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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가 낸 균열, 11월 '그래미'를 주목한다

캐나다 빌보드라디오 차트 10위내 진입한 '다이너마이트'... 그 의미와 기대

등록 2020.10.27 18:26수정 2021.07.1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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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포브스'에 실린 기사(BTS’s ‘Dynamite’ Is Now The First-Ever Top 10 Radio Hit In Canada By A Korean Group). ⓒ 포브스 갈무리


내가 사는 캐나다에서도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케이팝(K-POP)이나 한국 연예인 관련 기사 속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포브스>에 실린 10월 23일 치 기사다. 제목은 "BTS's 'Dynamite' is now the first-ever top 10 radio hit in Canada by a Korean group"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캐나다 빌보드 라디오 차트에서 한국 그룹 최초로 10위 안에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캐나다, 톱10 라디오, 한국 그룹. 그간 이 세 가지 말은 한데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었다. 서구 음악계에 만연한 배타적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유통의 관문에서 걸러내는 일, 이 기사에선 라디오 방송에 나갈 음악을 고르는 일)'의 벽 때문이었다.

서구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음악은 영어로 된 곡, 특히 유로 아메리칸(미국, 캐나다, 영국)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BTS가 '난공불락'의 성과 같았던 라디오 방송 차트마저 접수했다는 소식은 기분 좋은 아침을 열어주기에 충분했다. 기사는 이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오랫동안 '톱 40 라디오'(북미 라디오 방송국에서 가장 많이 방송된 곡들에 순위를 매긴 것)'는 서구에서 한국 뮤지션들이 넘어야 할 최종선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껏 이 빌보드 라디오 차트에서 히트한 한국 아티스트의 곡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번 주,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시장 중 한 곳에서 한국의 가장 성공적인 그룹에 의해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이번 '캐나다 빌보드 톱40 라디오' 차트에서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13위에서 9위로 올라선 것이다.

현재의 기세로 봐서 앞으로 몇 주 안에 순위가 더 올라 아마 톱5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BTS의 영어곡 발매가 1위를 겨냥한 것이었는지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캐나다 라디오 방송국뿐 아니라 모든 빌보드 차트를 봤을 때, 이 곡이 오랫동안 한국 음악 중 가장 성공한 곡으로서의 타이틀을 유지할 것은 분명하다."


공고한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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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믿어지지 않는 빌보드 ‘HOT 100' 1위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HOT 100'에서 'Dynamite'로 1위를 차지했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9월 2일 오전 온라인으로 열린 글로벌 미디어데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다이너마이트'가 발매된 며칠 후 한국 언론은 이 곡이 미국 빌보드 라디오 방송차트에 30위라는 역대 최고 순위로 데뷔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다이너마이트'는 발매 후 첫 사흘 동안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2300여 차례 방송됐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주, 역사적인 빌보드 핫 100 1위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빌보드 핫 100 '1위'와 역대 최고 순위라는 라디오 방송차트 '30위' 사이의 간극에는 여전히 '게이트 키핑'이라는 공고한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아미(ARMY)'의 눈물겨운 홍보전략에 힘입어 라디오 방송횟수 역시 상승세를 보였지만, '스포티파이(Spotify)'의 글로벌 톱50 차트 1위, 100여 개국 나라들에서의 '아이튠즈'(iTunes)' 차트 1위 등 끝없이 승승장구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여타 기록들에 비하면 간격은 여전히 컸다.

실제로 북미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전부터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느껴지는 BTS 등 케이팝의 인기와 라디오 방송횟수와의 간극을 피부로 느껴오던 터였다. 2018년 5월 정규 3집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로 '빌보드200'에서 아시아 가수 최초 정상 차지, 2018년 'FAKE LOVE'로 '빌보드 핫 100' 10위, 2019년 '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8위, 올해 'ON'으로 4위 차지. 이외에도 BTS의 기록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켜켜이 쌓였다.

블랙핑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발표하는 타이틀곡마다 뮤직비디오가 2억 뷰 이상을 기록하고 10억 뷰 이상을 기록한 뮤직비디오도 '뚜두뚜두' 등 3편이나 된다. 'How You Like That'으로 발매 첫 주 미국 빌보드 핫100과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 각각 20위, 33위에 오르는 등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인 블랙핑크의 곡 역시 이곳 라디오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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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의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 넷플릭스

 
케이팝, 어반뮤직, 배제

라디오를 듣는 미국인의 수가 약 2억7200만에 이를 만큼 라디오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여전히 영향력이 큰 음악 시장이다. 우리 가족도 차를 탈 때면 종종 라디오를 듣곤 하는데, 왜 인기 있는 케이팝 곡이 잘 안 나오냐며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빌보드 순위를 집계하는 세 가지 측정값들 중 하나인 '라디오 방송횟수'에서 불리함을 안고 성취한 '다이너마이트' 빌보드 핫100 1위는 그래서 더 대단하고 값진 것이었는지 모른다.

서구 국가들에서 케이팝이 그 인기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방송횟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영어로 된 곡에의 편향성 외에, 흑인이나 아시아인 등 비서구인에 대한 배타성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9월 9일 치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의 기사 "BTS의 빌보드 100 1위가 팝음악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What BTS breaking Billboard 100 means for pop as the industry knows it)"는 이러한 서구 음악계의 배타성과 한계를 짚어내고 있다. 기사는 서두에서 "BTS의 성공, 특히 빌보드 핫100 1위는 세계 음악 산업계에서 팝 음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부각시켰다"라며 기존 '팝 음악' 규정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케이팝이나 어반뮤직(urban music, 흑인들이 하는 음악을 지칭) 등을 기존의 팝과 구별되는 하나의 장르로 구분하면서 주류에서 배제했다는 이야기다. 기자는 케이팝 저널리스트 타마 헤르만(Tamar Herman)의 글을 인용해 "케이팝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는 팬덤이자 산업"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룹 빅뱅의 탑이 한 말을 실었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팝음악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백인이 만들었다고 해서 '화이트 팝(white pop)'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어 흑인 뮤지션들이 처한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흑인 공연자들도 팝 장르의 제한적 규정을 오래도록 견뎌왔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시위로 특징지어진 올 한 해, 음악계는 팝 장르의 정의에 내재하는 제도적 인종차별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비판 받아온 '어반(urban)'이라는 음악 카테고리는 그 꼬리표로 인해 '그래미'에서도 도외시 돼왔다."

9월 1일 치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규탁 대중음악평론가 겸 한국 조지메이슨대 교수 역시 영미권 시장의 보수성을 꼬집은 바 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앨범 차트 4연속 1위를 하는 동안에도 라디오 등 전통 매체에서는 비영어권 국가 출신 아티스트들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중략) 영어로 만든 곡으로 비로소 싱글 차트 1위를 했다는 것은 미국이 '글로벌'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얼마나 '로컬'인지를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난공불락 차트'를 하나씩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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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어워드 최종 후보 발표가 있을 11월, 방탄소년단이 마지막 남은 보수와 배타의 벽을 깨트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 ⓒ 그래미상 누리집 갈무리


이토록 배타적이던 서구 음악계에 균열을 내며 비상을 거듭하고 있는 BTS의 행보는 그래서 더욱 값지다. 다만 '다이너마이트'가 영어로 된 곡이라는 사실이 라디오 방송 차트 석권에 미친 영향력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이후 발표될 한국어 노래의 성과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방탄소년단이 견고하게만 보이던 서구 음악계에 놀랄만한 균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배타'의 벽에 가속도가 붙어 한국 뮤지션들의 앞날에 힘이 실리리라는 희망과 확신 섞인 예측을 해본다.

최근 한국 언론들은 '빌보드 뮤직 어워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이어 방탄소년단에게 남은 것은 미국 3대 음악상 가운데 하나이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그래미 어워드'뿐이라며 장밋빛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더 컨버세이션> 기자도 방탄소년단을 비틀즈에 비견하며 그래미를 언급한 바 있다.

"인종, 국적, 언어와 같이 비음악적 요소들이 세계 음악 산업계에서 BTS의 여정에 영향을 미쳐왔다. 비틀즈가 한 해에 세 번의 1위를 차지했을 때 그들은 세 개의 그래미상을 받았다. 같은 위업을 이룬 BTS는 한 번도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지도 상을 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BTS의 중요성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는 그래미는 그들이 어워드에서 입었던 의상을 그래미 뮤지엄에 보관해놨다. 일명 세계적이라는 음악계에서 인종, 언어, 국적을 둘러싸고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균열이 BTS의 행보로 인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그래미 어워드 최종 후보 발표가 있을 11월, 방탄소년단이 마지막 남은 보수와 배타의 벽을 깨트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
#방탄소년단 #BTS #캐나다 #빌보드 톱40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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