의 직업적 야망과 결혼과 출산이라는 문제에서 부딪치는 갈등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이 땅의 여성들이 겪는 일반적인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거기에 사고를 당하기까지 해서 온전치 않은 몸과 그 후유증으로 인한 극도의 심리적 불안, 현실과 꿈 또는 망상의 중첩은 세현을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영화는 그러한 상황들을 빈틈없이 밀도 있게 전달한다. 김혜미 감독의 연출은 77분의 상영시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로 묵직하다.

주인공의 직업적인 면에 있어서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클라이머의 세계를 보여주는 독특한 그림들이 관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낯선 세계에 몰입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인물의 얼굴 윤곽이 진하게 표시되어 실제 인물을 마주한 듯하게 생생하게 표정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내게는 그동안 생각했던 애니메이션의 틀을 깨게 하는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동화적 감성을 충족시키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애니메이션은 차원이 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화려한 영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충족시키며 볼거리를 제공하는 그간의 애니메이션 세계에 대한 고정된 인식이 이번 기회를 통해 깨지게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이참에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매력을 찾게 되면서 이전에 가졌던 만화에 대한 향수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니 앞으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찾아 즐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이를 인정하기는 싫지만, UN에서는 아직 청년이라고 인정해 주는 나이지만, 이 나이에 만화영화를 즐기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어색했다. BIAF 상영관에서도 젊은 층이 많았던 것 같았고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을 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린 세대에 근접한 사람만이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것은 분명 아닐 테고 상영되는 작품도 어린 세대를 위한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의 편견이 있는 것 같다. 나이 든 사람의 감성으로도 충분히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고, 이제는 성인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애니메이션도 충분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전에 보았던 강풀의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역시 세대를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건드린 만화로 기억에 남아 있다. 노년의 로맨스를 보여줬다는 이순재 정영숙 두 배우의 연기도 좋았지만, 만화가 주는 감성은 더 깊고 진하게 상황에 몰입하게 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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