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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먹했던 분위기, '통일 에코백'으로 좁혔다

[2020 충남통일교실] 아산 용화고

등록 2020.10.28 21:48수정 2020.12.2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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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으로 분단된 지 60여 년이 지났습니다. 분단된 땅에서 태어나 살아 온 젊은 세대들은 통일을 꼭 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충남도교육청은 이 같은 물음에 답하고자 학교마다 평화통일 수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충남도교육청과 함께 평화통일 교실 안 풍경을 들여다보았습니다.[편집자말]
 

26일 아산 용화고 1학년 11반 학생들이 '통일 에코백' 만들기를 하고 있다. ⓒ 모소영


수학 시간이다. 책상 위에 수학책과 노트 대신 천 가방과 여러 색깔의 펜이 놓여 있다. 에코백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것도 '통일 에코백'이다. 지난 26일 충남 아산시 용화고(교장 최종식) 1학년 11반 6교시(수학)와 7교시(자율학습).

학생들이 수학 시간과 자율학습 시간을 연계해 '통일 에코백' 만들기에 나섰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생각을 에코백으로 표현해 서로 의견을 나눠보기로 한 것이다.

에코백 만들기를 처음 제안한 건 수학 담당인 김주영 담임교사지만 학생들의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충남도교육청에서는 통일 수업에 필요한 재정지원은 물론 가방과 패브릭 펜(옷감에 사용하는 펜으로 잘 지워지지 않는다)까지 사 보내왔다.
 
"지난 주에 중간고사가 끝나서 한 시간 수학 시간은 재충전하는 마음으로 통일 교육에 할애했어요. 진도에 무리가 되지 않아서 학생들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좋아해요."
 

26일 아산 용화고 1학년 11반 학생들이 수학 시간과 자율학습 시간을 연계해 '통일 에코백' 만들기를 하고 있다. ⓒ 모소영



  

한 학생은 태극기와 인공기도 그리고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아래 민주평통자문회의)라는 글씨를 새겼다. ⓒ 모소영


김 교사가 '통일 에코백' 만들기를 한 이유는 또 있다.
 
"1학년이라 올해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했죠. 코로나 19로 카톡으로 처음 만났고, 교과서 나눠 줄 때 얼굴만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만남만 가졌어요. 학생들과 관계를 쌓을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예년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했어요. '통일 에코백 만들기'도 학생들에게 서로 협력할 기회도 주고, 의미 있는 활동이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해요. 노력한 만큼 학생들이 너무 잘 따라주고 열심히 해주고 반응도 너무 좋아요."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에게서 평화와 통일의 개념을 묻거나 '평화 통일'을 합쳐서 디자인해야 하냐는 질문이 나왔다. 김 교사는 답변과 함께 "평화통일에 대한 생각을 그림, 글자를 이용해 자유롭게 표현해 보라"고 조언했다. 두 시간 동안 학생들이 창작한 통일에코백은 참신하고 발랄했다.

원석진 학생은 태극기와 인공기를 그리고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아래 민주평통자문회의)라는 글씨를 새겼다. 민주평통자문회의는 통일정책과 남북관계 개선 방향을 건의하는 대통령 자문 헌법 기구다. 이 학생은 "평소 이런 자문기구가 있는 줄 몰랐다"며 "에코백을 디자인할 자료를 찾다 알게 됐고 '모여서 의논한다'는 '회의'라는 단어에서 통일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져 새겼다"고 말했다. 통일에코백을 만들다 정부통일자문기구의 역할까지 덤으로 알게 된 셈이다.
 

에코백 만들기 ⓒ 모소영



 

두 학생은 공동작업으로 통일을 표현했다. 각자 그린 에코백 그림을 나란히 맞대면 둘이 손을 잡는 그림이 나타난다. ⓒ 모소영


이지현 학생은 평화를 상징하는 문양과 동백꽃으로 에코백 한 면을 채웠다. 동백꽃은 4.3 제주항쟁을 뜻하고 나뭇잎은 평화를 의미한단다. 실제 제주에서는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을 4.3 희생자로 형상화해 동백꽃 배지를 가슴에 달며 아픔을 나누고 있다. 제주 4.3 추모의 상징 또한 동백꽃이다.
 
"평화는 잘못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고 봐요. 제주 4.3항쟁의 잘못을 반성하고 이를 되풀이하지 않을 때 평화가 이뤄진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윤인식, 성시현 학생은 공동작업으로 통일을 표현했다. 각자 그린 에코백 그림을 나란히 맞대면 둘이 손을 잡는 그림이다.
 
"평화통일을 어떻게 표현할까 서로 논의하다가 손을 잡은 걸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아 합작하게 됐어요. 평화통일은 결국 서로 손을 잡아 화해하고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진짜 북한 친구들과 손을 잡아보면 좋겠어요." 
 
 

학생은 한반도 지도를 사이에 놓고 남북이 서로 양손을 마주 잡는 역동적인 그림을 그렸다. ⓒ 모소영



 

아산 용화고 김주영 교사 ⓒ 모소영




김진영 학생은 한반도 지도를 사이에 놓고 남북이 서로 양손을 마주 잡는 역동적인 그림을 그렸다. 유하람 학생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꽃말이 평화인 클로버를 이용해 디자인했다.

학생들은 에코백 만들기를 끝낸 후에도 서로 작품의 의미를 얘기하며 의견을 나눴다. 학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단답형 의견을 묻자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 헤어진 가족 간의 만남이다"(원석진)
" 꼭 이뤄져야 하는 것" (김진영)
" 모두의 소망" (윤인식)
" 차이를 인정하는 것" (이지현)
" 안정이다. 전쟁도 불신도 사라지니까" (유하람)

수업이 끝난 후 만난 김 교사는 "처음엔 수학 과목과 무관한데 평화통일에 대해 학생들에게 알려 줄 게 있겠냐는 생각을 했었다"며 "수업을 해보니 전부 알려줄 필요가 없고 학생들이 스스로 찾고 생각을 교류하는 일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토론 교육으로 학생 만족도 높아요"
아산 용화고동학교는? 
  2005년 개교한 혁신학교다. 33개 학급에 960여 명이 재학 중이다. 방과 후 활동비가 지원돼 국·영·수 프로그램 외에 학생들이 원하는 과학실험, 기타강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

교육방식도 하브루타 공부법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한다. 하부르타 공부법은 두 사람이 짝을 이뤄 서로 질문을 주고 받으며 토론하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토론 교육 방법이다.

김주영 교사는 "고등학생들은 자신의 진로 걱정을 많이 한다"며 "90명의 교직원이 학생들의 진로, 적성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교실 #충남도교육청 #용화고등학교 #통일에코백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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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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